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우기 (마지막 편), 팀의 목적

자리에 앉혔다고 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팀이 만들어졌다고 팀워크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난과 역경에 처한다고 서로를 잇는 끈이 생기지 않는다. 팀은 구성원들이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세상에 내놓지 못해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필요에 따라서는 독기가 바싹 올라 같은 방향을 향해 실행력을 낼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냥, 괜히 생기는 것은 없다.

1. 그때 이야기

합병

2011년 3월. 조영거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논의할 게 있다며 우리 사무실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나와 그는 비슷한 시기에 넥슨 코리아에 근무했지만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2009년에 모블리에1라는 회사에서 만난 게 인연이었는데 그때에도 딱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난 모블리에에 반만 다리를 걸친 터라 친해질 계기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창업을 결심하고는 모블리에에 합류하지 않았고, 얼마 후 그도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혼자 게임 기획과 그래픽, 프로그래밍을 소화하여 6개월여 만에 게임2을 출시한 후 법인을 설립했는데, 나와 비슷한 시기에 창업하기도 했고 웹 서버처럼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몇 가지 가르쳐주면서 친분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뜸 사무실에 놀러 오겠다는 말을 나눌 관계는 아니었기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기억에 안 남을 이야기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과부 마음과 홀아비 마음을 확인하는 내용이었는데 서로 힘을 합쳐 뭔가 해내자는 게 아닌 이상 신세 한탄으로 끝나고 말 내용이었다. 아니, 그렇게 외로운 과부이고 홀아비면 집을 합치든가 하다못해 데이트를 나가든가. 어라? 잠깐. 혹시? 느낌이 왔다. 어떤 형태로든 같이 뭔가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나는 여자를 꼬실 때보다 더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이 과부는 그냥 놀러 온 게 아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합병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각자가 가진 서로 다른 강점으로 시너지를 내고 약점은 서로 메꿔주는 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합병하는 과정은 비교적 순탄했다. 아니, 순탄하지 않은 부분도 순탄하게 만들려 애썼다. 우린3 모 대기업과 투자 유치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당시 우린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서로 힘을 합치면 투자 유치를 해낼 가능성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와 영거님은 누구보다도 합병이 절실했고, 결국 전 구성원으로부터 동의를 이끌어내 합병을 결정했다.

한 달 내내 비가 내리던 2011년 6월, 법인 등기 업무가 끝났고 마침내 합병 절차를 마쳤다. 그동안 협상하던 투자 유치 건은 결렬되었지만, 곧 새로운 대기업과 연결이 되어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2011년 8월, 마침내 투자 계약을 체결하였다. 넥슨으로부터 투자받은 첫 번째 스마트폰 게임 개발사가 된 것이다4.

넥슨모바일, 플라스콘에 투자하다

팀 분위기는 좋았다. 투자도 받았고, 새로운 사람도 합류하였고, 모두가 모여 일할 수 있는 사무실로 이사도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 모였고 자금도 확보했으며, 제품도 좋은 것이다. 좋은 팀이 만들어졌다 생각했다.

입어보지 않은 옷

나는 개발자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조직은 투명하고 개방된 수평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리는 위계를 경계하며 일하는 방식이나 방법을 고민했다. 역할(직책)을 만들 때 이름 하나에도 신중을 기했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언어에 강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애써 역할이나 권한에서 권위를 걷어내도 용어나 이름에서 권위를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햇살이 좋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이 오래가는 팀엔 좋은 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좋은 조직문화를 팀에 깃들이고 싶었다. 조직 문화란 누군가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갓 팀이 만들어진 우리가 어떻게 일해야 할 지 몰랐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일하다 보면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그게 쌓이면 문화가 될까? 아니면 시스템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일하다 보면 문화가 만들어질까? 우린 기준과 목표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단계를 밟아가며 조금씩 도입하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체계가 자리 잡은 후에 다른 체계를 도입하는 건 어렵고 힘들지만, 아직 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시점에 우리가 목표로 하는 체계를 도입하면 도입 초기엔 다소 힘들더라도 정착하고 나면 선순환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팀은 활기 넘치고 의욕이 가득 차 있지 않은가.

하지만 도입하거나 시도한 체계는 대부분 실패했다. 입어보지 않은 옷을 입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었고 실행력이 떨어졌다. 팀은 기술도, 제품도, 시장도 그리고 팀도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놓인 상태에서 실행력까지 떨어지다 보니 구성원 간 신뢰에도 안 좋은 징조가 나타났다.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프로젝트 보류 결정

합병하기 전에 각 사는 진행 중인 게임 프로젝트가 이미 있었다. 그리고 넥슨과 투자 협상 중에 넥슨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그래서 합병 후 우리는 3개 프로젝트를 개발해야 했다.

당연히 불가능했다. 인원이 부족했고, 팀으로 뭉쳐서 함께 일한 팀 경험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팀 체계(시스템)를 만들고 적용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서 오롯이 프로젝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실행력은 무척 떨어졌다. 전 구성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나아가기엔 팀 결합력이 약했고, 리더를 중심으로 뭉쳐 나아가기엔 통솔력(leadership)과 주인의식(ownership)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는 좋았지만, 마음 속엔 강한 위기감이 들었다. 우린 화합물로 충분히 조직되지 못한 채 방황했다.

