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Oct 2004

얼마 전에 애인이랑 마포구에 있는 선유도 공원에 다녀왔다. 그럭 저럭 넓기는 한데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다 쉴 수 있는 곳을 발견하여 그곳에서 해가 뉘엿 뉘엿해질 때까지 쉬기로 했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에는 머리 위로 낙엽 조형물이 벽에 매달려있었다. 녹슨 철로 낙엽들을 만들었는데 거리를 두고 보면 그럭 저럭 낙엽처럼 보이는 그런 것이었다. 이쁘거나 아름답거나 화려하진 않았지만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눈여겨 볼만은 했다.
선유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디지털 카메라를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 상당 수는 한결같이 무례했다.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 위에 걸려있는 낙엽 조형물을 찍기 위해 너무나 당연하게 카메라를 우리쪽으로 들어댔다. 그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우리를 찍기 위함은 아니겠지만 조용히 책을 읽으며 일요일 휴식을 즐기고 있는 우리는 카메라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닌가.
출사를 나온 단체는 가관이었다. 아예 특정 공간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공원을 산책하려는 사람들은 공간을 빼앗긴채 불편을 겪고 있었다. 디카 나고 사람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서로가 배려해줘야 한다. 누군가 사진을 찍으려한다면 그 사람이 사진을 찍는 잠깐의 시간은 방해하지 말고 좋은 사진 찍도록 도와줘야할 것이다. 사진 찍는 이들은 다른 사람의 휴식을 방해하지 말고 조심히 사진을 찍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선유도 공원의 그 많은 디카족들은 흡사 파파라치같았다. 다른 사람이 있건 말건 일단 카메라부터 들어대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당당함이 느껴졌다. 사진 찍히기 싫으면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안하무인 행동에 기분이 많이 상하였다.
디카. 기능이나 성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찍는 사람의 마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덧쓰기 : 카메라가 아닌 디카에만 이렇게 편향적인 비판을 하는 이유?필름 카메라 가진 사람 중에서 그런 무례를 범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하였달까? 역시 문제는 디카 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어대는 젊은이였다. 그만큼 필카보다 사진 찍는 것이 부담 없어서일까? 이런 무례함은.
09 Oct 2004
8강 A조 서지훈(GO) - 박정석(KTF)
8강 B조 최연성(SKT T1) - 이윤열(P&C Curriors)
8강 C조 임요환(SKK T1) - 변길섭(KTF)
8강 D조 박성준(EGO-POS) - 홍진호(KTF)
아아, 멋지다. 이 대진표의 의미를 살펴보자.
1. 서지훈 vs 박정석
서지훈과 박정석의 A매치는 예상 외로 별로 없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박정석 선수에게 져서 아픈 기억이 있는 서지훈 선수. 과거에는 주로 리그에서 만났지만 이번에는 토너먼트이다.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2. 최연성 vs 이윤열
지난 MSL 결승에서 이윤열 선수를 3:2로 이긴 최연성 선수. 절대 무적이었던 그가 이윤열 선수를 이긴 뒤로 패가 잦아졌다. 그만큼 분석 당한 이유도 있지만, 그 스스로 최강자라 칭해지는 이윤열 선수를 이긴데서 오는 만족감에 도취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최연성은 OSL에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상대로 지목했다.
그런 마음은 이윤열도 마찬가지다. 이윤열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만든 패배. 그의 많은 결승전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싶다. 반드시 복수하고픈 마음과 함께.
3. 임요환 vs 변길섭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임요환, 그리고 묻혀진 우승의 영광을 상기시키려는 듯한 변길섭. 최연성 선수를 상대로 4:1이라는 놀라운 테테전 능력을 보여주는 변길섭 선수와 테테전의 극강자라 불리우는 이윤열 선수와 호각세를 보이는 임요환 선수.
제 2 의 전성기가 달린 민감한 시즌에 만난 두 선수의 대결이 숨 막힐 정도로 기다려진다.
