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커피향을 품는 예쁜 레뷰 머그

지난 해 12월에 창업을 하고 살림을 하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냉장고는 크기 상관없이 그 속이 미로 같아서 도무지 반찬을 찾을 수가 없고, 살림살이는 어디서 사야 하는 지 몰라 헤매기 일쑤다. 빨래라도 하고 다니는 꼴이 장할 지경이다.

왠지 돈 주고 사기 아까운 게 있다. 난 비록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라이터를 돈 주고 사는 걸 아까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물잔이나 찻잔도 마찬가지이다. 여자 친구가 예쁜 잔을 보며 입이 헤벌어져 정신 못차리는 마음에 쉽사리 공감하지 못한다. 물을 담으면 그만인 도구가 비싸려면 한없이 비싸질 수 있는 개념 없는 값 정책도 못마땅하다.

온누리에 있는 무엇이든 들여다보고 남기는(review) 누리집인 레뷰에서 행사에 참여하면 예쁜 머그(머그잔)를 준다고 했을 때 “다 비켜! 이 떡밥, 아니 이 머그는 내꺼야!”라고 외치며 허억댔다.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잔을 공짜로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러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순수한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이 순전히 공짜로 잔을 얻는 얄팍한 마음에 혀를 낼름거리며 머그를 주는 행사들 중 두 개에 참여했다. 레뷰측에서는 토 달지 않고 순순히 당첨시켜주어 날 기쁘게 해주었다.

처음 받은 잔은 흰색 잔이었다. 정말 무척 예뻤다. 다소 단순한 모양새인데 그 단순함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마치 아가들 손짓 발짓에는 귀여운 척 하려는 어떠한 꾸밈도 없는, 심지어 투박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단순하고 빠른 곧은 선 움직임에서 오금이 짜릿한 귀여움을 느끼듯이, 레뷰 머그는 그러했다.

그 다음 받은 잔은 검은색 잔이었다. 얼씨구. 흰색은 아름다움이라면 검은색은 귀여움이었다. 같은 크기에 모양새인데 단지 빛깔만으로 개성이 서로 다른 잔이 되었다. 개성은 확연히 달라도 실은 한 형제라는 걸 나타내듯 빨간색,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마냥 빨간색, RGB 색으로 표현하면 (255, 0, 0)이라고 할 수 있을법한 빨간색으로 나란히 출신지가 적혀 있는데, 새빨간색은 새하얀색과 새까만색과 그리도 잘 어울렸다.

“이 잔은 커피를 마실 때 쓰자!”

나와 여자 친구는 의견 차이 없이 바로 쓰임새를 결정했다. 이건 참 대단한 상황이다. 난 살림에 자신이 없어 여자 친구의 곰손이 휙 휙 움직여 살림살이를 다룰 때 내 의견을 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레뷰 머그에 대해선 지지 않으려는 듯이 잔 쓰임새를 또렷히 말했고 여자 친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수가 고수와 꼭 같은 의견을 동시에 내놓아서 하수가 기쁨을 누린다면 분명 이런 느낌일 것이다.

나와 여자 친구는 커피를 에스프레소나 그에 가깝게 진하고 걸죽하게 내려 마신다. 양이 적다보니 커피는 빨리 식는다. 그리고 100cc 남짓한 커피를 담을 아담한 잔도 마땅찮다.

그런 점에서 레뷰 머그는 과연 훌륭했다. 잔 살집이 두꺼운 편이라서 뜨거움을 오래 품어 주었고 100cc 정도 되는 커피가 반에서 2/3 정도 차올라서 보기에도 아주 적당했다. 뜨거운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받아내면 그 뜨거움이 은은하게 잔 전체에 물결친다. 입을 대고 후우- 불면 콧등 부근부터 김이 안경 렌즈에 차올라 그 향을 입과 코와 눈, 귀로 전해준다.

“아, 그래, 이 향은 분명 케냐 AA구나”
홀짝 홀짝 커피를 다 마시더라도 레뷰 머그는 잠시 미련을 두듯 커피향을 품는다. 머그가 열을 오래 잡아두는 특징이 있다곤 하지만, 레뷰잔으로 진한 커피를 마시면 그 열을 붙잡아두기 보다는 온 몸으로 품는 기분이다. 같은 커피라도 딱 어울리는 잔에 마시면 머리 전체를 울리며 느끼는 맛이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예쁘고 푸근한 머그를 진작 받아 겨우내 알차게 썼다. 지금도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는 커피를 담고 있는 레뷰 머그가 하얀 노트북 옆에 놓여 커피의 따스함을 품고 있다. 이제 봄날이어서 이 녀석이 아니더라도 몸을 노곤하게 하는 따스함을 만날 수 있어 겨울에 즐기던 커피향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부른 날에 창을 활짝 열어 볕을 받아들이고 Radiohead의 No surprises를 들으며 레뷰 머그에 담긴 커피와 머그가 품은 향을 느끼는 새로운 즐거움이 겨울 정도이다.

더 늦지 않게 레뷰 머그 글을 쓰는 이유. 그것은 작은 머그 두 개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실용주의 세상에 떠밀려 잊혀지는 느긋함과 정신 만찬에 대한 작은 답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