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승부욕

멍청한 승부욕 예

1. 귤을 먹고 싶다.

2. 냉장고로 간다.

3. 냉장고 문을 연다.

4. 과일통을 당겨 귤을 꺼낸다.

5. 발로 과일통을 민다.

6. 방향 조절 실패로 한쪽만 들어가고 한쪽은 들어가지 않아 비스듬히 걸쳐 있다.

7. 발 위치를 바꿔서 비스듬히 튀어나온 부분을 밀어 본다.

8. 밀리지 않는다. 빠득.

9. 냉장고 문을 연 채 발로 과일통과 힘 겨루기.

10. 냉장고에서 뿜어져 나온 찬바람을 맞이한 발바닥에 쥐가 난다.

11. 주저 앉아 발바닥을 주무르며 교훈을 얻는다.

12. 쓰잘데기 없는 승부욕을 발휘하면 발바닥에 쥐가 난다.

응용 예제

1. 나는 자고 있다.

2. 오줌이 마렵다.

3. 부스스 일어나 방에서 나온다.

4. 거실 불을 켜야 할까 잠깐 고민.

5. 불을 켜면 눈이 부셔서 잠에서 깬다.

6.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드는데 시간이 한참 걸리니 불을 켜지 않기로 한다.

7. 화장실로 걸어가다 심바(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꼬랑지를 밟는다.

8. 자다 날벼락 맞은 심바는 놀라서 사납 부린다.

9. 나 역시 놀라서 바둥댄다.

10. 어영 부영 오줌을 누고 내 방으로 향하지만 이미 잠은 깼다.

11. 침대에서 한참을 뒤척이며 교훈을 얻는다.

12. 쓰잘데기 없는 승부욕을 발휘하면 잠이 모자란다.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2시간이면 다 읽을 정도로 짧막한 소설. 타네라는 사람이 삼촌에게 물려 받은 저택을 보수 공사하면서 겪는 일을 짧막하게, 그리고 시원할 정도로 빠르게 풀어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건 웃으며 읽는 소설일 것이다. 근데 타네라는 사람이 너무 답답해서 소설 중반까지는 화가 난 것처럼 읽었다. '호밀밭 파수꾼'을 읽는 내내 이유 모를 불쾌감에 시달렸던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짜증과 화나는 감정에 시달렸다. 에밀 아랑그 영감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면 짜증나서 책을 덮었을 것이다.

내가 이상한가 싶어서 독자 평들을 찾아보니 간간히 나처럼 대체 어디가 재밌는지 몰라 갸우뚱 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난 재미를 거의('전혀'는 아니다) 찾지 못했고, 주인공의 멍청한 행동과 짜증나는 일꾼들을 보면서 수시로 짜증과 화가 났는데 이런 반응을 보인 독자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쾌검처럼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박민규식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카스테라'를 직전에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건 내겐 그다지 재미도 없었고 유쾌한 책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