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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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이름 : 1리터의 눈물
  • 지은이 : 키토 아야
  • 출판사 : 이덴슬리벨
  • ISBN : 8991310109
  • 읽은 판/쇄 : 초판 2쇄
  • 읽은 시간 : 약 2시간

들어가기 전에...

지은이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키토 아야는 ‘척수 소뇌 변성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10여년간 고통 속에 산다. 척수 소뇌 변성증은 운동 조절을 담당하는 척수, 뇌간, 그리고 소뇌가 퇴행성 변성으로 위축되는 희귀병이다.

이 책은 키토 아야가 6여년간 써온 일기의 부분 부분을 솎아내어 엮었다. 분명 내용은 일기이나 부분을 구성하여 마치 잘 짜여진 소설책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이야기이기에 소설과는 다른 가슴을 찌르는 진솔한 감동이 있다.

이야기 속으로...

키토 아야는 부모님과 여동생 두 명, 남동생 두 명과 함께 사는 15살 소녀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갈수록 떨어지는 운동 신경, 더 예민해지는 감정, 그리고 약해지는 건강으로 내심 신경 쓰이던 어느 날, 어찌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심하게 넘어져 다친다. 병원을 다녀와 몇 가지 검사를 받은 뒤에도 몸에 변화는 계속 찾아온다. 그리고,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감정 - 몸이 불편해져서 겪게 되는 굴욕감과 비참함에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걸을 때마다, 그렇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느끼는 몸의 불안정함, 미덥지 못한 몸, 모두가 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못하는 굴욕감, 비참함, 모두들 그런 기분을 실제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실제로 그 사람의 기분이 되지 않더라도 조금쯤은 그 입장에서 봐주면 안 될까.하지만 어려운 일일 거라고 바꿔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26쪽 중에서...

태권도 도장에 다니던 적에 겨루기를 하다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상대방 도복에 걸려 돌아가는 바람에 삔 적이 있었다. 크기도 작고 존재감도 별로 없는 새끼 발가락. 키 큰 네번째 발가락에 파묻히듯 밀리고 눌려 있다. 이런 발가락을 삐었다고 걸음을 제대로 떼기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몇 몇 사람은 그깟 새끼 발가락 좀 삐었다고 그렇게 절뚝거리는 건 과장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발날을 타고 몸무게가 땅으로 전해질 때 새끼 발가락 부근은 그 힘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부위이고, 다른 발을 앞으로 내딛을 때 몸무게를 버티는 부위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겪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는다. 내 몸 전체에서 1%도 안되는 작은 새끼 발가락 하나 때문에 제대로 걷기 힘들어 속에서 일어나는 화.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주기 귀찮아서 누군가 왜 절뚝이냐고 물어보면 발목을 삐었다고 해버렸다.

장애인이 사회 생활을 할 때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알지 못한데서 오는 편견과 도움이 되지 않는 친절이라고 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 지팡이로 앞을 더듬거리며 가는 사람한테 줄 수 있는 도움은 그 사람의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주거나 소리를 내며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지팡이에 걸리지 않게 비켜주는 것이다. 몸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 장애에서 비껴나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하려는 바를 해낸다. 하지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안전과 편의를 판단하고 베풀려 한다. 그런 친절함은 자칫 자기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을 갖고 있는 장애인에게 큰 위험을 초래한다.

행동 뿐 아니라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여동생 리카가 빵에다 잼을 덕지덕지 많이 발라주었다.
먹는 동안 잼이 똑똑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안됐다”라고 하면서 떨어진 잼을 닦아냈다.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차이는…….
의자에서 일어서려다 실패. 주머니 속의 귤이 부서졌다.
엄마와 같은 마음이 되어 ‘안됐다’라고 생각했다.

206쪽 중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처럼 몸에 별 다른 장애가 없을 경우, 그 사람의 행동을 자신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하지만, 자신과 달리 몸에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면 무의식 중에 그 사람의 장애에 관점을 맞춰 판단한다. 나쁜 뜻을 품고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중에 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 익숙하지 못한 장애인은 자신을 한 사람으로서 대하지 못하고 장애를 가진 불쌍한 사람으로서 대하는 말에 아픔을 느끼게 된다. 마치 부자인 갑돌이를 대할 때, 이 사람을 갑돌이라는 사람이 아닌 부자인 사람으로 대하듯이.

사람은 대상의 알맹이를 모를 때, 그 알맹이를 알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를 알맹이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단단한 껍질 속에 있는 알맹이를 보기 위해 들이는 노력보다 그냥 껍데기를 알맹이로 보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변하기 쉽다. 발목을 삐면 발목 아픔을 피하기 위해 절뚝이며 걷는 새 행동 양식을 취하고, 오른손이 불구가 된 오른손잡이였던 사람은 왼손 잡이가 된다. 이런 껍데기는 환경에 맞춰 변화한 것일 뿐이지 알맹이가 변한 것은 아니다.

