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작가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결혼한 아내가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한단다. 결혼 전 비독점 다자연애(Polyamory)를 한다고 설득시킨 아내는 결혼을 하자 복혼(Polygamy)한단다. 현역 남편 앞에서.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소설과 비슷한 구성을 가진 소설. 재미난 소설이고 통쾌한 면도 있다. 이 소설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말을 바꾸면 놀랍게도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다. 아마도 '아내가 결혼했다'가 아니라 '남편이 결혼했다'였다면 아침마다 TV에서 하는 연속극처럼 되었겠지.

아쉬운 점은 인아(아내 이름)의 Polyamory와 Polygamy가 그 자체의 나은 점을 좇기 위해 벌이는 일이 아니라 인아의 이기심에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는 면이 강한 점이었다. 인아는 남편(나)에게 Mono머시기가 아닌 Poly머시기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런 설득의 근거로 삼은 점을 행동의 근거로 삼지 못하고 이기심이 행동의 근거로 보이게끔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묘한 불쾌감을 느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인아의 말은 이해할 수 있는데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일부일처제(Monogamy)건 복혼(Polygamy)건 결혼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결혼 그 자체가 문제이다. 결혼 그 자체가 문제이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형태와 방식이 끌려가는 것이고 그곳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현대 축구에서 선수 배치 전략/전술은 큰 흐름을 잡기 위한 대명사일 뿐이지 그것이 전략이나 전술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왜냐하면, 4-4-2건 3-4-3이건 2-3-5이건(이건 2006한일 월드컵 때 대 이탈리아 전에서 히딩크 감독이 경기 후반에 썼었다) 경기 흐름상 그때 그때 배치가 바뀌며,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독자가 내리게끔 슬쩍 다리를 빼고선(결혼 자체가 문제라는 것) 적당히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작가. 친절하다면 친절하고 불친절하다면 불친절하다.

독후감은 천천히 써야겠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흠... 난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