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계층 구조와 가위

나는 여기서 인간이 이제껏 이룩해 놓은 과학과 종교를 통틀어서 가장 멋진 아이디어를 하나 이야기하고 싶다. 그 아이디어는, 심장 박동에 박차를 가할 만큼 생소하고 등골이 오싹하게 우리를 떨게 하며 온몸에 묘한 전율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고 어쩌면 영원히 검증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인지 모른다. 그것은 '우주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계층 구조階層構造, hierarchy of universes'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p>

(생략)

이 계층 구조는 한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우주들의 계층 구조'가 이렇게 아래로만 연결되라는 법도 없다. 위로도 끊임없이 연결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은하, 별, 행성, 사람으로 구성된 이 우주도, 바로 한 단계 위의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소립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러한 계층 구조는 무한히 계속된다. 아, 내 사고의 흐름을 절벽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중에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지면 가위에 눌리곤 하는데, 늘 똑같은 가위였다. 허공에 떠있는 나는 저 멀리 작은 점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점을 향해 날아간다. 근데 알고보니 내가 그 점에 다가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점만큼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부딪힐 것처럼 점점 그 점만큼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 그 점보다 작아진다. 더이상 그 점은 점이 아니라 면이며, 나는 한없이 계속 작아지고 있다. 끝을 알 수 없을만큼 그 면은 넓어져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끝에 도달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작아지고 있다. 나는 너무 작은 존재여서 내가 나를 느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면을 꿰뚫고 나아간다. 그리고는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듯이 그 면이 점점 좁아진다. 구토가 나올만큼 넓고 거대한 그 면은 어느 순간 나와 같은 크기이더니 이제는 점점 작아지는 점이 되어 저 멀리 밀려 나아간다. 더이상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은 존재인데, 그곳에 존재가 있다는 인식과 인지가 든다. 너무 작아서 토가 나올 것 같다.

이런 운동을 끝없이 반복한다. 정말 무서운 가위이다.

나는 우주를 경외하며 우주에 늘 호기심을 품고 있지만, 그 경외심과 호기심만한 공포증도 있다. 우주, 미립자. 아니, 우주만물(cosmos)을 경외한다.

우주에 대해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우주계층구조를 체험하는 내용으로 가위를 눌린 걸 보면, 우리 유전자엔 우주에 대한 본능같은 경외심을 품게 하는 무언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행성으로부터 형성된 원소는 무기물 스프로 둥둥 떠다니다 우르릉 쾅쾅 번개 전기 작용에 유기물이 되고, 자가복제하는 분자, 세포 단계를 거치며 층층이 쌓아온 우주에 대한, 우주를 향한 정보.

아무튼. 경외하는 건 경외하는 것이고, 저 가위에 한번 눌리고 나면 자아 파티션 중 일부를 날려먹고 새로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찝찝한 기분이 든다. 며칠 전에도 가위에 눌릴 뻔 했는데, 몸 관리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