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와 행복

며칠 뒤에 이사를 해야 해서 오늘부터 퇴근 후 짐을 싸야 한다. 살림살이가 많지 않아 어지간한 건 적당히 상자 속에 던져넣으면 그만인데, 책이 문제이다.

책을 상자에 넣다간 착한 마음씀씀이로 기꺼이 이사짐 나르는 걸 돕기로 한 벗들의 허리를 고장내기 쉽상이라, 신문지로 책 위, 아래를 받치고, 끈으로 묶어야 한다. 끈은 문구점에서 샀는데 책을 받칠 신문지가 없다. 아침 출근이 늦어서 급한 마음에 서둘렀다가 아침 지하철역 주변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신문지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퇴근길에 길바닥에 떨어진 무가지 신문 한 부를 다소 수줍어하며 줍긴 했지만, 이걸로는 삼 백 권이 넘는 책을 감당할 수 없다.

일부러 한 정거장 전에 내려 눈에 불을 켜고 걸어왔지만 약에 쓸 개똥처럼 되어버린 후였다. 오늘따라 왜 이리 길거리가 깨끗한 것인지... 큰길을 거닐며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골목길에 들어서자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길에 신문지 하나 굴러다니지 않다니, 참 불경기이긴 불경기라는 실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찰나.

일간 신문지 몇 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폐지를 줍고 다니는 노인들이 동네를 탈탈 털어 힘겹게 모아 고이 모아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엔 노인은 커녕 사람 하나 없었다. 내 뒤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어벙하게 생긴 청년이 피곤에 지친 얼굴로 걸어오긴 했지만.

난 길에서 돈을 주울 때보다 빠르게 두 손으로 공손히 신문뭉치를 받쳐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졌다. 공기는 차가웠고 숨은 가빴다. 입김이 입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 얼굴이 얼얼했다. 굳이 빨리 걸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두 손에 들린 신문님들을 내려다 보았다. 비로소 행복감에 배시시 미소지었다. 추위로 입 주변이 뻗뻗하여 바지에 똥 찌끄린 듯한 미소가 분명했지만, 난 분명 행복하여 절로 미소가 나왔다.

일부 신문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나를 기쁘게 한 신문님들 사이에 그 신문도 있었다. 아, 이런 쓰임새 때문에라도 완전히 사라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달 전 역사를 마치 어제 오늘 일인양 길게도 써놓은 기사를 품고 있는 신문 몇 부에서 깊은 행복감을 느껴본다.


음악에 관한 37문 37답 이어가기

민노씨에게 음안에 관한 37문 37답 하기를 넘겨받아서 이어가 봅니다.

1. 음악을 좋아 하나요?
네.

2. 하루에 음악을 듣는 시간은 어느정도 되나요?
예전엔 12시간 정도 듣고 다니곤 했는데, 귀가 좀 약해진데다 요즘엔 회사에서 이리 저리 불려다니는 일을 하다보니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듣네요. 출퇴근 할 때도 다른나랏말 회화를 듣곤 해서요.

3. 주로 듣는 음악은?
요즘엔 서양 고전 음악(클래식)이나 째즈, 뉴에이지, 국악을 즐겨 듣습니다. 작년 이맘때쯤도 그랬던 것 같고, 작년 여름엔 메탈과 락, 랩을 즐겨 들었네요. MC Sniper 의 Better than yesterday 를 혀에 올리느라 몇 달을 주야장천 듣기도 했었고요.

4. 지금 듣고 계신 곡은 무엇인가요?
베토벤 1번 교향곡을 방금 전에 듣다가 껐습니다. 자려고요.

5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으신가요?
상상만 했지 실제로 되고 싶다는 마음까지는 들지 않던데요. 하핫.

6. 내 인생에 있어서 음악이란?
위로, 위안. 가끔은 방향이기도.

7. 가장 최근에 구입한 음반은?
카라얀 교향곡 모음집. 싸길래 샀고, 과연 싼 게 비지떡. :)

8. 개인적으로 아끼는 음반은?
Dream Theater의 Awake. Dream Theater와 맺은 인연을 아주 깊게 해준 음반.

9. 가지고 계신 음반 수는?
300장 정도.

10. 콘서트(라이브 혹은 파티)는 자주 가시는 편인가요?
그럴려고 애쓴 적이 있는데 아직은 책 사서 읽는 즐거움보다는 못해서 자주 가진 않습니다. 시간과 쓸 수 있는 비용은 한정되어 있으니 기왕이면 더 많은 즐거움을 주는 데로 향하더군요.

11. 가장 감동적인 콘서트는?
Dream Theater 내한 공연.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음반 내고 얼마 뒤인 2000년대 초반(아마 2002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했던 공연이었지요.

12. 내한공연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음악가가 있나요?
Justin King이 와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내한 공연보다는 장사익님 공연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지금은 고인인 김광석님 공연에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지요.

