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론에 대해서.

0. 간단히 먼저 말하자면

독서는 [삶이며 삶을 좇을 이유이자 근거]이다.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은 뭔가를 모른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좌절이며 나락이기도 하지만, 그 고통과 공포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 살아있음을 이끌어주는 것이 독서이다.

음.

규칙에 따라 짧은 호흡으로 마무리하자니 영 손맛이 안 산다. 그래서, 밥맛 없어보이는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본다. 난 여러분의 웹브라우저에 생길 스크롤바에 베풀 자비 따위 갖고 있지 않으니, 읽기 귀찮은 분은 저 아래로 내려가시기를. :)

1. 가위

꿈을 꾼다.

존재하지 않다고 누구나 판단할만큼 극미한 존재인 내가 어떤 공간에 떠있다. 사실 내가 나인지도, 존재하는지도 확실친 않다. 자각몽 증세로 내가 이 꿈이라는 이야기(story)에서 존재한다고 스스로 설정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내 따귀를 후려치고 다시 무덤으로 들어가는 기적을 가히 세울법한 말이지만, 내 꿈인데 뭐 어때. 내가 그렇다는데.

이런 하찮은 주장을 존재에 대한 근거로 삼은 채 어떤 공간에 떠있는 존재인 나는 갑자기 어마 어마한 힘에 밀려나듯 어딘가로 빠르게 밀려난다. 아주 짧은 시간 후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어찌나 큰지 밀려나기 전까지는 그 물체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어서 그게 공간이라고 착각할 정도인 것이다. 아마 빛의 속도로 그 물체로부터 바깥으로 밀려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평생을 물러나도 그 물체와 공간 경계를 구분하지 못해서 물체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 더럽게 크네...”

크다고 해서 더럽다는 말을 들을 이유 따위는 없다. 더욱이 큰 것과 더러움은 아무 관계도 없다. 하지만, 사고(思考)가 미치지 못할만큼 큰 무언가를 대하자 강하게 헛구역질을 하다 기어코 구역질을 한다. 경이로움을 토악질로 표현하는 버릇이나 습관은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 미천한 존재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엇에 압도되어 토악질을 한다. 더구나 그 무엇이 거대한 걸 알 수 있는 건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져가기 때문인데 어쩐지 그 거대한 무엇으로부터 깔려서 그 미천한 나라는 존재 마저도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인다. 죽은 벌레 시체나 싱크대 거름망에서 잘 숙성된 음식물 찌꺼기 덩어리를 만지는 두려움과는 다른 두려움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잊은 채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좌절하는 모든 공포의 원천같은 공포. 공포 of 공포. 킹왕짱 공포.

그 공포에 압도되어 다시 한 번 토악질.

퉤.

하지만, 자면서 토악질을 할 수는 없고, 입으로는 침 질질 흘리고 생식기로는 오줌을... 내보내는 대신 온 몸 곳곳에 수줍게 자리잡은 땀구멍에서 식은땀을 내보낸다. 이 불쾌함에서 깨어나고 싶어 “이제 그만~”이라고 너그럽게 말하며 잠에서 깨려하지만, 깨지 못한 채 부질없이 팔다리만 꿈틀거린다. 자각몽도 다 필요 없는 꿈. 바로 가위이다.

“젠장, 살려줘”

눈물이 나오는데, 이번엔 반대로 그 거대한 무엇으로 나라는 존재가 빠르게 끌어 당겨지듯 빨려 들어간다. 미친 여자라고 놀리려고 지어진 이름같은 광자, 즉 빛의 입자가 나와 나란히 그 무엇으로 나아가는 걸 보니 난 분명 빛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인데 내 질량이 무한히 늘어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질량조차 갖지 못한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저 큰 물체에 부딪히면 무지 아플 것 같아. 빛의 속도로 아픔을 느끼고 빛의 속도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사라지는 와중에 빛의 속도로 나는 슬퍼하겠지.

나는 나라는 존재가 속도와 공포, 슬픔에 뒤틀리고 짖이겨지는 왜곡 현상을 느끼며 저 거대한 무언가가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다시금 공포를 느낀다. 아까 말한 the 공포 of 공포, the 킹왕짱 공포를 느낀다. 다시 토악질.

퉤.

그리고 다시 밀려나고 토악질, 퉤. 다시 끌어 당겨지고 토악질, 퉤. 이렇게 끌어 당겨지고 밀려나기를 체감 시간 1~2초 단위로 끝없이 되풀이한다. 한 번씩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내 몸은 공포에서 벗어나려 꿈틀 꿈틀거린다.

