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5%

“인간 수명이 길어진 세상이니 우리가 100살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너와 나는 우리 삶에서 33%, 즉 1/3을 산 거야”

아, 정지웅 너란 녀석은 정말이지… 삶의 1/3 이정표 설을 펼치는 그를 보며 참 녀석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말이 옳다고도 생각했다. 다만, 100살은 좀 길고, 삶이라는 내 우주의 끝은 80살까지로 여긴다는 차이는 있었다.

평소에도 어리바리한 나를 더 어리바리하게 만든 생각이 최근 몇 달 동안 머릿 속을 채웠다. 끝없이 재질문하며 내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싶었다. 난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내가 원하는 걸 하며 살지 않고 있다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정말 맞나?”하는 궁금증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 내 목숨을 바칠만큼 원하는 일, 신념이자 사명이 무엇인지 찾기 어렵고 힘들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면 할수록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린 답을 붙들고 살아온 건 아니었다. 여태껏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과 원하는 것을 구성하는 좀 더 근본에 가까운 무언가 깔려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가령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책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직접 연관성 없는 정보가(node) 내 머릿 속에서 연결되는(link) 과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그런 과정을 즐기는 방법으로 독서를 선호했던 거였고, 최근엔 성향이 다소 바뀌면서 그런 과정을 즐기는 다른 방법도 알아가고 있다. 그럼 단지 연결과 합성되는 과정 자체만 좋아하는 것일까? 그런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좋아하는 게 있었다. 그렇게 연결된 정보 묶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지적허영 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냥 그렇게 영향을 미쳐서 그 사람을 돕는 게 좋다.

그렇게 내 마음 속을 탐험한 끝에 내가 진정 삶에서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은 “노는 것”이라는 걸 찾아냈다. 논다니. 아내, 양가 부모님, 우리 팀 사람들과 회사 투자자들이 이 문장을 읽고 깜짝 놀랄 것 같다. 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일과 놀이 구분을 없애고, 놀이를 삶에 녹여내어 늘 노는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이다.

정보를 쌓다가 기존에 들어가있던 다른 정보와 연결해내는 과정을 좋아하니, 책을 읽거나 뭔가를 공부하는 행위, 그리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행위는 나한테 일이 아니라 놀이이다. 내가 원하는 놀이를 하며 잘 놀고, 노는 내 행동으로 다른 이를 돕고 싶다. 내 죽거든 무덤을 만들고 싶지도 묘비를 세우고 싶지도 않지만, 만약 묘비를 세운다면 “잘 놀았다”고 새기고 싶다.

내가 왜 죽지 않고 사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살 것인지, 그러니까 어떻게 놀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진 않다. 물론 게임 개발도 아주 재밌는 놀이이다. 하지만 이 놀이도 어떻게 노느냐에 따라 다양한 놀이로 세분화할 수 있다. 어떻게 놀 것인지 알아야 세상에 영향을 미칠 무엇인가도 만들어 낼텐데, 생일을 맞이한 오늘 기준으로 41.25%나 살았는데도 아직 어떻게 놀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2013년 10월 22일이든, 생일인 오늘이든, 2013년 10월 24일이든, 소수점 두 자리로 쳐내면 41.25%는 다음 생일 때까지는 변치 않는다. 41.25%를 사는 동안 어떻게 놀 것인지 못 찾아서 생기는 감정이 생일이라고 해서 딱히 더 격렬하지도, 싱숭생숭하지도, 명랑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나를 찾아 어딘가로 길을 떠날 생각도 없다. 나를 중랑교에서 줏어오셨고,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붕어빵을 팔고 계시다는 말에 언젠가는 친엄마를 찾겠다는 다짐을 하던 꼬맹이는 아니니까.

82.5% 정도 산 어느 날, 41.25%를 살며 어떻게 놀 것인지 고민하는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 미리 작은 생일 선물을 남기고 싶은 것 뿐이다. 아, 글쎄 이것도 노는 거라니까.


십 년 인연, 제닉스의 블로그

제닉스의 블로그를 알게 된 건 MSN 메신저에 뜨는 광고를 없애주는 패치가 계기였다. 몇 년 뒤, 미투데이 인연으로 우리는 친구가 됐다. 늦은 밤, 보라매공원 근처에서 만나 커피 한 잔 나누며 수다를 떨었고, 창업을 했고, 결혼을 했고, 어느 덧 우리는 30대 중반이 됐다.

우리 인연의 시작과 현재를 관통하는 것은 블로그이다. 2003년 비슷한 시기에 블로그를 시작하고, 십 여 년 같은 블로그 도구(나는 워드프레스, 그는 이글루스)를 유지해왔다. 그렇기에, 이제는 서로의 소식을 블로그보다 업계에서 더 자주 듣고 블로그를 닫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블로그 이전 소식은 서운함 같은 이상야릇하고 묘한 감상을 일으킨다.

뭐, 그래도 예전 블로그에 달렸던 댓글도 제대로 옮긴 걸 보면 일기장 한 쪽이 찢겨진 마음은 안 들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