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에는 인간의 성격이 있을까

들어가며

B형 남자의 수난 시대이다. B형 남자는 절대로 안된다는 일부 여자의 외침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B형 남자에 대한 노래에 이어 영화까지 나온단다. 대체 B형 남자가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럴까?

  • 바람둥이
  • 고집과 자존심이 강함
  •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린 아이처럼 화를 냄
  • 자신의 여자에게 집착을 보임
  • 감정의 기복이 큼
  • 경망함. 상식에서 벗어남.

오우. 재수 없어.
대체 이런 재수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혈액형별 성격이라는 게 맞기는 한 걸까?

혈액형 구분법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혈액형 구분법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한다.

K.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이 사람은 ABO식을 발견한 죄 밖에 없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구분법은 역시 ABO식이다. 혈액형의 응집 여부로 구분하는 것인데, 응집소β가 있는 A형 표준 혈청에만 응집하면 A형, 응집소α가 있는 B형 표준 혈청에만 응집하면 B형, 모두에 응집하면 AB형, 모두에 응집하지 않으면 O형인 구분법이다. 1901년 K.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 1868~1943)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란트슈타이너 덕분에 안전한 수혈법을 적립했다. 그 이전에는 수혈하다 충격사(Shock)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의 지대한 수혈 안전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A.비너와 함께 Rh인자도 발견한다.

Rh식 혈액형 구분법도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특히 Rh-형의 혈액형을 급히 구한다는 도움 요청이 TV에 급히 자막으로 나오는가 하면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이리저리 복사(펌질)되어 우리나라에서 Rh-형을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Rh식 혈액형 구분법은 붉은털원숭이('Rh'esus monkey)의 혈구로 면역된 토끼의 혈청을 사람의 적혈구에 작용시켰을 때 응집하면 Rh+, 응집하지 않으면 Rh-로 분류하는 방법인데, 우리나라에는 Rh+ 가 대다수이고 서양인은 Rh-가 많다. 그래서 Rh-인 사람이 수혈을 받아야 할 때 주한미군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외에도 MN식 혈액형 구분법이나 Ss식 혈액형도 있는데, 주제에서 벗어나고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므로 본 글에서는 생략한다.

혈액형 우월주의의 시작

역사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혈액형 우월주의는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학설은 여럿인데 공통된 골자는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다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발견된 ABO식 혈액형 구분법이 도입되면서 인종 우월 입증이 보다 구체화되는데, 1910년 독일의 에밀 폰 둥게른(Emile von Dungern) 박사의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그 주장을 볼 수 있다. 내용인 즉 우월하고 뛰어난 민족인 순수 게르만족은 A형이고 열등한 아시아인은 B형이라는 것이다. 분명 유럽에는 A형이 많고, 꼭 유럽이 아니더라도 서양인에는 A형과 O형이 많고 B형과 AB형이 아주 적다. 반대로 몽골계는 B형이 많기는 한데,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와 일본 역시 서양인 못지않게 A형과 O형이 많다. 굳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둥게른의 주장은 후에 틀린 것으로 판명난다.

20세기 초반에 독일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일본이 있다. 이는 혈액형 우월주의에서도 해당되는 말인데, 1916년 독일로 유학을 갔던 일본의 키마타 하라는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한 조사 논문을 발표한다. 일본 역시 황인종이기 때문에 서양인들처럼 인종 간의 우열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지는 못해서 성격으로 대체한 셈이다. 그러나 지지를 별로 얻지 못하여 사장되었다가 혈액형별 성격 구분 주장에 영향을 받은 작가 노오미의 책이 인기를 끌면서 유행을 일으킨다. 이후 일본에서는 잡담을 그럴 듯하게 꾸며서 만든 수준의 잡지들을 중심으로 크게 유행하고,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반부터 PC 통신망과 여성 잡지를 중심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혈액형 인간학이 그럴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황인종은 진화가 덜 되었다는 주장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려고 시작된 이론이 서양에서는 자리 잡지 않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다양한 책과 노래, 영화의 소재로써 하나의 산업군(Business model)으로까지 자리를 잡고 있다.

민족성은 혈액형과 정말 관련이 있을까?