2. 자살

몸이 허하면 가끔 저 꿈에 짓눌리곤 한다. 시놉시스는 달랑 저거 하나이다. 자각몽 증세가 있어서 꿈을 꾸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꿈을 바꾸거나 잠에서 깨는데, 유독 저 꿈만은 나를 온전히 집어 삼켜 제멋대로 휘두른다. 그래서 20대가 되기 전에 10대에 청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인 것처럼 서둘러 저 꿈에 정의를 내렸다. 가위라고.

기억으로는 9살 때부터 가끔 저 가위에 눌렸으니 이제는 익숙해지거나 만만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저 가위에 눌릴 때 나라는 사유체가 후덜덜 공포에 떤다. 죽을 맛이다.

그래서, 죽으려 한 적이 있다. 아니, 가위에 눌려서 죽으려 한 건 아니고, 가위에 눌릴 때 잡아먹히는 그 공포를 눈 멀쩡히 뜨고 정신이 깨어있을 때 맞닥뜨려 몇 날 며칠을 고생하던 중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인지(when), 어디서 왔는지(where), 그게 무엇인지(what),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인지(who), 어떻게 온 것인지(how), 왜 왔는지(why) 육하원칙에 따라 따져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꿈세계에서 현실계로 그 가위 괴물은 나를 찾아왔다.

내 마음보다 작은 벽이 사방팔방으로 내 마음을 꿰뚫은 채 굴레처럼 가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철벅 철벅 피를 흘리는 마음 안 쪽에서 투명한 벽 너머를 보고 싶은데 겁이 났다. 보이지 않을까봐. -7.5디옵터에 근시와 난시가 뒤섞인 눈이라서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눈에 뭔가 닿아 시신경을 통해 뇌에 인지가 되어도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인지조차 몰라 보지 못할까봐. 존재하는데 존재를 깨달을 깜냥이 없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낼까봐 겁이 났다.

올림픽 대교 위에서 검게 울렁이는 한강을 내려다본 건 새 회사 입사를 앞둔 며칠 전이었다.

3. 무지무지하게 무지(無知)해서 무지(無志)하다

아침녘 한강변을 돌다 물에 퉁퉁 불어난 내 시체를 보고 놀랄 애꿎은 사람, 기가 막혀 생기(生己)가 막힐 부모님, 그리고 나 나름대로 세웠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저버린다는 생각에 다시 터덜 터덜 집에 들어왔다. 대체 왜 이럴까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나 자신이 기가 막혔다. 아, 나 무지 똘똘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자신이 죽고자 하는 이유도 모르는구나. 살아야 할 이유만 세웠지, 사는 이유와 죽는 이유는 아예 몰랐구나.

이거 무척 슬프구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구나.

유레카. 난 그 슬픔이 순식간에 공포로 탈바꿈하는 변신 과정을 목격해냈다. 지나치게 생동감이 넘치도록 현실계에 나타난 가위 속 공포의 원인은 내가 무지무지하게 무지(無知)해서 무지(無志)하기 때문이라는 걸 마침내 깨달았다. 알 속에 갇혀 질식하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가 생각이 깨어있던 친한 형을 찾아갔다. 미리 그 형이 사는 동네에 도착해서 김빠진 오줌맛이 일품인 플라스틱 맥주 피쳐 두 개와 과자 몇 개를 사들고 퇴근 중인 그 형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형 몸뚱아리만 뉘일 수 있는 공간만 남은 작은 옥탑방에 가서 내 우울증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왔다. 종일 굶은 상태였지만 그때는 젊었고 위장과 간은 쫄깃하여 취하지 않았다. 내 무지와 전혀 관계없는 대화를 나누며 내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확신을 가진 건 술을 마신 것과 전혀 관계 없다는 뜻이다.

4. 독서는 삶이며 삶을 좇을 이유이자 근거이다.

삶은 행복이나 즐거움이라는 생각보다는 피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다.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전문서나 기술서를 읽고 따라잡기도 벅찼다.

  • 아씨, 얘는 왜 영어로 책을 써서 날 괴롭히고 난리야? 아참, 얘 미국애지...
  • 좀 번역투가 남긴 했지만 그래도 꽤 번역 잘 된 책이네...어? 근데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
  • Direct3D로 픽셀 쉐이더 쓰는 건 참 괜찮단 말야. 아, 근데 나 기획자였지.
  • eCRM하자는 책인데 글쓴이는 CRM만 알지 e는 잘 모르잖아. 사기꾼.
  • 그래, 일본이 캐릭터 비즈니스를 잘 하는 건 나도 알아. 그러니 당신의 생각을 말해봐. 신문지에 있는 기사 오려 붙여놓지 말고.

