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과 여름 구름, 그리고 무지개

집 옥상에 올라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니 송전탑 뒤에 뭔가 보인다. 구름에 얼굴을 찌푸린 하늘의 흐릿함과 구분되는 다채로운 색의 연속.

송전탑 뒤에 숨어있는 무지개

내가 서있는 곳에서 동쪽인 저곳 하늘의 조각에 무지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과 땅에 길게 걸친 신들의 다리 Bifrost처럼 무지개는 동쪽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가고 있었다.

송전탑 뒤에 힘찬 표정으로 뻗어가는 무지개

많은 사람의 무더위 불쾌함을 모두 닦아냈었던 듯 구름 곳곳은 흐리게 물들어있었다. 구름의 때 묻은 흐림에 무지개는 제 빛을 잃을 법도 한데 오히려 힘찬 표정으로 제 색을 뽐낸다. 몽롱하다.

가을 하늘을 찾는 듯한 새

하늘 저편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점이 되어 가을 하늘을 찾고 있었다. 여름 구름은 지겹다는 듯이 가을을 찾아 빠르게 날아다녔다. 새가 나는 길을 따라 선을 그어보며 어떤 뜻을 찾아보려 했지만 별자리보다 더 알기 어려운 모양만 그려댔다. 어떤 눈설미 좋은 사람이나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저 선을 따라 이리 저리 기억 속 모양들을 갖다대다 적당한 이름을 찾아 냈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람이 느껴졌다. 여름의 비릿한 냄새가 조금 섞인 신선한 가을 바람이었다. 다리를 간지럽히는 무엇이 느껴졌다. 얼굴과 팔과 다리를 휘감으며 지나가는 바람님보다 더 생명감 있는 무엇이었다.

잡초

이름 모를 풀. 상추, 깻잎 등 내 입에 넣는 풀이나 잎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름 모를 풀이라 생각하는 내 얕은 지식 탓에 제 고유함을 지녔을 풀은 이름 모를 풀이 된다. 미안한 마음에 사진기에 그 모습을 담고 가만히 쳐다보니 눈에 익다. 우리집 옥상 입구 계단쪽에 피었다 오그리다를 수년째 반복하는 그 풀이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다른 풀이나 꽃에 제 집을 잃을만도 한데 내가 학교를 다니던 때도 있던 그 풀이 2006년 가을을 맞이하며 서서히 빛을 잃고 있었다.

가을 하늘과 여름 구름
사진을 누르면 좀 더 크게 볼 수 있음

밥 먹으라 날 부르는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벽에 등을 대고 매주 내 키를 재던 어릴 적에도 이맘때쯤엔 저녁 먹으라 날 부르시던 그 목소리였다. 이제는 머리가 굵어지다 못해 굳어 말랑 말랑한 생각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아들내미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여전함에 고마움을 느낀다.

옥상 계단을 하나씩 조심스레 내려가며 줄곧 내 등 뒤에 있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무지개는 없었지만 가을 하늘과 여름 구름이 구분지어 있었다. 이미 굳건하게 자리 잡은 짙은 가을 하늘, 그리고 서둘러 도망치듯 어딘가로 흘러가는 여름 구름.

2006년 여름은 그렇게 떠나고 있었다. 2006년 가을은 그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2006년 여름과 가을, 떠나는 자와 다가오는 자의 만남은 그렇게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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