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이어서 아날로그에 용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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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성형 성격이다. 수줍음도 많이 타고 부끄러움도 많이 탄다. 순진하다거나 고지식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다른 사람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말한 사람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낯설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말도 잘 못하며, 얼굴도 잘 마주치지 못하기 일쑤다. 그래서 사회 생활 하는 데 불편함이 많을 거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나를 온라인에서 먼저 알게 된 사람들은 이런 내 말이나 모습을 쉽게 믿지 않는다. 믿지 못한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아마 내 블로그 글을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더 그럴 듯 싶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건 내게 굉장히 뜻 깊은 일이다. 나는 손 글씨도 못쓰고 잘 모르는 사람 앞에 잘 서지도 못한다. 내가 아날로그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고 나타내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디지털, 그러니까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일은 한결 쉬운 일이다. 머리와 마음만 좀 다듬으면 글 하나 뚝딱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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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향 성격 덕에 모임에 잘 나가지도 않는다. 나가기 귀찮아서, 그리고 수줍어하는 가운데 굳이 신경 써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이 귀찮아서 2년 동안 모임이란 모임은 전혀 나가지 않은 적도 있다. 누군가 “누구세요?”라고 물을 때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갈 자신이 없다.

그런 내가 최근 2년 사이 여러 모임에 나갔다. 기간 대비 횟수로 치면 살면서 가장 많은 모임에 나간 셈이다. 내가 모임에 나갈 용기를 내고 명함을 돌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적어도 내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인지시켜놨기 때문이다. “누구세요?”에 “한날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하고, 내 대답에 “아아~~ 한날님이시구나”라며 나를 알아보는, 아니 적어도 내 이름을 알아보는 모습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생 벗들 몇 명과 도란 도란 얘기 나누며 살 것 같던 내가 받은 명함 1,000장에 가까워진다니 신기할 따름이고, 벗들도 신기해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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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음악 수업을 싫어했고 성적도 안좋았다. 지금도 나는 악보를 잘 읽지 못한다. 또한,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다. 듣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적어도 아날로그 시대엔 말이다.

11년 전에 음악 하나를 만든 적이 있다. 요즘 세상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Scream Tracker라는 무른모(software)를 이용해 메탈 음악을 만들었다. 비록 이런 저런 음악에서 기타나 베이스, 드럼을 베껴오긴 했지만, 디지털의 힘을 빌어 나는 음악을 하나 만들었다.

여전히 악보도 못읽고 악기도 못다루지만, 흥얼 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컴퓨터 속 연주 무른모를 이용해 나는 곡을 만들 수 있다. 올 해 안에 곡을 하나에서 두 개까지 만든 뒤 내년에 공연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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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돌아와서.
내 성격은 아날로그 세상을 살기엔 벅차다.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과연 세상 속에 잘 녹아들고 어우러져 함께 굴러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회 부적응자가 따로 있나. 활달하고 적극성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사회 부적응자 일 것이다. (내겐) 험난하고 거친 아날로그 세상에 내가 엉덩이 비비적대고 끼어 앉아 방긋 웃을 수 있는 것은 디지털 힘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이질감 가득한 이들을 이끌어가는 구세주가 되는 영화 장면을 보며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영화 주제에 내 사회성을 연결시키기엔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아날로그 세상 속에서 어리숙하고 어리 바리한 청년, 아니 아직 덜 자라다 못해 작아지고 있던 아이는 디지털 힘을 빌어 조금씩 자라고 있다.
...
,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결합. 나는 1999년부터 디지털과 아날로그 결합에 많은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열정을 가졌다. 그리고 나 자신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결합을 보고 있다. RSS니 Mash up이니 OpenAPI니... 를 떠나서 가장 기본이며 기초인 나 자신을 통해서 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결합이 별건가? 디지털이어서 아날로그에 용기를 내어 이렇게 글을 쓰는 기적을 행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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