이런 책들을 읽으면 시덥잖은 생각을 많이 했다. 기술, 기법, 기교이 새로 나와 따라잡기 벅찰수록 한숨과 따분함이 일었다. 깨달음이 아니라 닮음 뿐이었다.

집에 돌아오고 며칠 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읽었다. 나를 도륙하는 공포심을 치료할 적절한 책은 아니었다. 몸살감기 걸렸는데 대일밴드 붙이는 격. 하지만, 이 두 책을 읽고 뭔지 모를 덩어리가 마음 속에서 뭉클거리고 꿀렁이는 걸 느꼈다. 시덥잖은 생각을 일으키던 책과는 다른 자극이었다. 단지,

어? 음? 어라? 흠?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겠지만, 어쨌든 다르긴 다른 느낌이었다. 어? 음? 어라? 흠? 얘네들을 옆구리에 끼고 슬며시 벽 너머를 봐도 죽진 않겠다고 근거없이 낙관하기 시작했다. 아, 나 원래 낙천주의자이지...

이때가 2003년 겨울이었다. 소년소녀가장 수기 입상작 모음인 “혼자도는 바람개비”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어릴 적에 읽고 눈물 펑펑 흘리곤 했지만, 이런 문학, 인문 책은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곤 했다가 스스로가 무지무지 무지하다는 뜬금없는 깨달음에 의식하고 읽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B씨오줌을 누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Y씨와 비교하면 꽤나 늦게 여러 책을 읽기 시작한 셈이다.

책 읽기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에 일부러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손에 잡히면 읽곤 한다. 주로 대중교통을 타거나 손에 책을 드는 것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을 때 읽다보니 한달에 열권 정도 읽는다. 책을 제대로 이해하며 읽는다기 보다는 눈길이 글자, 문장에 닿을 때만큼은 그 문장을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두는 정도라서 책을 읽고나서도 잘 정리를 못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기도 하다. 직접 경험으로 앎을 쌓기 귀찮으니 간접 경험으로 쌓으려는 얄팍한 수작인데, 책읽기는 이런 게으름을 유지하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도구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있어서 책읽기는 삶을 사는 이유이다.

앎을 위해 공부를 한다. 그때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진실을 피하려는 듯이 계속 공부를 한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처럼, 공부라는 발버둥을 치면 칠 수록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절망에 더욱 더 빠져든다.

그 절망과 좌절 속에 책을 읽는다. 이해를 하든 못하든 책을 읽으며 접하는 개념 하나 하나를 머리 속에 흘려 넣는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듯 무심하게 머리 속 공간을 떠다니던 작은 개념 덩어리들이 맞닿아 서로 이어질 때가 있다. 다른 책을 읽을 때이다. 관련 있는 책이든 별로 관련 없는 책이든 상관없다. 서로 다른 작은 개념 덩어리들이 짜릿 짜릿 전기가 흐르는 줄로 이어지고, 멀리 물러나 바라보면 마치 먼지 덩어리으로 보이기도 하고, 구름으로 보이기도 하는 좀 더 큰 개념 덩어리가 태어난다.

이런 덩어리는 내가 그걸 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덩어리가 떠다니는 허공은 내가 모르는 무엇이기도 하다.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은 뭔가를 모른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좌절이며 나락이기도 하지만, 그 고통과 공포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5. 이야기 이어가기

Inuit님께서 “나의 독서론”으로 글을 시작하신 이래로 buckshot님, 고무풍선기린님, 류한석님, mahabaya님, 어찌할가님, 벼리지기님을 거쳤고, 이에 그치지 않고 바람의 노래님, 모노피스님, 꼬미님, 김형규님, 꼬날님에 이른 덕에 윤호님께서 자사에서 개발 중인 웹서비스를 홍보할 기회와 오줌누며 책 읽는 영웅담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BKLove님께서 독서론 글쓰기를 이어받은 뒤 내게 차례를 넘기셨다.

어떤 분께 다음 차례를 넘길까 잠시 고민해봤는데, 독서광인 교주그녀님과 20대를 넘기기 전에 책 1,000권 읽는 목표를 달성하셨던 iron님께 슬쩍 넘기기로 결정했다. 부디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

이 이어가기는 몇 가지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쓰고,
  • 앞서서 글을 이어온 분들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쓰며,
  • 독서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실 두 분을 지정하면 된다고 한다.
  • 아참, 6월 20일까지만 유효하다고 한다.
  • 이외 자세한 규칙은 릴레이의 오상을 참조 바란다.

밤 2시에 글을 열었다가 4시간 넘게 글을 두들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오래 수다를 떨어 목이 쉰 것처럼 길게 글을 치다보니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 그래도 개운하긴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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