4. 박성준 vs 홍진호
투신과 폭풍의 대결. 제 2 의 홍진호라며 관심 받던 박성준 선수는 홍진호 선수가 하지 못했던 메이저 대회에서 저그 종족으로 정규 리그 처녀 우승을 해버린다. 같은 종족의 한을 풀었다고는 하지만 우승에 가장 가까이 있어왔던(무려 10회!) 홍진호 선수에게는 가슴 아프다. 그뿐이던가. 지난 질레트배 결승전에서 같은 팀 선수인 박정석 선수를 누른 박성준 선수에 대한 복수의 의무 역시 홍진호 선수가 있다.
둘 다 가난한 운영이지만 매?공격적인 성향과 말도 안되는 컨트롤로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연출하는 면에서 비슷한 두 선수. 대 테란전에는 극강, 대 프로토스전은 왠지 불안, 대 저그전은 기대되지만 그래도 불안한 점은 박성준 선수나 홍진호 선수 모두 비슷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5. 우승자 출신
8강 진출자 중 7명은 정규 리그 우승자 출신이며, 정규 리그 우승자가 아닐지라도 홍진호 선수는 주요 이벤트전에서 우승을 하였다. 또한 10회의 결승 진출은 비록 우승이 아닐지라도 그에 합당한 처우가 당연하다.
우승자들의 토너먼트전. 이것이 결승전이 아니고 무엇일까?
6. 4대천왕의 4강행?
옛 4대천왕들이 8강에 성공했을 때 사람들은 단지 4대천왕의 부활에 환호했다. 그러나 8강 대진표가 결정되자 설마...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바로 4대천왕의 4강행이다. 4대천왕인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박정석 선수가 각기 다른 조로 배정된 것.
7. 같은 팀 선수와 만나지 않았다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할 때 가장 힘든 경우는 아무래도 같은 팀 선수가 아닐까? 전략 노출 등의 이유로 같은 팀 선수간의 경기가 결정되면 둘 중 하나는 다른 팀으로 거취를 잠시 옮길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8강은 같은 팀끼리 만난 선수가 아무도 없다. 상대 선수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는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8. 가을의 전설은 또 다시 이뤄지는가!
2001년부터 OSL에 불어오는 전설은 바로 가을의 전설이다. 언제나 소수 정예로 암울기를 이어가던 프로토스가 가을만 되면 우승을 차지해버리는 것이다. 2001년 가을의 가림토 김동수, 2002년 가을의 영웅토스 박정석, 2003년 가을의 악마토스 박용욱(강민은 겨울이지).
대진표와 종족 상성만 봐서는 박정석 선수의 가을의 전설 실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8강전과 4강전은 계속 테란전이기 때문이다. 이들 테란이 괴물들이긴 하지만, 대 테란전 극강자가 바로 박정석 선수임을 상기해볼 때 나와 같은 프로토스 팬들은 기대가 될 것이다.
9. 프로토스의 장기 호황?
프로토스는 꽤 오래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마이큐브때부터 지난 질레트배까지 무려 3시즌(1년)동안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만일 박정석 선수가 이번에도 결승전에 진출한다면 프로토스 진영에서는 강민 선수에 이어 두 번째로 연속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선수가 될 것이며, 프로토스의 OSL 4시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루게 된다. 소수 정예와 암울기로 대표되는 종족 프로토스의 이러한 선전은 미스터리 그 자체다.
10. 8강전인데 선수가 8명?
이번 OSL의 놀라운 점과 의아한 점은 8강전인데 8강전에 진출하여 참여한 선수가 8명이라는 점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그렇게 되지? 8강전이라면 9명이 진출해야 옳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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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거 아니다. 히히. 단지 항목을 10까지 채워보려고 말장난 해본 것.
어쨌건 그래서 ..
나는 회사의 다른 스타프래프트 매니아의 도움을 통해 매주 금요일, VOD로 OSL 생방송 시청이 가능해졌다. 이런 대진표라면 돈을 쓸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