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움직여서 운동이 되겠어?

나에겐 나쁜 편견이 있다. 타인의 동작이나 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애인은 이소라 체조나 태보와 같은 다이어트 체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심코 한 마디 던졌다.

"그렇게 움직여서 운동이 되겠어?"

가만히 자세를 유지한 채 팔이나 상체만 깔짝 깔짝 움직이는 동작들은 체조라기 보다는 다이어트 체조라는 사기술로 덧칠 된 놀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몸을 위한 운동이라면 격하게, 혹은 큰 동작으로 오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평소의 내 지론은 그녀의 자존심을 후려쳤고, 한동안 그녀의 싸늘한 눈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달래야했다.

스타크래프트에 관심과 애정이 식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 동료가 시청하던 VOD에서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의 결승전을 보고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했다. 임요환 선수의 멋진 병력 제어(Unit control)와 전략, 전술에 감탄해서라기 보다는, 저런 감탄이 터지는 동작을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해냈다. 3년의 시간이 소요되긴 했지만.

이상한 습성이다. 나는 누군가 아주 어려운 동작을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사람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동작이나 행위일지라도 그 동작이나 행위를 하는데 동원된 근육의 직접적 영향보다는 해당 근육을 통제하는 두뇌가 그 동작이나 행위에 익숙해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벽하게 동작이나 행위를 하기 위해서 해당 근육이 단련되어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아무리 근육이 발달되어도 두뇌가 그 동작에 익숙치 못한 상태라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결국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가 뒷받침 된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주둥이 성능 참 좋다. 당연히 옳은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참 기이한 체험을 했고, 그 체험이 아직도 내 신체에 주효하다.
나는 학창 시절 달리기를 싫어했다. 달리기라면 보통 짧은 거리 달리기와 먼 거리 달리기, 장애물 뛰어 넘으며 달리기로 분류된다. 짧은 거리 달리기는 다리가 느려서 꼴찌만 겨우 면했고, 먼 거리 달리기는 오래 달릴 폐활량이 되지 않아서, 장애물 넘으며 달리기는 다칠까봐 겁이 나서 싫어했다. 나는 초, 중, 고등학생의 평균 체력 검사 측정치를 낮추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왔다.

희한한 현상을 겪은 것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였다. 첫 체육 수업은 체력 검사의 일환으로 오래 달리기를 했다. 체육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우리는 다른 반보다 보다 오래 많이 운동장을 뛸 혜택이 주어졌다. 정확히 몇 km인지는 모르겠다만 다른 반보다 몇 바퀴 더 뛰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km 단위로 뛰었다. 그리고 당당히 한 손으로 내 성적을 표현할 수 있는 순위를 거두었다.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뛴 주장의 근거로 날씨도 덥고 귀찮었다는 혁신적인 논리를 내세우는 급우들이 대다수이긴 했지만, 어쨌건 나는 최선을 다하였고 그 결과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뛰어서 5등 안으로 완주하였다.

나는.
책가방보다 가벼운 상체의 두께를 가지고 있었으며,여자 애들이 부러워하는 내 종아리는 선연(嬋姸)할 정도였다. 아랫 배에 힘을 기술적으로 주면 옆구리는 납작해지고 복부 중앙만 형태를 유지하는 신비한 동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배는 홀쭉했다.

그런 내가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사실에 오래 달리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후 고등 학교를 졸업할 동안 정식 측정을 위한 오래 달리기를 한 적이 없어 자신감을 몸으로 증명할 기회는 가지지 못했지만,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입소한 신병 교육 대대에서 나는 우리 소대에서 자신감을 증명할 수 있었다. 체력 측정을 위해 2.5km 오래 달리기를 하였는데, 1등과 3초 차이로 2등을 한 것이다. 4분 19초였던 것 같다. 물론 오래 달리기에 대한 자신감으로 평소에도 무모하게 오래 달리기를 한 적은 있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13~15km 떨어진 자취집까지 달려간다던가.

꿈에서 나는
이런 모습으로
뛰었다.

두 번째 기이한 체험은 회사 생활을 하던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다. 종종 꿈에서 날아가듯이 달려가는 나를 보았다. 공기와 바람을 몸으로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내게 불어와 나와 부딪혀 갈라진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빠르게 뚫고 나아가 공기와 바람을 가른다고 느껴졌다. 그 기분이 매우 상쾌하고 기분 좋아서 하루는 꿈 속에서 달리는 내 모습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땅을 박찰 때의 다리와 발목 움직임, 땅을 내딛을 때의 힘의 양, 상체의 각도 등등.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빨리 달릴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달렸다. 꿈이 아닌 현실 세상의 도로에서 달렸다. 상체를 숙이고 달려보았으나 앞으로 넘어질 거 같아서 꿈에서 분석한 다리와 발과 팔의 움직임만 기억해내며 힘차게 내딛였다. 시간을 재보지 않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학창 시절보다 빠르다고 느껴졌다. 우연한 기회에 시간을 재보았는데 100m를 12초에 주파하였다. 학창 시절에 거둔 좋은 기록은 15~16초임을 감안하면 말도 안되는 발전이었다. 나는 꿈에서 나 스스로에게 계시를 받아 아무런 노력도 없이 3초 이상을 단축했다!

이 기묘한 체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운동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근육의 발달은 물론 두뇌의 각성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내겐 생생한 경험이었다.

쉽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이 경험을 통해 타인의 동작이나 행위를 만만히 여기는 관점을 갖게 된 점은 내가 생각해도 유감이다. 그러나 그만큼 그 경험은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애인을 따라 이소라의 깔작대는 몸 동작 유지나, 태보의 격렬한 움직임을 따라할 때 애인보다 훨씬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내가 애인보다 나은 점은 조금 덜 헐떡인 것이다.

또한 임요환 선수같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의 멋진 병력 제어를 흉내는 낼 수 있을지 언정 자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의 어리숙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미신같은 체험에 기대어 내게 자신감을 가지고 이것 저것을 시도하고 있다. 나이 먹어서 뭐하느냐는 핀잔도 듣고, 건강하고 좋은 체력이 부럽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리가 아니어서 내 신체는 몇 몇 동작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13km를 달리기로 40분만에 주파하였을 때 심장이 터질 듯한 통증을 느끼는 내 신체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편도 아니다. 다만 극한의 상황까지 참고 도전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아닌 머리가 먼저 극복 하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때가 있고, 그 내적 발전의 쾌감을 맛보고 싶을 뿐이다.

아직 목표로 하였지만 이루지 못한 동작이나 행위가 많다. 그 동작이나 행위를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모해보일 수 있는 나의 도전은 계속 된다. 복권 당첨과도 같은 두뇌의 각성을 두뇌에 간절히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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