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Oct 2004
어제 배틀넷 공개 방에서 게임을 떴다. 나는 39800won이라는 임시 아이디를 사용하는 8시 테란. 꽤나 정신 없이 처절한 게임을 했다. 상대는 일찌감치 내 등잔 밑이라고 할 수 있는 6시에 멀티를 가져갔고, 나는 그것을 대단히 늦게 찾아냈다.
몇 차례나 진출한 주병력이 어영 부영 막히면서 위기가 많이 찾아왔고, 상대방이 내가 멀티하기 좋은 곳을 차지하는 바람에 나의 멀티가 많이 늦어졌었다. 그래도 상대방은 캐리어 테크 트리를 타지 않아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며 게임을 했다.
상대방 프로토스는 많은 게이트웨이에서 폭발하는 물량으로 나를 제압하려 했는데 하이템플러와 다크템플러의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병력 싸움에서 내게 지는 경우가 종종 연출되었다.
그러나 나보다 월등히 많이 먹은 자원량을 기반으로 많은 병력을 뽑아내서 날 괴롭혔고, 게임 후반에는 미네랄을 캐는 나의 SCV가 한 부대도 안되는 상황까지 몰렸었다. 다행히 상대방은 컨트롤이 나보다 부족했고, 나는 결국 이겼다.
나는 이런 힘싸움과 난전을 좋아한다. 손은 느려서 제대로 감당을 하지 못할 때도 많고 난전과 힘싸움이 동시에 벌어지는 게임의 승률이 좋은 편은 못되지만(한 50~60%?), 정신 없이 몰입하여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한다.
만일 노스텔지아나 신 개마고원이었다면 더 재밌고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했었을텐데, 내가 싫어하는 로스트 템플이라 그점은 좀 아쉬웠지만 모처럼 즐겁게 즐긴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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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Oct 2004
아침에 택시를 탔다. 친절해보이는 기사 아저씨. 말투는 물론이고 탑승객에게 목적지를 가기 위한 경로를 확인하는 친절함이 쌀쌀한 아침 출근길을 따뜻히 해주는 것 같다.
사거리를 마악 건넌 잠시 후, 기사 아저씨가 묻는다. 예수님 믿어요? 아니요. 의외라는 듯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며 안타까워한다. 한 5분을 안타까운 듯 전파 활동을 하다 내가 반응을 더이상 보이지 않자 대화가 끊긴다.
나의 아니요라는 대답에서 5분여가 지났을까? 아니요라는 나의 대답이 있기 전의 편안한 운전은 매우 공격적인 운전으로 바뀌었다. 나의 아니요 대답 이전에 보이던 여유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앞차의 작은 버벅임에 화를 낸다. 신경질적으로 차를 세운다. 건성으로 잘가라는 인사를 하더니 신경질적으로 튀어나간다.
나는 이런 이들을 예수쟁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나라의 반을 차지하는 기독교인 중 대다수가 속하는 개신교인 중에 이런 이들은 일부이겠지만, 워낙 개신교인이 많아서인지 너무 많이 예수쟁이들을 만난다. 오늘도 나는 예수쟁이로 인해 불쾌한 경험을 하였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종교를 부정하고 신을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을 의지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는다. 「 종교 = 신 」 이라는 공식이 꼭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종교 단체들이 종교의 가르침-바이블-보다는 신이라는 존재에 의존하고 비중을 두는 경향이 강한 것을 감안했을 때, 내가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신을 의지할 생각이 없음을 의미한다. (사실 나는 신보다는 위인을 믿는다)
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만이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주장의 근거는 아니다. 복권을 살때나 버스로 이동 중 똥이 매우 급할 때는 신을 부르짖기 때문이다. 그때만은 신을 믿는다. 내가 종교를 믿지 않는 또 다른 큰 이유는 예수건 부처건 알라건 모두 한 인물(人物)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다. 인간같지 않은 선구자가 우매한 중생들(특정 종교에서 많이 보이는 표현이다만 양해를 바란다)을 이끌었고 그러한 역사가 후대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신격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꼭 예수, 부처, 알라, 그외 신들이 동일 인물이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이들의 시작은 뛰어난 인간이었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듯 싶다.
종교를 믿지 않다보니 천주교건 개신교건 불교건 이슬람교건 내게는 단지 종교의 하나일 뿐이다. 심지어 사이비 종교로 불리우는 것들도. 종교 자체만 봤을 때 딱히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빈틈 없는 여지를 뚫고 들어와 내게서 싫다라는 평가를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시끄러운 경우가 이에 속한다.
시끄럽다의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시끄럽게 식당을 휘젓고 다니는 6~7살의 사내아이의 산만함도 그 부모에게는 사내대장부의 건강함으로 보일 것이고, 그 아이의 가족이 아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듯이 말이다. 즉 시끄럽다는 내 판단 기준과 조건을 우리 나라의 개신교가 아주 멋지게 만족하고 있다는 말 역시 다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어이쿠, 말을 안하려 했는데 자연스럽게 개신교의 시끄러움이 싫다고 말을 해버렸다. 나는 솔직히 개신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 짧은 삶의 경험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만 나는 살아오며 너무나 많은 시끄러운 개신교인들을 만나왔다. 멀리가지 않더라도 예수 불신은 지옥행 KTX라는 투의 선교 활동을 열성적으로 하는 이들을 2호선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 대단히 존경 받아 마땅하고 위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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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백날 외쳐봐야 그것을 인정해줄 사람은 없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면 예수를 믿지 않고 당신의 종교를 고수한다면 불신의 대가로 지옥에 간다고 협박 따위를 할 배짱은 없을 것이다.
선교란 우리 종교 멋져요~라는 홍보도, 혹은 예수 불신 지옥 직행이라는 협박도 아니다. 개신교인이 워낙 많아 개신교에 오면 인맥 넓어져서 좋다며 머리 수와 인맥을 사고 파는 마케팅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고 주장이다. 선교란 그분(the one)의 가르침을 받고 바르고 충실히 실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종교인이 홍익인간의 뜻으로 훌륭한 가르침을 행하며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여 비종교인이 "아! 저렇게 훌륭한 교인들을 보니 종교의 가르침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겠구나! 저런 훌륭한 종교를 믿지 않는 나는 지옥에서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선교 활동이라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개신교인 중에는 그런 자신감과 실천 의지가 없는 이들이 많은지, 입으로 떠들어대는 경우를 많이 접한다. 그 일부의 막무가내 종교인들은 나와 너는 "다르다"고 하지 않고 너는 나에 비해 "틀리다"고 한다. 자신의 믿음은 신성하고 올바르지며 타인의 믿음의 다른 선택은 틀리다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릉댄다.
이런 무식하고 무지한 개신교인들은 분명 "일부"일 것이다. 나는 되묻고 싶다. 그럼 바른 그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은 그런 일부 개신교인들을 올바르게 잡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 있을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하철에서 아주 시끄럽게 불신 지옥이라며 협박을 해대는 이들을 말리지 않고 뭐하고 있었을까. 은연 중에 그들의 광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 일부도 나쁘지만 그 일부를 방치하며 좌시하는 다수도 반성해야할 것이다.
나의 믿음을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믿음도 존중해야한다. 내 믿음을 타인에게 권해볼 수 있지만 강요해서는 안된다. 우상 숭배건 말건 현재의 공식적인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상에 대한 미친짓거리나 유교적 전통인 제사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또한,
아침 출근길에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다가 교인 만들기를 실패하였다고 해서 차를 그따위로 몰며 탑승객에게 시위를 해서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