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 있다.
21 Apr 2006화산이 품은 용암이 터져나오려 하자 많은 흙으로 용암을 짓누른다...
, 고 생각이 절로 들만큼 국밥을 입안에 우겨 넣었다.
비도 오고 해서 멀리 가기 귀찮은 마음에 평소 가던 순대국밥집으로 가지 않고 회사 바로 근처에 있던 순대국밥집으로 갔는데, 영 맛도 없고 어쩐지 순대 비린내도 나는 것 같았다...
, 고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헛구역질이 일었고 위가 강렬히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위 경련이 일어나면 배가 아닌 심장이 아프다는 건 내 위와 장이 타고나길 약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고 생각하며 내 위장과 앞에 놓인 순대국밥을 함께 원망하고는, 식도로 넘어오는 신물을 국밥으로 허겁지겁 눌러 넣었다. 위액이 섞인 신물은 용암처럼 식도를 뜨겁게 했다. 왜 이러는 것일까. 비가 와서 그런다...
고, 하기엔 뜬금 없었다. 혈압이 낮아 비가 온 아침엔 대단히 못일어나기는 하다. 비오는 것과 혈압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110-70, 혹은 100-60 정도를 유지하던 혈압은 비만 오면 그 이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지럽거나 체하거나 추위를 타거나 너무 땀을 흘리거나 손발이 하얗게 질리며 눈꺼풀이 자꾸 감기는 현상은 혈압이 떨어질 때나 나타났었다.
탕! 하는 소리를 숨 죽인 채 기다리고 있는 달리기 선수가 입으로 낸 가짜 탕! 소리에 움찔하며 달려나가듯이, 순대국밥 한 숟가락에 위는 천엽이라도 받아들인 양 마구 게워내려 했다.
어쨌건 물과 맛없는 순대국밥을 덥 덥 소리 나게 삼켜서 억지로 토악질을 참아내며 나는 이겼다. 하지만, 승리의 도취감은 오래 가지 않아서 24시간이 되기도 전에 뻗어버렸다...
고, 할 수 있을만큼 다음 날 아침에 종일 휴가를 쓰고 말았다. 먹은 것도 없는데 아침 밥을 먹을 생각을 하자 축구공을 탁구공으로 압축하듯이 위가 오그라드는 통증을 심장이 알려왔고, 회사 파트장에게 연락해서 종일 휴가 쓴다고 알렸다...
고, 했지만 아들 회사 생활에 대해선 더 없이 소심하신 어머니는 일 안나가서 잘리는 것 아니냐며 채근하신다. 올해 내게 주어진 휴가를 정당히 써서 괜찮다며, 어제처럼 발광하는 위 속으로 끼니를 우겨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내 위를 위 아래로 잘라내 그 단층을 보면 총 3개 층으로 구분될 것이다. 제일 아래층인 1층엔 밥과 나물 몇 가지가 어우러져 있고, 2층엔 딸기와 방울 토마토가, 마지막 3층엔 소화제와 황설탕 조금 섞인 물 200cc. 이들을 하나가 되게 하여 친하게 할 마음은 아니지만, 침대 위를 이리 저리 뒹굴며 속 편히 책이나 읽다보니 결국엔 위 속의 음식물들은 사이 좋게 서로 뒤섞였을 것이다. 실 없는 생각.
가만.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오랜만에 체하는 것이지? 원래 잘 체하고 설사 잘했지만 어느 정도 체하는 것이나 설사하는 건 익숙한 일이기에 이렇게 강하게 체하면 그 이유를 찾지 않을 수 없다.
투명하고 깨끗하다고 할 정도로 하루 일과가 뻔하디 뻔한 내 평일 생활 덕분에 내가 하루 종일 휴가를 쓸만큼 뻗은 이유를 금방 찾아냈다.
비가 온 것은 수요일 새벽이었다. 나는 화요일 밤에 운동을 강하게 했다. 벤치 프레스 60kg를 4회(1회당 8~10번씩 들었다 내린다)를 했고, 줄넘기는 1,000번 넘은 것 같다. 스쿼트는 3회를 했으니 30kg짜리 바벨을 들고 24번 앉았다 일어섰다 한 셈이다. 이외 모래 바람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달을 향해 발을 뻥뻥 내지르며 발차기 연습도 했다.
그렇게 기력을 소비한 상태에서 아침 이슬 맞고 입 돌아간 노숙자 마냥 비에 혈압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기니 뻗는게 당연했다. 그러니 수요일에 점심 먹다 체하고 급기야 목요일엔 휴가까지 쓴 것이지...
,라고 결론을 내리며 TV화면을 돌렸다. 조형기가 쌍절곤을 돌리다 자신의 고추를 쳐서 괴로워 하는 장면이 나왔고 난 심장보다 한 뼘쯤 아래 있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깔깔거리며 뒹굴렀다. 잠시 후 웃음이 멈추기도 전에 이경규가 같은 바보짓을 반복했고 나는 OTL 자세를 정석으로 취한 채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나자 이번엔 얼굴이 아팠다. 한숨 두 번 토해내니 위와 심장을 압박하던 공기 주머니 속 공기가 빠진 것처럼 위 통증은 줄었다.
나는 살아 있다....
,고 생각을 하곤 하는데 대체로 고통이 떠난 직후에 그렇다. 어떻게 살아 있고 어떻게 지내는지를 떠나서 내 유전자 반을 2세에게 복제하기도 전에 죽진 않았구나 하는 야릇한 기분이 들곤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에 해...가 아닌 천장에 조명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