특단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하나를 보류하고, 그 프로젝트에 속한 전 인원을 가장 큰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언젠가 보류한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부활시키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취소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마음 아팠고 미안했다. 나 역시 1년 넘게 개발해 온 프로젝트가 취소되었을 때 깊은 상실감을 느꼈고 의욕이 꺾여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심지어 최종 결정을 내린 나도 원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 이 모순된 상황과 판단은 결국 내가 야기한 것이다.

탈진

2012년 초에 출시한 첫 게임은 실패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개 프로젝트를 진행할 상황에 있던 우리에겐 이제 단 하나만 남았다. 퍼블리셔(배급사)와 협의하여 출시 일정을 결정하였고, 긴장 상태(crunch mode)에 돌입했다.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면서 제품 광택(polishing)을 내며 품질을 높였다(QA : Quality Assurance). 거듭된 야근과 끝이 없는 이슈(issue)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지만, 프로젝트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팀워크가 맞춰져 갔다. 도입한 체계가 잘 작동해서라기보다는 어떡해서든 제품을 완성 지으려는 의지와 개개인의 역량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8월, 우여곡절 끝에 전 구성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를 출시했다. 꼬박 1년이 걸렸다. 출시 당일까지도 우리는 요구사항을 반영하거나 오류를 잡을 정도로 쫓기는 일정을 치렀기에 휴식기를 가질 수 없었다. 게임 개발하는 전 공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를 거치면서 팀은 성장했지만, 성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탈진(burn out)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탈진하는 걸 깨달았을 때, 팀이 느끼는 성장통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야 했지만, 팀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한 나는 잘못된 처방을 내렸다. 분위기를 전환할 아이템, 즉 새로운 프로젝트를 연료로 삼아 충전시키려 한 것이다. 창업자와 팀은 방전되고 충전되는 요인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팀은 잠시 휴식하며 충전하는 시간과 자리를 가진 뒤 팀 운명이 달린 게임에 목숨을 걸고 운영하여 어떡해서든 성공하는 경험을 얻어야 했지만, 나는 다른 세상에서 와서 전혀 맥락을 짚지 못하는 사람이 내릴 법한 판단을 하고 말았다.

결국, 사람들은 하나둘 팀을 떠나갔다. 힘든 과정을 겪으며 문화와 경험을 만들고 쌓은 팀은 해체되고 말았다. 1년 만에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2. 돌이켜보기

창업자가 곧 팀

스타트업에서 창업자는 회사, 즉 팀 그 자체이다. 독불장군이나 왕 같은 위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트업을 처음 만든 사람은 창업자이고5, 스타트업 정체성은 창업자의 정체성에서 시작된다. 스타트업의 행동은 창업자가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이 투영된 과정이다. 남이 원하는 걸 대신 하기 위해 사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사업하는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원이 절대 부족한 스타트업의 창업자로서 고난을 견뎌내기 힘들다. 자기 자신이 연료가 되어 스스로 불타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 이후에 스타트업에 합류하려는 사람은 그 팀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알고자 한다. 그런 이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하기 좋은 방법은 창업자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말하는 것이다. 창업자가 원하거나 하려는 것에 가치를 인정하여 함께하고 싶어야 한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일치하든지 창업자가 영입하려는 사람을 자신의 비전에 설득시키든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스타트업일 지라도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이 낫다. 세계 최고의 군것질을 만들려는 창업자가 만든 팀에 정찬 요리를 만들려는 사람이 합류하면 결국 서로 불행해진다.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다른 게 문제이다. 서로 최선을 다해 달리지만, 방향이 달라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제자리에 멈추게 된다. 제자리에서 고객을 모을 수도 있고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다 시장을 창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방향성을 잃어 실행력이 떨어진 스타트업은 고객을 만나기 전에 굶어 죽거나 자살하고 만다. 그래서 같은 가치를 지향하든 창업자가 자신이 가치라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도 가치 있다고 여기도록 설득하든 해야 한다.

왜 팀을 세우려 하는 것인가

스타트업 단계에서 팀을 세우는 목적은 실행력을 높이는 데 있다. 그리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고, 또 포기하지 않고 사업의 길을 걸어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것을 누군가도 가치 있다 여기고 같이 걷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 팀의 시작점인 창업자가 진정성을 갖고 절실히 원하는 것(비전)을 자신도 하고 싶어서 팀이 세워지는 것은, 공통되게 여기는 가치를 향해 실행력을 높여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물이 담고 있는 가치에 고객이 돈을 내게 만드는 팀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역할에 필요한 사람이 갖춰졌다고, 경력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호형호제하며 친한 사람이 모였다고, 혹은 가족이 모였다고 해서 그 그룹을 마냥 스타트업 팀이라 부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적합한 사람으로 팀을 세우는 것. 조직 문화나 팀 워크 등 팀과 관련된 모든 것은 팀을 제대로 세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 나중에 데브시스터즈로 사명을 바꾸며, 큰 인기를 끌게 될 오븐브레이크는 개발하기 전이었다. 

  2. RPG Snake. iOS용이다. 

  3. 조영거 대표와 우리 회사를 뜻한다. 

  4. 당시 우리를 투자한 회사는 넥슨코리아 자회사인 넥슨모바일이었으며, 2012년에 넥슨모바일은 넥슨코리아에 흡수합병된다. 

  5. 창업자 개인이나 창업팀(창업자들)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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