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이 개운한 낙지 음식점, 낙지도

글을 열며

맛객님께서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며 소개하기 싫다는 식당이 있어 여러 사람이 애태운 적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나인데, 얼마 전에 그 소개하기 싫은 식당을 공개하셔서 부천까지 먼길 다녀왔다. 먹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내가 한끼 먹으려고 저 먼 곳까지 다녀오다니. 낙지 머리에서 머리털 자랄 일이다.

실은 난 매운 낙지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통각에서 오는 짜릿함과 그 통증 사이 사이로 배어 나오는 단맛, 그리고 압박받아 침이 입안에 가득 고이면 느껴지기 시작하는 감칠맛이 잘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런 어우러짐 보다는 들입다 매운 맛만 강요하는 식당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혹은, 합성조미료로 단맛과 감칠맛을 내서 매운 음식을 먹고도 개운함을 느끼지 못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맛객님의 저 글을 보니 기대감이 들어 발걸음을 떼었다. 가게는 생각보다 작아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만족스러운 음식

낙지도 차림판

여러 낙지 음식 중 철판낙지볶음을 시켰다. 산낙지와 기절낙지가 있는데 살아있는 낙지를 그 자리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기절낙지를 골랐다. 아, 물론 인터넷에서 맛객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멀리서 왔다며 덤 좀 얻어먹으려는 얄팍한 꼼수도 주문과 함께 했다.

철판낙지볶음

갖은 양념과 채소 위에 큼직한 낙지 두 마리가 철판 위에 누운 채 여러 가지 밑반찬을 벗삼아 우리 자리로 왔다. 밑반찬으로는 마늘장아찌, 오이소박이, 고추무침 등이 나왔는데, 특이하게도 토하젓도 내주셨다.

토하젓

토하젓은 민물새우로 만든 젓갈로 전라도 고유음식인데 꽤 비싼 편이라서 여느 식당에서는 잘 내오지 않는다. 명란젓도 반찬으로 내오는 곳이 흔하지 않은데 명란젓과 비슷하거나 좀 더 비싼 토하젓을 반찬으로 정말 나올 줄이야. 밥에 올려 슥슥 비벼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다른 반찬도 모두 맛있다. 합성조미료만이 내는 아주 진한 감칠맛은 없지만, 깔끔하고 개운하며 재료 맛을 느낄 수 있는 맛이 좋다. 굳이 꼽자면 마늘장아찌가 참 좋았다. 마늘을 아삭 깨물면 숨이 죽은 알싸한 마늘향이 맑은 간장에 어울리는데, 심지어 달달한 맛까지 느껴졌다.

삭힌 홍어 회

낙지가 익기를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홍어 먹을 줄 아냐고 물어오셨다. 멀리서 왔으니 맛뵈기로 주겠다고 하셔서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렸다. 먹긴 먹어도 즐길 줄 아는 건 아니라서 좀 부담스러웠다. 잠시 후 삭힌 홍어 회 다섯점과 탁주를 내오셨다. 바로 홍탁이다. 한점 집어 먹어보니 암모니아에서 나는 구린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톡 쏘는 맛이 혀에 감겼고, 입안을 탁주로 마무리 지으니 참 좋았다. 어지간한 횟집에서 먹는 홍어보다 훨씬 나았다. 삭힌 홍어 잘 못먹는 여자 친구가 맛있다고 나보다 잘 먹었다.

솥으로 갓지은 밥에 반찬 이것 저것 집어먹다보니 낙지를 먹기도 전에 밥을 다 먹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맛깔나는 밑반찬을 앞에 두고도 밥을 아끼며 끙끙대며 낙지 익기를 기다렸다. 근데 먹어도 된다는 할머니 말씀.

철판 낙지 볶음

당신들이 싫어서 합성조미료를 쓰지 않고 천연조미료를 쓰신단다. 낙지도 싱싱하고 국물도 깔끔했다. 매운 낙지 음식을 먹다 무심코 양념장 덩어리를 먹으면 비릿하게 혀를 감싸는 합성조미료 맛을 만끽할 수 있는데, 이곳 낙지 볶음은 그렇지 않았다. 전라도에서 직접 만들어 보내온 좋은 재료를 쓴다는 말씀을 하실 때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럴만 했다.

이미 밥 한 그릇 해치웠는데, 남은 국물에 밥을 비벼먹지 않을 수 없어 밥 하나 볶아달라고 했다. 분명 무리였지만 먼길까지 와서 볶음밥도 안 먹고 갈 순 없었다.

볶음밥

밥을 철판에 올리고 김을 뿌린 뒤 직접 짰다는 참기름을 두르고 국물에 비빈다. 향이 강한 재료들인 김과 참기름, 그리고 낙지 볶음 국물에 밥을 비볐는데 입안에 개운하지 않게 남는 뒷맛이 없다.

반찬이 먹을만치만 나온 탓도 있지만, 입에도 잘 맞아서 남김없이 싹 해치우니 어느 새 사람들이 점심 먹을 시간인 12시 30분이 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시각까지 손님은 우리 일행 뿐이었다. 아직 연 지 얼마 안 된데다 소문도 안 났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합성조미료가 내는 강한 맛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 입에는 이곳 음식이 밋밋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엔 밋밋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료 맛을 느끼는 데 방해가 되는 자극 강한 합성조미료 맛이 없어서 맛을 만끽했다.

마치며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은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음식을 밖에서는 먹기 참 힘들다. 시간과 비용에 쫓겨, 혹은 이미 강한 맛에 길들여진 손님들 입맛에 맞추느라 합성조미료를 쓰는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합성조미료를 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커녕 재료 원산지도 못미더우니, 음식 먹는 기준이 입맛에 있지 않고 믿음에 두어야 한다. 만족스럽게 먹고도 가게에서 나오며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맛있고 깔끔한 음식을 먹기를 바랐다. 한편으로는 손님이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심도 들었다. 손님이 많아지면 시간과 양에 쫓겨 이곳도 결국 합성조미료를 쓰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조미료와 좋은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을 보니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소한 실수로 돈 이체가 되지 않아 뙤약볕 아래에서 몇 번이나 은행에 다녀오신 두 분의 여유를 보며 시간에 쫓겨서 그 자부심을 저버리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이 미소와 함께 생겼다.


가는 길

1호선 부천역에서 내린 뒤 북부 광장 방향 출구로 나온다. 출구에서 약 10분 정도 직진하면 되는데, 부천역 출구 양갈래 길에서 왼쪽 길로 나오면 좋다 (자동차 진행 반대 방향). 걷다보면 큰 사거리를 건너는데, 횡단보도에서 대성병원이 보인다. 그 부근에 있는 SK 주유소 바로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