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결심

창업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렵고 힘이 드는 건 창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 실은 마음은 51:49 정도로 창업으로 기울어져 있다. 단지, 49가 눈에 밟혀 결정을 내리지 못 하고 고민하는 척하거나 고민하는 것이다. 좀처럼 이 고민을 극복하지 못 한다면 창업을 포기하는 게 낫다. 창업하는 순간 창업을 고민하는 것보다 더 피말리고 살벌한 의사결정이 연이어 닥치기 때문이다.

1. 그때 이야기

안정과 불안정

2009년 초였다. 당시에 다니던 회사는 안정성을 보고 선택한 회사였다. 하지만, 내가 속한 팀은 곧 혼돈과 혼란을 겪기 시작했고, 어느 날 문득 격랑 한가운데에서 불안정하게 휩쓸리고 있는 날 목격했다.

불안정.
내가 처한 불안정은 회사에서 안정된 급여를 받지 못 하는 경제/재무 종류는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그 회사에 기대한 안정이란 내가 하는 일로 세상에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환경이나 기회였다. 내 능력과 역할, 임무가 프로젝트에 영향력을 발휘하길 바랐고, 그 프로젝트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 안정은 흔들렸고, 멀미나는 흔들림 속에서 보낸 시간은 내가 하는 일이 조직에 있어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는 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가슴아픈 과정이었다. 내가 좇던 안정은 무너지고 있었고 스스로에게 안정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됐다.

답을 쉽게 찾진 못 했다. 회사를 떠나겠다고 막연히 마음은 먹었지만 그 후에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할 지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하려면 창업을 해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창업을 해도 되는지 몰랐다. 2,000년에 창업을 했을 땐 운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이 서른에 10년도 훌쩍 지난 그 당시 운을 또 기대하며 창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 "이봐, 단지 네가 하고싶은 걸 하려고 창업하겠다고?! 멍청한 소리 관두고 네가 잘할 일이나 찾아봐"라고 충고했다면 아마도 창업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창업을 결심하다

생각에 생각만 덧칠하던 중에 봄이 오고 있었다. 창업을 시작하는 지인들 소식이 들려왔고, 간간히 합류 제안을 받았다. 전자상거래(e-commerce)쪽 사업을 하겠다는 친구[1]가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난 전자상거래를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게임을 만드는 스타트업쪽으로부터 제안도 받았지만 그때엔 게임 외 영역을 좀더 도전하고 싶었다. 동영상 검색 서비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과도[2]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역할과 회사에서 원하는 역할이 달랐다.

한 친구는 아이폰 앱을 만드는 모바일 회사를[3] 공동창업했는데, 이 스타트업엔 관심이 가면서도 망설여졌다. 도무지 거리낌이라고는 없이 순식간에 내 마음이 모바일로 가득 찼는데, 뭔가 의심이 가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 하나없이 지나치게 깔끔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 도리어 날 망설이게 했다. 변을 보고 뒤를 닦는데 전혀 묻어나오는 게 없는 것같은 찝찝함이랄까.

결국, 반만 다리를 걸치기로 했다. 그리고, 다니던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바로 배에 올라타지 않고 곳곳을 스쳐지나는 세상바람을 쐬고나서 마음을 정하기로 했다. 창업바람, 소셜 바람, 모바일 바람, 내 바람. 각종 바람을 좇아 밖으로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딱히 의도하진 않았는데 비영리 단체나 좋은 사회 운동을 하는 단체 여럿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처음엔 내 재능을 기부하자는 마음으로 발을 들였지만 나보다 훨씬 열정 넘치는 뜨거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나중엔 내가 그들의 열정을 기부받는 관계가 됐다. 그 열정은 내 마음에 불을 지피고 키웠다.

그 당시, 난 발을 반만 들인 그 회사와 팀을 좋아했다. 뭔가 계속 시도하며 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팀이 일하는 방식은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난 이 회사에 완전히 몸을 실어 팀을 바꿔볼 것인지 아니면 어설프게 다리 걸치지 않고 내 갈 길을 갈 것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에 난 내 마음이 떠나는 이유가 대체 뭔지 원인을 찾느라 고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명확한 답은 찾지 못 한 채 완전히 반만 걸친 발을 뗐다. 그리고, 그 답을 내가 만든 팀에서 찾기로 했다. 창업을 결심한 것이다.

창업 결심 전 현실과 결심 후 현실

창업을 결심하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통장 잔고 확인이었다. 평소에도 한 달에 한 번쯤은 통장 잔고를 확인했지만, 창업을 결심하고나서 통장을 확인하는 목적은 결심하기 전과는 달랐는데, 창업을 결심한 이후엔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실행 계획을 짜려고 보는 것이다.