13. 나의 음악 청취 변천사
포크, 락(산울림 등) - 팝송(비틀즈) - 가요 - 락 - 팝 - 메탈 - 뉴에이지 - 째즈 - 힙합/랩 - 클래식 - 일렉트로니카 - 국악

14. 음악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어느 날 지독한 음악 우울기(슬럼프)에 빠졌지요. 그때는 뭘 들어도 다 듣기 싫었는데 정작 안들으면 알 수 없는 음율이 머리 속에 맴돌아 미칠 것 같았죠. 아직도 그 음율 정체는 못찾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코엑스에 있는 큰 음반가게를 두리번거리다 촌스러운 음반 표지에 끌려서 별 생각없이 음반 하나를 샀고, 그걸 듣다가 음악 우울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엔 다소 생소할텐데요. Valentine 의 4 united 라는 음반입니다. 퀸과 비슷한데 퀸보다 좀 더 팝쪽에 가깝지요.

또 하나는, Radiohead의 Creep을 들었을 때 But I'm a creep 직전에 울리는 기타 소리에 감명을 받았는데, 엉뚱하게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Nirvana 를 떠올렸다. 그때는 Nirvana 를 모르고 smells like teen spirit 만 알았는데, Nirvana 는 creep 을 부르지 않았으며 Nirvana 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커트 코베인을 인지하던 그 해 커트 코베인은 자살했다. 내가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쩝. 김광석님도 비슷한 경우.

15. 좋아하는 음악가(혹은 그룹)를 적어주세요.
많아서 기억도 안나네요. Dream Theater, 장사익, 베토벤, 모짜르트, 하이든, 지휘자로는 카라얀, 서태지, 신해철, 바이날로그, 퀸, 비틀즈, 판소리 남자 명창, 김광석, 양방언, 요요마, 너바나,

16. 위에 적어주신 음악가 중에 자신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N.EX.T. 어릴 적에 식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부모님 눈치를 주뼛 주뼛보며 동요가 아닌 대중가요를 슬쩍 골라 불렀는데 그 첫 번째 대중가요가 N.EX.T의 “날아라 병아리”였다. 가장 동요와 비슷해서 소심한 마음에 이걸 골랐던 기억인데 정확하진 않다.

두 번째는 서태지인데, 엄밀히 말해서 서태지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교실이데아”가 내게 특별한 의미였다. 더도 말고 딱 이부분 노랫말 때문.

“왜 바꾸지 않고 마음을 졸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17. 나만의 명곡이 있나요?
Dream Theater 의 Stream Of Consciousness,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 합창, 김광석 노래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 Crash 가 부른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춘향가(판소리). 이외에도 많지요.

18. 노래 잘 부르세요?
잘 부르고 싶습니다. 장사익님처럼 부르고 싶어요.

19. 노래방에 가면 꼭 부르는 곡이 있나요?
U2의 With or without you.

20. 춤은 잘 추시나요?(웃음)
몸치지요.

21. 좋아하는 OST, 또는 음악이 좋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ONCE, The Matrix, Lionking.

22. 애니메이션이나 게임곡 중에 좋아하는 곡은?
Zelda 음악들, 슈퍼 마리오 음악들.

23. MP3 플레이어가 있나요? 기종과 용량은?
삼성 옙 U4. 제닉스를 졸라서 얻은 것.

24. 가지고 있는 MP3는 몇곡정도 되나요?
40,000곡 정도?

25. 자주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한 10여년 전에 신해철씨께서 자정쯤에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을 땐 간혹 들었는데 요즘엔 안듣습니다.

26. 음악이 듣고 싶을 때와 듣기 싫을 때는?
늘 듣고 싶고, 듣기 싫을 때는 귀 상태가 안좋아서 아플 때.

27. 앞으로 더 들어보고 싶은 음악은?
여러 음악을 접하고 싶으며, 되도록이면 생음악을 듣고 싶어요.

28.음악을 듣기 위해 자주가는 사이트는?
없어요. 음악을 듣기 위해 굳이 어딘가에 자주 가야 할 이유는 없죠.

29. 쓰고 계신 음악 청취용 유틸리티는?
iTunes(내 맥북에서), Windows Media Player(회사에 있는 Windows PC에서)

30.음악에 관한 잡지나 서적을 자주 읽는 편인가요?
있으면 읽고, 없으면 안읽고.

31. 좋아하는 악기는? 특별히 연주할 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드럼이나 베이스 같은 박자(리듬) 악기를 좋아하지요. 요즘은 피아노와 기타를 익히고 싶곤 합니다.

32. 추천해주고 싶은 곡이 있나요?
요즘같은 때에는(겨울, 경제불황 등) 뭐니 뭐니해도 김광석 노래.

33. 기분전환할 때 듣는 음악은?
일반 사람들이 부른 노래.

34. 지금 핸드폰 벨소리는?
언제나 진동이에요.

35. 학창시절 음악성적은? (웃음)
낮았어요. 제 평균 점수 깎아먹던 과목 중 하나.

36. 음악을 듣는 이유는?
좋아서. 가끔은 듣고 있는 소리(음악) 외 소리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서 듣기도 합니다. 귀나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바깥 소리에 일일이 반응하다보면 너무 피곤하거든요.

37. 음악이란? (혹은 좋은 음악이란, 나쁜 음악이란)
동그라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농담이고, 시간을 만끽할 때 음 사이 사이에 숨어있는 감성을 맛볼 수 있는 소리지요. 그래서 외울 수는 있어도 되뇌기는 아주 어려운 소리.

...

다음 이어받기는 백일몽, 제닉스, rath, 홍별명님들께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