지하의 이학요법부에 간다. PT.카와바타와 이마에에게 학력테스트를 받았다. 그때 난 바보처럼 잘난 척을 하고 말았다. 국어와 영어를 아주 좋아해서 자신이 있으며 성적은 상위권이라는 등, 떠벌렸던 것이다. 이제 이 정도로 해두자. 성적을 자랑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이 비참해져서 은행 강도라도 하고 싶어지니까…….

대체로 머리가 좋다는 것은 안에서 배어나오는 것이지 통지표 성적 따위로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46쪽 중에서...

키토 아야는 그런 사실을 알아간다. 비록 몸이 갈수록 나뻐지는 데서 오는 불안함과 자신감 결여로 갈수록 위축되어가는 몸처럼 마음도 위축되어 갔지만, 그런 마음도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잡으려 노력한다.

자신감은 우리의 생각과 움직임의 질을 높여주며 넓게 해준다. 자신감(自信感)은 말뜻 그대로 자기 자신(自身)을 믿는 마음이다. 자신의 값어치를 알고 믿는 마음. 자신감은 자기 자신을 아는만큼 올바르고 바르게 나타난다.

만일,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거나 않으면 어찌 될까. 잃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자신감을 잃거나, 자만이나 오만을 자신감이라 믿게 된다.

나보다 잘나거나 뛰어난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자신감을 잃곤 한다. 몸에 장애를 갖고 있지 않던 사람이 사고를 당하여 큰 장애를 갖게 됐을 때, 그 사람이 자신(自信)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자신을 도마 위에 올리고 자신을 객관된 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을 다른 사람에 맞춰서 그릇된 주관으로 보기 때문이다. 몸의 장애가 가져오는 큰 병인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다.

키토 아야의 어머니는 두려움에 빠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딸을 헤아려 갈 길을 가리켜준다.

“이제부터 고등학교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을거야. 편한 길이 아니야. 매일의 행동에 제한을 받게 될 경우도 있고 다른 아이와 구별이 되기도 해서 힘들 때가 더 많을 지도 몰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하나 둘 정도의 고통은 지니고 산단다. 그걸 견디고 이겨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돼. 나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마음에 새겨둬라.”

… 중략 …

부모님을 위해, 내 자신을 위해,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것에 희망을 걸고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결심했다.

37쪽 중에서...

스스로 자신을 알아가면서 자신감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모순처럼 자신을 나보다 못한 누군가와 비교해서 자신(自信)을 찾아가고, 스스로 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곁에 있는 누군가 절뚝이는 내 자아에 어깨동무를 해주며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自信)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 어떻게 보면 모순일 수도 있지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自身)을 일으키고 끌어주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도움이다. 탈진한 사람이 스스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며 면역력과 체력을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링거(Ringer)액을 투여 받으며 서서히 기운을 차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면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를 일으켜세워야 한다.

“이 몸은 초능력을 믿어(나는 맞장구를 쳤다). 아메바와 비교하면 우리들 인간은 누구나 초능력자이며 눈이 안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보이는 사람은 모두 초능력자잖아?”

80쪽 중에서...

괜찮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넘어진 후에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봐.
파란 하늘이 오늘도 끝없이 펼쳐져 미소 짓고 있잖아.
나는 살아 있구나.

88쪽 중에서...

키토 아야는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학교도 포기하고 양호학교로 가기로 결정한다. 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장애를 안기 전의 자신을 정리한 것이다.

모토코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1. 늘 청결할 것. 장애자는 불결하다고 생각되지 않게끔 정상인보다 훨씬 더 자신에게 엄격할 것.
  2. 지금의 친구를 소중히 여길 것.
  3. 앞으로 워드 자판을 마스터하면 좋을 것 같다.
  4. 히가시 고등학교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선생님의 말씀과 내 생각(선생님 앞에서 말하지는 않았지만)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해서 마음 속에 새겨두었다.

92쪽 중에서...

이런 마음을 먹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키토 아야는 스스로에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자신이 다니던, 다니고 싶어하던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 그리고 앞으로 함께하게 될 양호 학교에 다닐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서 반갑지 않고 힘들지만 새로운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을 믿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간다.

이런 아이를 어찌 16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만과 오만을 자신감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키토 아야는 찌그러지고 부숴져가는 그릇에서 탁해지지 않고 새로운 맑음으로 거듭하고 있었다. 몸이 마음을 시험에 들게 했고 주변 사람의 보살핌과 사랑에 기운을 차리고, 결국 스스로 힘으로 자신을 잡아갔다.

