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 광장에 잡초를 심어라!

시민을 위한 시청 잔디 광장

2004년 5월 1일, 서울 시청 앞 광장은 잔디로 산뜻하게 발라져 시민들에게 개방과 함께 공개 되었다. 이명박씨의 시장 취임 이후 눈에 띄게 이뤄진 정책들처럼 매우 가시적이고 언론에 이명박이라는 이름 알리기 좋은 사건이다. 도심 속에 푹신한 잔디 광장의 태생은 시민을 우선 생각하고 누구나 얼굴 부비댈 수 있는 열린 시청이라는 마음가짐을 알리려는 이명박 시장의 사업 중 하나였다.

'의사 소통을 꾀할 수 있는 공통의 장소’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사전에 광장의 뜻은 크게 두 가지로 언급되고 있다. 건물 없이 넓은 곳이 그 첫 번째이고, 의사 소통을 나누는 공통의 혹은 공용의 공간이 그 나머지이다. 대게의 경우 그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되며, 두 번째 의미로서 광장의 영어단어는 plaza로 표기를 한다. 단지 공간적 의미로서의 대광장이 아닌 사람들이 넓은 공간에 모여 서로 생각을 주고 받는 소통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온라인상에서는 자유게시판의 의미로 plaza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 소통. 법치 국가들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의사 소통의 의미는 사전의 의미와 조금 다르다. 광장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 의사 소통, 혹은 광장의 의미는 우리 나라가 국민에게 보장하는 기본권에서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가리키는 것이다. 수많은 피의 대가로 얻은 권리의 상징이 바로 광장이라고도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콩코르드 광장

프랑스 파리 시내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은 프랑스 혁명 광장으로 유명하다. 그 광장은 좌측의 사진처럼 생겼다(사진 출처는 <a href="http://encyber.com" target=_blank>http://encyber.com</a> 이다. 나중에 직접 저기 가서 사진 찍으면 바꿀 테니 그동안 신세 좀 지자). 프랑스인들에게 저 광장은 단지 뻥 뚫린 공간적 의미일 뿐일까?
잠시 다른 광장을 살펴보자. 직접 광장을 찾아다녀도 좋고 인터넷에서 사진을 검색해봐도 좋다. 사진들을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광장도 광장 한가운데에 잔디를 깔아놓은 서울 시청 광장 같은 곳은 없다는 것이다.

잔디가 아파요

서울 시청 앞 잔디 광장의 개방이 있은지 며칠 후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맛깔스러운 소식이 내 눈에 띄었다. 잔디가 아프다는 둥, 여성들의 뾰족 구두에 잔디가 누렇게 죽어간다는 둥의 뻔한 소리였다. 뻔하고도 당연한 현상이다. 잔디는 연약한 풀잎일 뿐이다. 잔디는 오밀 조밀하게 자라나서 푹신 푹신할 뿐이지 결코 인간의 체중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한 식물이 아니다. 애초 잔디밭 위에서 시민들이 편안히 도심 속의 휴식을 갖게 한다는 취지 자체가 헛소리이다. 뾰족 구두 신는 여성들의 후진적 공중 도덕 의식을 비난하기 전에, 잔디 위에서 인간이 부대끼고도 잔디가 멀쩡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 시청 앞 잔디 광장은 광장이 아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잔디 광장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때는 잔디 광장 개방이 있기 전 3주 전이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2002년 6월 한 달간 있었던 붉은 악마들의 거리 응원과 촛불 집회였다. 범국민적으로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2002 대한민국 월드컵(앗? 미안, 한일 월드컵..)은 수백만의 사람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였다. 인심 조작이라는 의혹까지 살 정도의 규모였는데, 이 거리 응원의 중심지는 바로 시청을 중심으로 광화문 등 일대까지 넓게 펼쳐진 시청 주변 지역이었다. 서울의 행정 기관의 중심인 시청 앞 광장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다분히 감성적으로 대표팀을 응원했었다. 그 거리 응원을 조금 잘난 단어로 표현하자면 집회이다. 그런데 서울 시청 앞에 잔디가 깔렸고 이제 우리는 잔디밭 위에서 자유로운 집회를 열 수 있게 되었다. 폭신 폭신한 잔디니까 아스팔트 위에서 발바닥 아파할 일이 없어졌다.
정말? 아니.
잔디가 아프다는 기사가 나온 지 며칠이 안되어 개인이 아닌 단체가 서울 시청에서 집회를 열 경우 이용료를 내야한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무엇을 의미할까.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을 시청 앞 광장에서 하려면 두 달 전에 시장의 승인을 받아야하며 이용료는 한 시간에 13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정치적 행사나 집회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방침이란다.
광장의 의미가 무엇일까. 위에서 광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회와 함께 광장의 목적과 목표, 그 의미를 언급했다. 그런데 시민들을 위한다는 시청 앞 잔디 광장은 광장의 본래 용도가 상실되는 형태이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누구를 위한 광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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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서울 광장은 빛의 광장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간 내 구현이 어렵다는 간단한 이유로 잔디밭으로 바뀌었다. 설계자에 공식 통보 한 마디 없이 말이다. 무슨 시간? 5월에 있을 Hi 서울 축제 행사 말이다.
이명박 시장의 막무가내식 행정 강행은 대단하다. 당장 떠올려도 청계천 복원, 서울 지하철 1시간 연장 운행이 생각나는데 이것들의 부작용과 후유증은 꽤 심각하다. 그러나 이번 시청 앞 잔디밭 광장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민은 없고 시장만 존재하는 행정에 의해, 시장의 검붉은 불도저에 짓밟힌 시민들의 소중한 광장은 그 상처가 너무나 깊다. 전혀 대책 없이 내몰린 시청 광장의 노숙자들의 인권 문제, 그리고 집회의 자유를 박탈당한 시민들의 기본권 문제. 그 상처는 너무나 깊단 말이다.

꼴통 불도저를 위한 획기전 제안

그럼에도, 이명박 시장은 귀를 막고 있다. 언론에 자신의 얼굴이 실린 사진이 나오면 좋아라~ 손뼉치는 꼴통이 생각이나 깊게 해보고 이런 만행들 저지르겠는가. 단지 TV나 신문에 얼굴 한 번 더 비추고 싶어하는 같잖고 졸속한 마음일 뿐이다.
그런 그를 위해 내가 멋진 제안을 하려 한다. 이미 잔디 광장은 실패가 판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크게 돈 안들이고도 잔디 광장의 실패 이유를 뒤집고도 진정한 시민의 광장으로 만들 수 있다. 시청 앞 광장을 잔디가 아닌 잡초로 채우는 것이다. 밟혀도 밟혀도 결국은 살아나고 마는 질긴 잡초를 심는다면 비싼 잔디의 유지비도 해결되고 시민들 역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은 대단한 묘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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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웃기고 자빠졌다. 잔디건 잡초건 가죽이건 깔지 마라. 그리고 시청 앞 광장에 이뤄질 집회에 대한 정책(방침)을 당장 취소하라! 광장을 시민의 광장으로 되돌려라! 단두대의 설치로 1100여 명의 목을 댕강 댕강 잘랐던 콩코르드 광장이 재현되어 네 목이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덧쓰기 : 잔디 광장의 정식 이름은 서울 광장이다. 그러나 난 결코 그 이름에 동의할 수 없다. 아니, 광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과분하다. 그냥 서울 시청 앞 잔디밭이라 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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