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쫄지말고 창업

글을 열며

한동안 정신이 나가있어서 한 달에 한두 권 정도 드문드문 책을 읽다가 슬슬 몸과 마음이 회복세에 들기 시작했다. 크게 앓은 이는 일단 죽으로 위장을 달래며 회복한다고, 복잡하거나 어려운 책, 양념 많이 뭍은 책은 손길부터 가지 않았다. 그래서 담백하면서도 명확한 책부터 읽는데 마침 이희우 대표님이 쓰신 책이 나와서 바로 샀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약 1년 동안 플래텀에 연재된 글을 덧대고 다듬어 묶은 책인데, 담백하면서도 시원스러운 글맛을 익히 알고 있어서 글맛 편식 중에도 고민없이 고른 것이다.

서평...?

내가 처음 종합격투기를 접한 건 2000년 초반이었다. 인터넷에서 어렵게 찾아 본 경기 영상 중엔 초창기 영상이 많았는데, 그때에 비해 고도로 기술이 발전한 최근 종합격투기에 비교하면 참 소박하다고 생각될만큼 어설프고 미숙해 보인다. 요즘이야 선수는 자신의 주 기술 기반이 있어도 그라운드 기술과 입식타격 기술 모두 훌륭하게 균형을 맞춘 선수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마치 대전 격투 게임처럼 주력 기술과 무술만을 놓고 겨루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장르 불문하고 닥치는대로 우걱우걱 승리를 잡아먹던 그레이시 유술을 썩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 사쿠라바 카즈시 선수가 호이스 그레이시를 이긴 경기를 보며 환호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당시 경기는 내게 낭만으로 남아있다.

이희우 대표님은 쫄지말고 투자하라 팟캐스트에서 목소리로 처음 뵈었다. 대체 이 웃음소리는 누가 내는 것이지? 싶어서 방송 초반에 자기소개하며 인사를 할 때 이름을 들으려 애썼는데 좀처럼 알아듣기 힘들었던 이름. 이희웅? 이희욱? 이희우? 2002년 4월 24일 쫄투 현장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비로소 상상 속 사람을 현실감 있게 느끼게 되었다. 그걸 인연으로 몇 차례 그와 이야기 나누거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초반에 내게 새겨진 그의 인상은 낭만파였다. 남들이 종합격투기로 거듭나고 있을 때에도 입식타격가의 낭만을 좇아 호탕하게 웃으며 실전을 누비는, 낭만을 좇는 투자가. 나는 회사 대표로, 그는 벤처캐피탈 대표로 투자 협상을 할 땐 그 인상이 (좋은 의미로)조금 깨지긴 했지만, 사석에서 만나는 그는 여전히 쫄지 않고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마침내 끝맺는 여전한 낭만파였다.

책 이름은 “쫄지말고 창업”. 단순히 이 분의 대표 구호인 쫄지마를 브랜드로 활용한 것 같지만, 내용을 보면 이 제목이 가장 완벽하게 책을 나타낸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쫄지 않는 그의 기질 혹은 삶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책 곳곳에도 그의 낭만스러운 면이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중에 함정에 빠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이런(?) 나도 창업했는데...”라는 생각을 분명히, 아니, 아마도 담아내려 한 것 같은데, 그런 쫄지 않는 그의 강단은 솔직히 말해서 그의 만렙 스킬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 성격에는 그의 그런 성향은 마치 하루에 8시간씩 충분히 자면서 공부했더니 서울대에 합격했어요, 라는 말처럼 전해진다. 공감대 형성 실패! 난 창업보다 창업 안 하는 게 더 쫄려서 창업한 것이고, 사업 하는 내내 쫄렸는데... 어쩐지 반칙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그는 창업 과정도 내 입장에선 너무 평탄하고 수월해보였다. 적기에 여러 사람에게서 도움도 받고 팀을 만들고, 엔젤 투자까지 받았다는 그의 창업기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목차를 보자마자 후회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 실수했구나. 운기조식하며 회복 중인 내가 읽기엔 글맛은 좋을 지 모르나 도무지 공감하며 읽을 수 없겠는 걸...' 그런 마음으로 2장 1절을 연 나는 그대로 끝까지 단숨에 책을 다 읽었다.

이 책을 요약해서 소개를 해야 한다면 난 딱 두 절을 꼽는다. 2장 1절 - 왜 창업을 하는가?, 그리고 에필로그. 2장 1절은 창업가로서 가져야 할 “왜”에 대한 이야기라면, 에필로그는 이희우라는 사람이 창업가로서 갖고 있는 “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창업을 하는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큰 돈을 벌려고?

열정을 다해 열심히 일해라. 단, 가장 소중한 재산인 시간을 가장 의미 있는 일에 써라. - 승려와 수수께끼, 258쪽 중에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인 시간을 가장 의미있는 일에 쓴다는 것은 내 일생을 걸고 일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거대한 부도 명성도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한 마음으로 나에게 삶에 대한 왜(why)를 묻고 구한 답이다. 그것이 내게 가장 의미있는 일이고, 가장 소중한 재산을 들일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한 보상은 그 일을 하는 여정 그 자체이다.

여정 자체가 보상이지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목적이죠. 그러니 우리에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 쫄지말고 창업에 갈무리 된 승려와 수수께기 내용 중에서.

만약 한 치 거짓 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왜”를 구했다면, 설령 성격이나 강단이 잘 쫄아드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말대로 쫄지말고 창업해도 될 것이다. 그 힘은 그 어떤 도움보다도 깊고 강해서 창업과 사업이라는 힘든 여정을 보상으로 만들어 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여정을 만끽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그와 공감을 이루며 즐거이 책을 읽었다.

글을 닫으며...

분명 쫄지말고 창업하라는 책인데 읽고나면 이희우라는 사람을 소개 받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그가 낭만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닌 현실감을 잃지 않고 실행하는 실행가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낭만이지만 머리를 움직이는 건 현실감이라고 할까.

서평을 쓰려 했는데 감히 인평을 써버린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창업에 매력을 느끼는 것 보다 이희우표 쫄지 않는 낭만과 현실감에 매력을 더 느낀다면 아마도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덧쓰기 :
아참, 이희우 대표님. 연암 박지원의 월하일기를 즐겁게 읽으셨다 하시니, 정민 선생님이 쓰신 “비슷한 것은 가짜다” 책을 추천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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