통장엔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약 6개월 정도 활동할 수 있는 돈이 있었다. 6개월 동안 뭘 어떻게 해야할지 마음이 급해졌다. 새벽 4시였지만 등골이 서늘해서 졸리지 않았다. 창업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전기요금, 도시가스비, 교통비 등 평소 잘 와닿지 않던 것 하나하나가 현실감있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이미 현실이었지만 그제서야 현실이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만 하더라도 현실은 연안해에 튜브 두른 채 둥둥 떠다니며 시원한 음료를 마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창업하는 순간부터 현실이라는 바다는 차고 거칠어진다. 잔잔한 물결은 집채만한 파도로 변하고, 따사로운 햇볕은 일사병을 일으킬 정도로 정수리 바로 위에서 찍어내리는 강한 직사광선이 된다. 간지럽게 다리를 스치고 지나던 물고기는 사라지고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백상아리 등지느러미만 눈에 보인다.

대부분 창업자의 현실은 이런 바다 한가운데에 구명 조끼 하나 달랑 입은 채 둥둥 떠있는 처지와 같다. 돈이나 경험이 많다면 구명 조끼가 좀더 크고 튼튼하기야 하겠지만 배 한 척 없이 죽을 둥 살 둥 헤엄치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공평하고, 공평해서 경쟁 벌이는 맛이 있다. 물론, 재벌가가 친인척의 신생 계열사를 밀어주는 경우는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순 없다. 그건 땅 짚고 헤엄치기니까.

어쨌든, 창업을 하면 현실은 완전히 달라진다. 창업을 시작하는 건 연안해에 있다가 대양 한가운데로 스스로 헤엄쳐 가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창업을 고민하는 단계에서 창업을 포기한다. "저 무시무시한 바다 한가운데로 스스로 헤엄쳐 들어가야 한다니! 이건 미친 짓이야!" 맞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러니까 바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창업은 미친 짓이다.

2. 돌이켜보기

hello world, make world

창업 전 현실과 창업을 시작한 후 현실 모두엔 공통점이 있다. 이런 현실이든 저런 현실이든 현실 그 자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도 내가 바라는대로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바뀌긴 바뀐다. 아주 거대한 힘을 가하면 느리게나마 변하긴 한다. 세상이 타는 시간과 사람이 타는 시간은 속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사람의 시간에 비추어보면 너무 느린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과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이미 나왔다. 이 현실과 세상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면 저 현실과 세상으로 내가 옮겨가면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게 훨씬 쉽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신을 먼저 바꾸는 것만으로도 내 영향력이 미치는 내 세상이 바뀐다. 그 세상에서 내 현실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시작할 때 내 세상 크기는 물잔만 하겠지만 이 세상만큼 내 세상을 키우면 결국 세상은 내가 원하는대로 바뀐 것이다. 세상이라는 게임을 내 방식, 내 규칙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change the rules). 거창하게 썼지만, 결국 내게 있어서 창업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내 세상을 만들기에(make world) 앞서 그 세상을 향해 인삿말을(hello world) 날리는 것이다.

결단

창업을 하면 짊어지게 될 바뀐 현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 다시 말하면, 현실을 외면한 채 창업을 일단 저지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면 현실성 없는 사람이 될 뿐이다. 자신이 수습하고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현실인지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그런 현실이고 창업할 의지가 있다면 창업하는 것을 1시간 고민하나 10시간 고민하나 결정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창업하기 전 현실에 적응한 내 정신과 몸을 창업한 후 현실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창업 과정에서 잘했다고 나 스스로 칭찬하는 점이 있다면 창업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업 고민만 수 개월씩, 몇 년씩 하거나 창업을 포기할만한 그럴듯한 변명거리는 금방이라도 대다수 찾아낼 수 있었지만, 내 마음이 단 2만큼이나마(51:49) 창업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 현실에 맞추어 창업 계획을 단순하게나마 짜고선 지체없이 시작했다.

그렇게 난 창업을 시작했다.


1. 그 친구는 명품 브랜드를 할인해서 파는 프라이빗(private) 명품 할인 판매 서비스인 클럽베닛을 만든 정지웅 대표이다.

2. 동영상 검색 분야에 대해선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은 엔써즈였고, 이 회사는 2011년도에 KT에 인수됐다.

3. 이 회사는 이후 데브시스터즈가 되었고, 합류를 제안한 친구는 젤리버스라는 회사를 창업한 김세중 대표이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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