재미 없던 임진록, 누구를 욕할까?

※ 주의 : 이 글에는 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에버 스타 리그,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 4강전 경기 결과가 있음 ※

지난 주 금요일에 임진록("임"요환과 홍"진"호의 전쟁 기"록"이랄까. 거창하다)이 있었다. 지지난 주 금요일에 있었던 박정석 선수와 최연성 선수와의 4강전이 대박급이었던지라 임진록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갔다. 더욱이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는 챌린지 리그까지 떨어졌다가 올라온 선수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경기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총 경기 시간 30분여 만에 임요환 선수의 3:0 승리. 경기 모두 동일한 전략으로 이겼다. 초반 벙커링.

저그가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면 SCV를 왕창 데리고 마린 1~2기와 함께 저그의 앞마당을 공격한다. 성공하면 게임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고 실패해도 저그를 극도로 가난하게 만들기 때문에 테란이 유리해진다.

임요환 선수는 이를 철저히 이용했고 홍진호 선수는 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이런 불리한 점을 철저히 이용 당하며 일방적인 완패를 당했다. 이를 두고 임요환 선수를 욕하는 이들이 많다.

임요환 선수의 전략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8배럭, 9서플로 8scv 2배럭, 9서플인 BBS보다 더 가난한 변형 전략이다. 워낙 초반 전략이고 빌드라서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전략이다. 또한 저그들도 나도현 선수의 벙커링에 하도 당해왔던 터라 이제는 드론 한 기 잃지 않고 초반 벙커링을 막는 상황도 흔치 않게 벌어지곤 했다. 그럼 임요환의 초반 벙커링은 대체 뭐가 달랐던 것일까?

첫번째. 전략이 아닌 전술의 승리였다. 전략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환상적인 소수 유닛 컨트롤로 초반 전투를 이겨낸 전술의 승리다. 죽어야할 마린이 죽지를 않고, 벙커 짓다가 건설을 취소했을 때의 scv 역시 묘하게도 별다른 버벅임 없이 전투 scv 진영에 참가하여 드론들을 빙빙 돌게 만들며, 마린을 시종 일관 둘러 싸며 보호하는 scv들. 전성기를 능가하는 듯한 소수 유닛 컨트롤이었다. scv보다 체력이 낮고 수도 scv와 비슷한 홍진호 선수의 드론이 그 전투에서 이길리는 만무했다. 실제로 배틀넷에서 저그를 상대로 하는 상당 수의 테란 이용자들이 임요환 선수처럼 벙커링을 시도했지만 미숙한 컨트롤로 마린을 잃거나 벙커 짓는 scv를 보호하지 못하여 벙커링을 실패하였다. 어떤 이는 동원하는 scv양이 너무 많거나 적어서 실패하기도 했다. (물론 3경기 모두 치즈 러쉬를 나가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모두 동일했다는 전략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빌드의 전략성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두번째. 저그에게 불리한 가까운 양 진영이었다. 3경기 모두 테란과 저그의 거리는 무척 가까웠다. 초반 마린 메딕 조합의 압박에 대항할 레어 유닛을 생산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물론 초반 벙커링에 대한 부담도 훨씬 크다. 만일 거리가 멀었다면 6저글링이 나왔을 것이고 최소한 벙커 건설은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임요환 선수는 기가 막히게도 한 번에 정찰을 성공했었다.

세번째. 테란 상대로 저그에게 불리한 맵. 이번 에버 스타 리그의 맵"들"은 역대 대회 중 최악의 밸런스라고 불리울 정도로 극악?밸런스를 보이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테란맵으로 대회를 치루고 있다고 할 정도이다. 맵 제작자인 변종석씨는 맵 설명에서 그래도 밸런스 논쟁이 오가기에는 조금 이르며 아직은 할만하다는 식으로 첨언하였고, 이러 이러한 전투가 오갈 것이라는 예상과 맵 설계 의도를 드러냈지만 불행히도 경기는 그가 원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레퀴엠. 테란과 프로토스의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프로토스가 전적상으로 앞서고 초반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반을 넘긴 테란의 공격은 프로토스의 부담이 된다. 중앙을 장악 당하면 확장 지역 진출이 거의 불가능하며, 중앙에 미네랄로 구성된 지역이 질럿에게 큰 부담이 된다. 테란과 저그 역시 괜찮은 밸런스를 보이고 있다. 저그가 1번째 가스 확장 기지를 확보하면 2번째 가스 확장 기지 확보 역시 무난하기 때문이다. 2가스에서 나오는 대량의 뮤탈로 2번째 가스 확장 기지를 지켜낼 수 있다. 물론 이를 노리고 테란은 초반 업그레이드된 마린 메딕 병력으로 화끈하게 밀수도 있다.
문제는 저그와 프로토스이다. 프로토스는 무리한 더블 넥서스를 하지 않으면 저그를 상대로 해볼 수 있는게 없을 정도로 프로토스에게 불리하다. 초반에 저그의 앞마당 공략은 쉽지 않으며, 입구 앞은 언덕 위라 럴커 조이기를 뚫기가 너무 힘들다. 소수 럴커로 입구가 조여지면 잠시 후 뮤탈들이 날아다니니 프로토스는 암울할 뿐이다. 이에 대한 파해법이 더블 넥서스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프로토스들이 졌다. 강민 선수처럼 이기는 경우가 연출되었지만 기요틴에서의 더블 넥서스같은 성공률에는 절대적으로 미치지 못했다.</p>