키토 아야가 마음을 잡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키토 아야의 어머니가 큰 힘이 되었다. 일본인 특성이라고 - 남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된다, 남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면 안된다 - 하기엔 사람을 존중하고 바른 눈으로 보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1때 여동생이 병원 복도에 늘어서 있는 휠체어를 가지고 놀겠다고 하자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놀면 못써. 휠체어 밖에 탈 수 없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꼴이 되니까.” 나는 지금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107쪽 중에서...

단순히 시끄럽게 하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으로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을 헤아리는 말과 마음은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인데도 그 상황에 놓인 사람과 입장을 바꿀 수 있기에 가능하다. 책은 그 많은 일기를 추려냈기에 키토 아야 어머니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적지만, 분명 키토 아야의 생각과 마음이 자라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자라는 것과는 달리 소뇌에 이상이 생겨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병이 악화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가는 키토 아야. 굵고 매듭이 튼튼한 밧줄이 목을 옥죄어 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오래도록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을 해도 죽음을 예고하는 증상을 겪을 때마다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깊은 호수가 되어 날아오는 돌맹이에 잔잔한 물결만 일으키며 견대내왔다기보다는, 얕지만 넓은 물웅덩이가 되어 단지 넓게 하늘을 담아 평온을 좇는 것이었으리라. 자신을 담듯 하늘을 담은 얕은 물웅덩이는 타닥 타닥 걷는 어린 아이의 발걸음에도 그 밑을 다 드러내며 출렁인다.

통증이 가라앉는 동안에 정수는 그 육체적 고통보다 덜컥 밀려드는 두려움에 더 시달려야 했다. 비로소 죽음과 고통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막연히 죽어야 하는가 보다 생각했던 잠시 전과는 그 느낌의 차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토록 거부하고 싶었던 두려움이었는데 어느 순간 여지없이 전신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었다.

김정현 장편소설 ‘아버지’, 67쪽 중에서...

자신을 믿는 마음은 곧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그러나,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꺾는 징조 하나는 힘겹게 쌓아오고 지켜오던 마음을 허무는 발길질이다. 키토 아야가 아무리 마음을 잡아가는 성숙함을 보였어도 작은 아이였고 나약한 사람일 뿐이었다.

어느덧 매미가 울음을 그치고 방울벌레가 울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내려간다. 그리고 체력과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없어진다 해도 이 세상엔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랑, 그것에만 의지하고 살아 있는 자신이 얼마나 슬픈 존재인가.
엄마, 나 같은 추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요?
내 안의 반작거리는 것을 엄마라면 분명 발견해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쳐 주세요. 이끌어 주세요..

200쪽 중에서...

살 수 있다는, 병이 나으면 무엇을 하겠노라는 희망을 잃으면 결국 찾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도 되는 이유이다.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글씨 쓸 힘도 잃어가는 것. 세상 사람들 한 가운데 있어도 그 모두에게서 차단 당하는 절망감과 고통이다. 그 절망감 속에 키토 아야는 자신을 놓고 만다. 살아가되 앞으로를 위해 살아 숨쉬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지금에 충실하기 위해 살아 숨쉬는 것도 아닌, 지금 살아 있으니 살아 숨쉬는 삶을 이어간다. 그것은 삶이라기 보다는 죽어가는 흐름 속에서 살아있으로서 할 수 밖에 없는 아프고 무섭고 비참한, 하지만, 아무런 대가를 얻을 수 없는 투쟁이다.

전에 없던 몸의 징조를 희망의 씨앗으로 여기고픈 슬픈 노력, 자신을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과 자신을 함께 뒤돌아보며 느끼는 끝없는 고마움. 키토 아야는 죽기 5년 전인 20살 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오늘 하루에 고마움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책에서 키토 아야의 일기는 21살이 되기 전에 끝나는데 마지막 일기를 고맙습니다로 마친다.

마치며...

책의 제목인 ‘1리터의 눈물’은 여러 뜻이 있다. 소뇌의 이상으로 감정이 예민해져 울음이 터지는 걸 뜻대로 참지 못하는 걸 뜻하고, 한 소녀의 눈물 어린 살아가기 위한, 예고된 죽음을 인정하기 위한 투쟁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키토 아야의 눈물 겨운 삶을 보며 자연스레 가슴에 서렸을 차갑고 파란 눈물을 뜻할 것이다. 참 적절하게 지은 제목이라 생각된다.

키토 아야는 눈 내린 새까만 밤 하늘의 구슬픈 초승달같은 눈물을 흘렸고, 이런 키토 아야를 책 등으로 본 사람들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음 날이 있기에 눈물과 울음만으로 멈추지 않고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며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키토 아야가 그토록 바라던 일들, 걸어서 찻집에 가고 책을 고르는 일을 할 수 있기에. 우리가 헛되이 보냈던 순간 하나 하나가 누군가에겐 사치스러운 희망일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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