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입에 붙자 글이 눈에 붙었다

‘바라다’는 말이 있다.
「 나는 애플코리아에서 내게 맥북을 공짜로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이렇게 사용하며, 생각하는대로 이뤄지길 원한다는 뜻이다.

‘바래다’는 말이 있다.
「 책이 오래되어 껍데기 색이 바랬다. 」
이렇게 사용하며, 본디 빛깔이 옅어지거나 윤기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경우가 참 많다. 이를테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처럼, ‘바라다’를 ‘바래다’로 잘못 쓰는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자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시길 바요 」
라고 해야 한다.

이렇게 잘못 쓰는 경우도 있다.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바라다 + ~었다’를 ‘바래다 + ~었다’로 잘못 쓴 것이다. 이 말을 제대로 쓰면,
「 이번 달 말까지 돈을 주길 바다 」
라고 해야 한다.

‘바라다’와 ‘바래다’를 정확하게 구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간 입에 붙은 ‘바래다’ 를 떼기 위해 신경을 써왔다. ‘바랬다’와 ‘바래요’는 혀에 깊이 박혀 있어서 ‘바랐다’와 ‘바라요’라고 말을 할 때마다 어색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 ‘바라다’와 ‘바래다’를 구분해서 써야하며, 흔히 잘못 쓰는 ‘바랬다’와 ‘바래요’를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볼멘, 때로는 당당한 목소리로 내게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내게 설득 근거로 내세우는 말은 어차피 서로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는 의견과 입과 귀에 익지 않아 어색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난 앞의견은 무시했지만, 뒷의견은 공감했다. 두 말을 구분해서 쓰자고 이야기 한 나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두 말을 구분해서 쓴 횟수도 점차 늘었다. 어느 날, 신경도 의식도 쓰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바라요’라는 말이 나왔다. ‘바래요’라고 하지 않으려고 신경 썼었는데 어느 덧 원래 ‘바라요’라는 말을 써온 것 마냥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바라요’라는 말이 나와서 적잖이 놀랐다.

더 신기한 현상은 말이 입에 붙자 ‘바랐다’와 ‘바라요’ 글자가 눈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었다. ‘바라요’가 옳은 표현이니 어쩌니 하는 의식은 아예 들지 않고 원래 ‘바라요’라고 눈에 인이 박힌 것처럼 아무 감흥 없이 ‘바라요’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간 틀린 표현에 익숙해져 맞는 표현을 어색해했다. 이는 애초 틀린 표현이 좀 더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입에 착착 달라붙을만큼 적절해서 익숙한 것이 아니라 단지 주변에 틀린 표현을 쓰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당연하게 주고 받아들여서 생긴 현상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뜻이 서로 더 잘 통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깐깐하게 구분해서 쓸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깐깐하게 구분해서 써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우리 말과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구분 지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바래요’를 ‘바래요’와 ‘바라요’ 뜻을 함께 가진 말로 사용하는 걸로 깨우치게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다른 나라 사람일수도 있고 미래의 내 자식일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고 입과 눈에 붙지 않아서 어색하게 쓰거나, 아예 틀린 표현을 써서 이들에게 오해나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신경쓰고 고쳐나가며 바른 말과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야기를 나눌 때 상대방이 내 생각의 30%라도 이해하면 상당히 말을 잘하는 것이라 한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하기 어렵다.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데 꼭 필요한 말과 글. 보다 정확한 말과 글을 써서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오해를 고쳐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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