머큐리. 퍽큐리라고 불릴 정도로 밸런스가 엉망이다. 우선 프로토스는 저그 상대로 해볼 수 있는 것이 없다. 지난 질레트배 결승전에서 박정석 선수가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4경기 머큐리맵에서 전략적인 운영을 시도해서 무난하게 진 이유도 전략적으로 초반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하면 뭐 해보지도 못하고 저그에게 지기 때문이다. 저그는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꼼꼼한 정찰을 하여 대처를 하는 것이 정석. 테란과 프로토스는 본진 위치에 따라 다르다. 만일 테란과 프로토스의 위치가 가까울 경우 테란이 초반의 압박만 견뎌내면 프로토스가 난감해진다. 초반 빠른 조이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동성에서 테란이 앞서기 때문에 거리가 먼 다른 지역에 프로토스가 확장 기지를 가져가기 힘들다. 테란이 조금만 진출해서 자리를 잡아놓으면 가스 확장 기지를 확보하기가 아주 용이하기 때문에 프로토스는 테란이 아주 먼 곳에 위치하지 않았거나 초반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 힘들어진다. 테란과 저그는 저그가 가스 확장 기지를 확보하여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서 테란에게 유리하다. 앞마당 미네랄 멀티를 먹어서 다수의 저글링을 확보하여 병력 수로 확 밀어부치려해도 중앙으로 나가기 위한 입출구에 진을 치고 있는 테란 병력을 뚫고 나가기가 어렵다. 뮤탈 견제를 하자니 하나의 가스에서 나오는 수로 테란에게 피해를 주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홍진호 선수가 앞마당도 먹지 않은채 본진 운영으로 테란을 상대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친 짓이기 때문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앞마당이나마 확보하여 다수의 저글링과 드론을 확보하여 어떻게 해서든 병력 싸움을 해내고, 그런 뒤 가스 확장 기지를 확보하려 했을 것이다.

펠레노스 에버. 는 초창기 맵이 소개될 때부터 테란 맵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테란 병력을 둘러쳐서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이 극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테란을 상대로 병력 힘 싸움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저그와 프로토스는 이 맵에서 테란을 상대로 많은 부담을 안고 있다. 특히 앞마당 확장 기지(입구 쪽에 있는 자투리 미네랄 있는 지역 말고)의 입구가 본진 입구 밖에 있는데다 테란의 시즈 탱크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확장 기지 보호가 대단히 힘들다. 즉 일단 조여지면 뚫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성상으로 앞서는 프로토스가 테란을 상대로 본진 빠른 캐리어 전략을 시도하는 거겠지. 그만큼 힘드니까.
이는 저그에게?해당되는 말이어서 테란을 상대로 하는 저그의 빌드는 매우 단순해질 수 밖에 없다. 즉 테란은 저그가 뭘 할지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홍진호 선수는 변수라고 할 수 있는 배짱 있는 앞마당 확장을 시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마당 확장의 입구가 본진 입구 밖에 있다. 초반 벙커링에 큰 손해를 본 홍진호 선수는 초반에 본진 입구를 조이기 당했고 결국 확장 기지를 지켜내지 못하고 병력이 집중되지 못하여 패배하고 말았다.</div>

물론 지난 일요일 프리미어 리그에서 한웅렬 선수는 박성준 선수에게 벙커링을 성공했음에도 패배를 하였는데, 이는 임요환 선수의 것과 성격이 다르다. 한웅렬 선수의 벙커링은 임요환 선수에 비해 타이밍이 늦었으며 확장 해처리 파괴 시간이 늦어져 저그가 드론과 저글링 확보할 시간을 주었으며 임요환 선수에 비해 벙커링에 투자한 것이 더욱 많았다. 준비된 전략이라기 보다는 거리도 가깝고 확장 기지를 가져가서 시도한 느낌이 강했다.