민족마다 많은 혈액형이 조금씩 다르고, 각 민족에게 축적된 문화와 역사도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이었고 몽골계는 유목인 것처럼 말이다. 오랜 민족의 삶은 그들의 골수 깊은 곳에 문화와 생활관을 새겼을 것이다. 불과 몇 년에서 몇십 년 만에 문화에 흡수되어 로버트 할리처럼 유창한 전라도 언어를 쓰는 것이 인간의 사회성인데, 수백 수천년, 아니 수만년(?)에 걸친 삶은 어떠할까. 더위로 인해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을 갖게 된 아프리카인이나 추위로 인해 코가 뭉툭해진 에스키모인처럼 환경에 외모가 변화하는 동안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는 그들의 골수, 그러니까 두뇌, 쉽게 말해서 유전자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것이 지극히 유전학에 지식 없는 내 생각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자신'이라는 유전자를 더 발전시켜 계속 이어가는 매개체라고 봤을 때, 인간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관습과 인습, 문화에 익숙하고 능숙하게 변화하며 유대 되었을 것이다.

ABO식 혈액형 역시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A형이 많은 우리나라 민족은 농경 민족의 성격이다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민족성은 그 민족이 살아온 환경과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설일 뿐, 혈액형에 의해 민족성이 결정된다는 의견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계에 의한 산출이라는 주장의 허구성

통계학적으로 산출된 혈액형별 성격의 신뢰도는 높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에는 전제화되지 않은 조건이 빠져서 그럴듯한 주장으로 들리는데, 그 조건이란 통계 대상의 사람들이 사회에 노출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태아와도 같은 인간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성격은 유전적인 요소와 사회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데 통계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이미 사회에 노출될 대로 노출되어 어쩌면 유전적인 성격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사회에서의 삶을 통해 형성된 성격의 비중이 큰 사람들인데, 이 통계 결과물을 혈액형이라는 유전적인 관점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바로 혈액형별 성격 구분법이다.

살면서 내 성격과 행동 양식을 보고 내 혈액형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다. 내 혈액형은 O형이지만, 내 성격과 행동 양식을 통해 내 혈액형을 맞추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O형을 제외한 혈액형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간혹, 혈액형별 성격 구분법에 의하면 O형의 성격으로 봤을 때 나는 절대로 O형이 아닐 것이라며 인생 내내 Rh+ O형이라 판정 받은 내 혈액형이 분명 잘못 나온 거라는 이도 있다.

아주 드물게는 현대 아산 병원(구 중앙 병원)에서 과거에 수술을 하기 전의 검사에서 나온 Rh+ O형이라는 내 혈액형 검사 결과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들의 공통점은 어떠한 말로도 그들이 맹신하고 있는 O형은 활달하고 사람을 이끄는 능력(leader-ship)이 좋으면서도 간혹 조용 조용한 성격이라는 식의 이론(??)을 굽히지 않는다.

나는 어릴 적 성격과 성인인 현재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는 아주 밝고 명랑하며 적극적이고 늘 자신감에 넘쳤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교육 기관에서 영향을 받기 시작할 때쯤이면 좀 엉뚱하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수학을 좋아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조직에 속한 지금의 나는 과격하게 운동하기를 좋아하고, 수학을 싫어한다. 낯선 사람에게는 내성적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잘 망가지며, 사람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매우 경계해서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현재의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변화는 내가 O형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살아온 삶이 내게 성격의 변화를 강요했기 때문일까?

정리하며..

어차피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하는 글의 문장을 잘 보면 교묘한 말장난이라는 걸 알 수 있다. O형은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지만 때로는 놀라운 책임감을 보이며 부지런함을 보인다고 하는 식이다.

오무라 마사오 교수는 사람들이 혈액형 인간학을 믿는 이유는 'FBI' 효과, 그러니까 성격은 원래 규격화할 수 없는데(Free-size), 한 번 이름 붙여지면(Branded), 마음에 새겨진다(Imprinted)는 것이다. 즉 성격을 A, B, O, AB라는 4가지로 규격화하여 구분할 수 없는데, 두루뭉술하게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공감을 이끌어내면 '아~ 그렇구나! 맞아 맞아 나도 그런 거 같아'라며 그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다.

미얀마는 인구의 98%가 O형이며, 페루 인디언은 인구의 100%가 O형이라고 한다. 만일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말대로라면 미얀마 사람들이나 페루 인디언들은 남에게 이끌려 다니기 싫어서 지도자도 없고, 설혹 있더라도 매일 같이 투쟁으로 피 마를 날 없을 것이다.

열 길 속은 알아도 한 사람의 속은 알 수 없다 했다. 사람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기계처럼 한두 가지 성격과 개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4가지로 분류되는 혈액형에서 설명하는 사람의 성격은 어느 누구나 거기에 속한다. 4가지 관계를 풀어가기 쉽고 검증하기도 쉬운 거 같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판단하지 못한 채 그것에 의존하여 사람을 평가하지 말자. 조금 더 책을 읽고 소양을 길러 사람을 진실하게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을 계발하는 것이 더욱 가치있고 올바른 길일 것이다.

comments powered by Disq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