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부페

나는 2005년 발렌타인 데이를 모래와 국방 무늬 전투복을 입은 20대 중후반 남자들과 보냈다. 신병 교육 대대에서 4주간 훈련을 받을 때는 상술에 의해 탄생한 작은 축제를 실감하지 못했다. 내가 발렌타인 데이를 실감한 계기는 애인이 데려간 초콜릿 뷔페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야릇한 기분이었다.

언제 끝날지는 정해지지 않았고, 운영 시간은 매주 금, 토, 일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란다. 하루 전, 전화 문의에 답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좀 어리다고 생각됐다. 20대 여성의 교육 받은 친절한 목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여성 특유의 따박 따박 끊어지는 말투에는 고객의 문의에 대답하는 성의를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차갑고 빠른 20일, 삼성동에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털 호텔로 향했다. 커다란 호텔 외형에서 느낄 수 없던 거대한 위화감을 건물 내부의 높디 높은 1층에서 느끼며 목적지를 찾아다녔고, 곧 도착하였다.

이 정도 영역이 양옆에
더 있는 정도의 규모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매우 기대했다. 점심 식사를 요구하는 위를 초콜릿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초콜릿이 놓인 곳을 향했을 때 조금 실망했다. 나는 뷔페라면 많은 음식이 넓고 길게 펼쳐져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게 해줄 곳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초콜릿 음식의 양과 종류는 얼마 되지 않았고, 밥 한 공기와 간장 종지로 식사를 차린 작은 밥상을 보는 듯한 음식의 공간에는 음식과 초콜릿 조형물이 섞여 있어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왜소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왜소?
그곳에 대한 내 첫인상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나는 단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식사를 위한 음식은 물론 군것질을 위한 음식도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좋아하다 보니 단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단음식은 혀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서 좋아하지 않는다. 즉, 단맛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단맛이 미각을 무디게 한 그 느낌을 싫어한다.
초콜릿과 사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분 전환이 되기 때문에 좋아할 뿐이다.

초콜릿 뷔페의 음식들은 초콜릿 그 자체라고 보면 된다. 조금만 먹다 보면 미각이 둔해진다. 주문한 차(茶)가 커피가 아닌 홍차여서 초콜릿의 단맛에 미각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내 희망은 예쁜 초콜릿 음식 몇 개에 사라진지 오래다.


이건 여자 친구가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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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혀를 깨물면 단 즙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몇몇 음식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이미 혀는 단맛을 제외한 어떠한 맛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 이르렀기에 기존 음식과 맛의 차이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건더기를 확인해야만 국의 정체를 알 수 있던 군대의 국을 먹을 때 나는 간혹 라면처럼 국물을 내기 위한 수프가 있고 건더기만 바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끼니마다 국이 바뀌긴 하는데 색과 맛이 늘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초콜릿으로 맛을 낸 이곳의 음식들은 오죽할까.


무척 기대를 했으나 기대보다는 맛이 희미했다. 딸기와 초콜릿 시럽(?) 모두 미지근해서 달짝지근함만을 느낄 수 있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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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배가 고프다고 느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상황이다. 위에 공복감을 느낄 때와 몸에 필요한 연료가 거의 떨어져 추가 연료가 필요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콜릿 뷔페에서 나는 배가 고팠다. 코코블럭의 블럭들처럼 작은 초콜릿 음식으로 포만감을 느끼기 힘들 뿐더러 초콜릿의 영양소는 내 65kg의 육체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연료로 부족하다.
하지만 더 집어 먹지 못했다. 슬슬 단맛이 두려워졌다. 배가 고픈데 음식이 눈앞에 있는데 먹지 못하고 있었다. 밥과 국에 의존도가 높은 식성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봉사료 별도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1인당 뷔페 이용료가 2만 원을 훌쩍 넘는 이곳에서 벗어나 돈을 더 들여 뭔가를 사먹기도 부담스러웠다. 우선 돈이 부담되었다. 그리고 다른 음식을 먹을 때 왠지 혀에 스민 단맛이 배어나와 그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몸이 푹 잠기는 소파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문화인과 지성인을 흉내 내며 배고파했다. 배고픈 지성이 철철 흘렀으리다.


맛있지만 여러 번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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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단맛의 부작용을 예상하고 간 내가 배고픔을 느끼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겪은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젓갈이나 쥐포, 김치는 아무리 각을 내고 장식으로 꾸민 채 각종 장식물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어도 나는 어렵지 않게 골라 먹을 수 있다. 아무리 꾸며봐야 젓갈과 쥐포, 김치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초콜릿은 다르다. 무엇이 음식이고 무엇이 장식물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음식인 줄 알고 건드렸는데 알고 보니 장식물이라면 참으로 난감할 것이다. 플라스틱 과일 조형물을 먹기 위해 입을 한껏 벌리는 부쉬맨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그 입장이 되고 싶진 않았다.


여기서 어떤 것이 장식이고 어떤 것이 음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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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록 모르는 사람에게, 특히 여자에게 말 거는 상황을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하지만, 용기를 내어 종업원에게 안내를 요청했다. 제발 네? 라고 반문하지 말고 단번에 내 의도를 간파하여 내가 봉착한 상황에 빛을 비추어다오.
그녀, 대답한다.

"네?"

오~~~~~~~ 안돼애애애애.
과연, 나는 예상대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자 친구가 피식 피식 웃는 눈치다. 혹시 안내를 해달라는 내 말을 이해 못 했나 싶어 좀 더 자세히 내 요청 사항을 전달했다.

"에, 그러니까 이름이라던가 뭐 그런 걸 안내 해주실 수 있는지"

다행히 그녀는 「 네? 」라고 반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은 건 아니었다. 이름 같은 건 각 음식 앞에 인덱스가 있다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기 때문이다.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더 할 말 있느냐고 물어보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됐노라며 그녀를 놔주었다. 나의 완패다.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영역 표시 전쟁에서 패배한 똥강아지가 된 기분이었다. 동네에서 영역 표시 잘못하다 우리 집 백구에게 혼쭐난 어느 잡종 개가 떠올랐다. 있다 집에 가서 백구를 구박해야겠다.
생각해보니 하루 전에 전화로 문의했을 때 답변을 한 어린 느낌의 목소리와 일치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상큼하고 부드러운 맛이었을 텐데, 부드러운 촉각만 느낄 수 있었다. 아아~ 단맛에 마비된 내 미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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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의중을 꿰뚫지 못한 그녀의 안내에 내 혀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먹었던 얼마 되지도 않는 초콜릿에 미각이 바보가 되었던 것이다. 이건 고도의 술수다.
라고 불만을 품은 채 몇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떴다.


안녕~~~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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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발렌타인 데이를 지내는 자리였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을 맛볼 수 있어 더욱 그러했다. 다만, 약 4시간을 보낸 경험치고는 좀 비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초콜릿을 좋아하거나 다양한 초콜릿을 맛보고 싶은 이라면 돈의 여유를 만들어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조금 더 준비를 하여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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