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hing actually
23 Dec 2006사랑은 실로 어디든지 있다(Love actually is all around)는 영화 속 문장처럼 뭔가는(something) 어디에서든지 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에 조금 관심이 있던 때에는.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도매급으로 짓밟던 탓에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사그라 들었다가 성숙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 진보 정치와 친일/친미, 혹은 민족 배반 세력이 기득권 보호 및 확장을 위해 '보수'라는 명찰을 달고 정말 보수 세력인 척하던 수구 세력에 광분할 뻔한 적이 있다. 애초 열린우리당은 진보 자격도 부족했고 자질도 부족했기에 건전한 보수가 형성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길 기대했고,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수구 꼴통짓은 별로 하지 않았지만 보수 성향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쟤네 대체 뭐지? 하는 궁금증이 생기게 했다. 한나라당은 늘 해왔던 수구 꼴통짓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보여주어 수 십년이 되도록 변치 않는 일관성만큼은 칭찬 하고프게 했다. 단지 일관성만. 민주노동당은 성숙하지 못한 진보는 100분 토론에 적합한 혀는 가졌으나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헤맬 수 있다는 교훈을 몸소 보여주셨다. 어쨌건. 정치에 관심이 있던 때에는 온 세상이 진보, 보수, 수구로만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역사. 먼 옛날이 아니라 최근부터 차근 차근 옛날로 파고 들던 때(나처럼 역사 소양이 부족한 사람은 이런 접근 방식이 쉽고 재밌다). 일본이 비틀고 구겨놓은 우리 역사와 문화에 분노했다. 무서울만큼 치밀하게 민족 의식 비틀기를 해댔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것들 대부분이 잘 먹혔다. 그런 모습을 알아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지자 온 세상이 깨진 거울에 비친 모양새처럼 비틀려 보였다. 광복 60년을 넘겼건만 아직도 말과 문화에서 조차 일본의 간악하고 사악한 쇠말뚝을 치워내지 못한 우리가 서글펐다. 그렇게. 역사에 관심이 있던 때에는 온 세상이 역사 문제로만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Web 2.0이라는 구름에 관심이 있던 때에는. 뜬구름처럼, 말장난처럼 머리 속을 교란하던 그 낱말이 실은 개념이 아니라 정말 말장난이 아닐까? 생각했다. 결국 Web 2.0이라는 기술 냄새 나는 글자를 뒤집어 쓴 낱말 때문에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깨달았다. 낱말이 비록 기술 냄새가 폴폴 풍기긴 하지만, 핵심은 사람들이 닫힌 알 속에서 깨어 나오는 흐름이다. 아, 물론 AJAX니 뭐니 하는 기술도 영업식으로 꾸며진 뜬구름이라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이 물줄기에 통제하건 이끌건 수단을 제시하건 어떤 형태로건 길을 만들어주려는 움직임이 주목 받는가에 있다. 흐름에 주목하자 야근 저녁 식사를 하며 동료와 나누는 이야기도 개인 매체(Personal Media)로 보이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수 많은 '나'로 가득 차서 무서운 해일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뭐, 사실 집단 지성(대중의 지혜)이라는 낱말이 가진 사기성, 혹은 허구성을 경험한 뒤로는 내가 지나치게 산 속 시냇물 흐름에 코 박고 감탄했다는 깨달음과 반성을 하긴 했다. 이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겠지만, 지금 당장 시냇물이 바다는 아니다. 시냇물은 시냇물이고 바다는 바다이다. 시냇물을 바다라고 옆사람한테 우기면 뻥쟁이, 혹은 미친 놈이지만 온 누리를 향해 우겨대면 사기꾼이다. 선수끼리 왜 이러시나. 사기는 치지 말아야지? 바다를 얘기하려면 바다를 보여주자고, 우리. 바다가 없는 건 아니잖아. 아무튼, Web 2.0에 관심이 있던 때에는 온 세상이 Web 2.0으로만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멀뚱 멀뚱 수첩을 내려다보니 대체 내가 요 몇 년을 뭘 했나 싶었다. 산들바람, 모래바람, 태풍을 동반한 저기압성 바람. 각종 바람에 줏대 없이 흔들거리는 말랑 말랑한 대나무가 되어 뭐 하나 담아두지 못하고 마냥 위를 향해 위태 위태한 줄기를 키운 것은 아닌가.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말만 앞선 것인데, 지난 몇 년을 '말만 앞섰다'고 한 줄 요약을 하자니 손가락이 섭섭하고 혀가 섭섭하고 무엇보다 머리가 섭섭하다. 뭔가 그럴 듯한 말이 없을까? 생각해보니 즐겁게 재미나게 즐기며 살았다고 멋을 부릴 수 있겠더라.
거울을 정삼각형을 그리며 맞붙이고 그 안에 잘게 자른 색종이를 넣은 뒤 들여다 보면 환상 속 세상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숟가락은 없다며 진리, 혹은 도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며 산 내 우둔함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작은 세모기둥 하나에 눈을 빼앗겼음을 깨달았다면, 수 많은 세모기둥을 찾고 파고 든다면 결국 이루고자 하는 바를 취할 수 있으리.
바른 마음과 눈으로 참됨을 볼 수 있고 벗 삼을 수 있기를 바라며 (양력이긴 하다만) 2006년을 이렇게 마무리 해본다. 지난 358일간 이곳에 슥삭 슥삭 남긴 낙서를 보신 많은(?)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다음 글은 2006년 결산하는 글이니 2006년에 남기는 마음을 담는 글은 사실상 이 글이 마지막이다. 그럼 2007년 달력이 자연스러운 그 때에 만납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갖고 싶은 그 뭔가가 실로 가득한 온 누리에서 그 뭔가를 얻기를 바랍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