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틈을 메웠으니, 우린 벗이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란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아첨이란 그 틈을 타서 결합되며, 고자질이란 그 틈을 이용하여 결별케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남을 잘 사귀는 자는 먼저 그 틈을 잘 타야 할 것이며, 남을 잘 사귀지 못하는 자는 틈을 타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p>

- 연암 박지원, 마장전 중에서

사람 사귀기가 많이 미숙하여 벗이 적다. 위로해줄 이가 곁에 없는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잘 느끼지 않으나, 깨닫거나 익힌 것에 대해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눌 이를 찾는 시간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아는 바가 없어 알고자 하는 바를 알지 못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야기 나눌 벗이 없는 것이 마음을 서리게 한다는 걸 알지 못하며 살다가, 한참 앎을 좇을 나이인 아이들이 기꺼이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고서야 벗을 적극 사귀어야 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해가 뿜어내는 그 엄청난 힘이 텅빈 우주 틈을 채우듯 복사하며 이 땅에 닿듯이, 통하면 나와 다른 이 사이틈은 으레 이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인연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통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기에 실용주의, 이성주의, 현실주의를 외치는 사람이 품기엔 사뭇 모순된 인연주의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사귐을 인연에 맡기는 것은 사람과 사람 틈을  잘 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변명이요, 먼저 다가가지 않는 변명이요, 그러면서도 누군가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벗이 되기를 바라는 변명이니, 이러한 인연주의는 끊어진 지 오래된 썩은내 나는 밧줄을 좇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벗이란 서로의 틈을 함께 서로가 가진 내음으로 메운 사이라 생각한다. 내음이란 말투, 생각, 버릇은 물론 더 나아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이며, 내음으로 틈을 메운다 함은 서로 통함을 말한다. 통함은 서로 닮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나누는 것이다. 비록 나는 벗과 다르나 기꺼이 벗과 같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다르면서도 같은, 틈이 있으나 메워진 사이, 즉, 벗을 만나려면 껍질에서 벗어나 가슴 속 깊이 숨어있어 쉬이 찾을 수 없는 알맹이를 찾아 대하여야 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가난한지 부자인지, 잘 생겼는지 못 생겼는지는 한꺼풀 벗겨내면 곧 사라지고 마는 얇은 껍데기일 뿐이다. 서로 틈이 부담되어 껍데기를 벗지 않고 있다면 자칫 그 겉모습을 그 사람이라 여기기 십상이며, 그렇게 잘못 메워진 틈은 서로를 알아가는 때가 거듭될수록 다시 벌어지고 만다. 멀리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향기를 머금은 꽃과 같은 그 사람의 알맹이로 벗으로 삼아,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있는 틈을 서로의 내음으로 채워야 한다. 그러므로 몇 살인지, 성별은 무엇인지, 어떤 환경에서 사는지로 벗을 가려서는 안 된다.

비록 사람을 사귈 때 껍데기를 보진 않았으나, 내 알맹이를 꺼내 보이려고도, 그렇다고 다른 이의 알맹이를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틈을 타려고 하지 않기에 남을 잘 사귀지 못했다. 그러면서 벗을 그리워하는 옛 사람들의 마음을 동경하며 내게 그러한 자리가 차려지지 않음을 탓했다.

좋은 친구가 있는데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지 못하는 심정은 꽃가루를 옮기려고 찾아드는 나비를 맞는 꽃의 심정과 같다. 찾아들면 정성스럽게 맞이했다가, 잠깐 머무르면 문득 마음 아파하고, 날아가면 못 잊어 그리워한다.

- 형암 이덕무, 청장관전서 중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이(不惑)에 이른 이들도 마땅히 나를 아저씨라 부르는 나이에 이르러 이를 깨달았으니, 꿀과 같은 술을 한 잔 가득 채워 높이 치켜세우며 맞아들일 나비같은 벗을 기다리며 안타까워 하고 있구나. 너와 나, 틈을 메워 우린 벗인고, 틈을 메우고 있는 우리는 벗이라 할 수 있는데 나는 진작 벗이라 부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쓸쓸해하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