마지막. 부담감이다.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는 서로에게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홍진호 선수는 무리를 해서라도 확장을 가져가야만 임요환 선수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사실 맵 밸런스를 봤을 때 본진 플레이를 해서는 테란 상대하기가 아주 어렵다), 반대로 임요환 선수는 초반에 끝내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3경기 연속으로 벙커링을 시도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을 거는 초반 벙커링을 홍진호 선수가 견뎌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5판 3선승제 경기에서 3경기를 30분만에 동일한 전략으로 잡아내며 임진록은 참으로 허무하게 끝이났다. 임진록에 큰 기대를 했으며 무엇보다 SK T1과 KTF의 대결이라 잔뜩 기대했던 KTF팬인 나로서는 극도의 실망감과 허무감을 맛보았다. 또한 결승전이 같은 팀인 SKT T1의 두 테란끼리의 전쟁이라니...

이에 대해 나는 임요환 선수에 실망하고 화가 났다. 그러나 그를 욕할 수는 없다. 그는 프로로서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이 옳으며 맞다. 더욱이 결승전을 앞두고 있으며 홍진호라는 상대를 감안하면 더욱 더 이기는 경기를 했어야 했다.

3경기 모두 무리하게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며 패배를 자초한 홍진호 선수 역시 욕을 할 수 없다. 그렇게라도 해서 앞마당 확장 기지를 가져가지 않으면, 그러니까 초반에 앞마당 해처리 대신 본진 스풀링폴을 지어서 초반 견제에 대비하면 초반에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이후에 테란을 상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수 유닛 컨트롤은 최강이라는 임요환을 상대로 가난하게 소수 유닛으로 경기를 운영하기가 무척 부담됐을 것이다.

욕을 먹어야한다면 이런 경기가 벌어지도록 만든 온게임넷 맵 제작자이다. 분명 예선 경기나 초반 방송 경기에서, 그리고 여러 스타크래프트 커뮤니티에서 우려되었던 밸런스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 리그 도입을 강행한 그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물론 그들은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4강전을 홍보했고 기대했지만, 큰 흥행 실패를 맛보는 대가를 치루긴 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제는 임요환 선수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프로토스 이용자로 테란을 한때 주종족으로 삼았던 이유는 임요환 선수의 전략과 유닛 컨트롤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T1팀을 미워할지라도 임요환 선수에게는 정이 남아있었다. 어쨌건 그는 영원한 테란의 황제이고 지금과 같은 물량의 시대 이전인 낭만의 시대를 이끌어가던 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지금의 스타크래프트 시장을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가 아니던가.

이윤열 선수는 객관적으로 임요환 선수의 실력을 앞서는 걸로 평가된다. 그러나 기계처럼 잘하고 압도적인 물량으로 상대를 짓밟는 듯한 이윤열 선수의 경기 운영에 반발심을 갖는 사람이 많았고(나를 포함해서), 그런 이들은 한결같이 그래도 테란의 최강자는 여전히 임요환이라는 식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지난 2003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종 결승전에서 임요환 선수가 3:1로 패배하면서 이윤열 선수와 임요환 선수의 논쟁은 일단락되었다. 낭만 시대의 종말을 고하며 말이다. 그렇게 잘 나가던 이윤열 선수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욕을 먹었던 이유는 너무 잘해서였다. 감동과 재미가 있는 경기보다는 너무 이기는 경기만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윤열 선수를 싫어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순진하고 수줍은 얼굴로 잔인할 정도로 차이나는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이중성이 싫어서.

최연성 선수가 거짓말 같은 승률 70~80%에 이르며 잘 나가는 것에 반발심을 갖는 이유도 동일하다. 그의 경기는 분명 승리를 가져오지만 시청자인 내게는 어떤 감흥이나 감동, 혹은 재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마치 대학생 축구팀이 초등학생 축구팀을 상대로 압도하는 경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임요환 선수의 경기는 늘 감동과 재미가 있었다. 도진광 선수와의 멋진 역전승과 같은 짜릿한 감동이 늘 함께 했다. 그러나 지난 4강전의 3경기는 내게 아무런 재미와 감동을 주지 않았다. 극도의 허무함과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 그 역시 내게는 재미와 감동이 없는 경기를 안겨주는 선수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런 내 느낌에 개념치 말고 그는 프로이기에 이기는 경기를 해야한다. 욕 먹을 이유 하나 없다. 단지 여전히 낭만 시대를 꿈꾸고 그리워하는 내게는 그를 좋아할 이유가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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