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써 술

술 기운이 돌면 기분이 좋다고 여기기 보다는 불쾌하다고 여기는데다 술을 잘 못 하다보니 술을 잘 즐기지 않는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고기를 먹을 때 술이 빠지면 서운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한번은 물맛이 되게 안좋은 식당에 간 적이 있다. 한 여름에 미지근한 맹물이라도 잘 마시는, 맹물 자체를 좋아하는 내가 맛없다고 느낄 정도면 정말 심한 물맛이다. 난 식사를 하다 목이 메이면 물을 벌컥 마시는데, 물맛이 없다보니 참 난감했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맥주였다. 한결 나았다.

그제서야 왜 식사할 때 술을 먹는 지, 반주를 마시는 지 알 것 같았다. 취하려고 술을 마신다기 보다는, 고기 등을 먹을 때 맹물 보다는 음식맛을 돋우고(실은 혀를 거쳐 머리로 전달되는 맛이라는 화학 작용을 왜곡시켜 맛있다고 속이는 현상이라고 여기지만, 어쨌든...), 목이 메일 때 향과 맛이 있는 음식으로써 술을 마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종류와 역할, 속성 등을 놓고 볼 때 음식이나 물과 분리해서 여기는 나로서는 그동안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겠지만, 술을 음식 범주에 넣으면 이해 못할 것도 없더라. 이를테면 소금간을 하지 않은 국물 역할이랄까?

이 글을 보고 누군가 “그럼 회식 때 식사하며 술을 먹은 이유는 뭐냐?”라고 묻는다면, 음식으로써 술을 마신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러하니까 분위기 맞추려고 따라한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즘엔 주량이 줄은 것인지 술이 버겁다보니 굳이 마셔야 하는 자리 아니면 산뜻하고 명랑하게 술 안 마신다고 거절한다.

차라리 음식으로써 국물류처럼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씻기만 한 과일이나 물 많은 채소가 반찬처럼 나오는 게 좋다. 수박이나 귤, 딸기 등을 밥 반찬으로 먹는 나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듯이, 음식으로써 술을 마시는 사람을 나 역시 이해할 순 있어도 공감하긴 쉽지 않다.

물론, 이런 서로에 대한 이해(?)는 음식으로써 술을 마신다는 내 추측이 맞아야 성립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