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모기

어제 밤부터 줄곧 날 괴롭혀 온 모기를 잡았다. 검붉은 피가 나오는 걸 보니 날 잡아잡순 지 얼마 안 됐나보다. 갓 빨아들인 피를 소화 시키기도 전에 죽어가는 모기를 보니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벌레를 싫어한다. 갓 20대에 접어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그리마 외엔 망설이지 않고 벌레를 죽일 수 있었다. 이제는 대하는 것은 물론이요, 죽이는 것도 싫다. 벌레를 보며 느끼는 혐오감이 마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가둔다.

모기를 죽일 때에도 마음이 편하진 않다. 요리조리 내 박수를 피하며 약올리다 힘겹게 잡고 나면 느끼는 짜릿함이 진할수록 마음이 개운치 않다. 가끔은 책을 볼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이쯤되면 꼴값을 떨이친다고 할 것 같다. 괜찮다. 내 꼴값은 많이 비싸니까.

몇 가지만 지켜준다면 난 참말로 모기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 무리한 조건도 아니다. 살갗이 연해서 더 간지러움 타는 곳 물지 말 것. 앵~ 소리 들리는 귀 근처에서 알짱대지 말고 바로 허벅지나 엉덩이 부위로 가서 용건만 간단히 마칠 것. 물론, 뇌염이나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을 남기고 떠나면 안 된다.

어쩐지 다소곳한 느낌이 드는 작은 봉우리를 남기어 단골집 표식을 남겨도 괜찮다. 과식해도 되고, 조금씩 여러 번 마셔도 된다. 단지, 귀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고, 오른쪽 엉덩이가 물린 걸 왼쪽 엉덩이가 모르게 콕 찌르고 갔으면 좋겠다. 그래, 조금 더 양보해서 가끔은 살갗이 연한 곳을 공략해도 괜찮다. 가끔은 별식을 하고 싶을테고, 하루 정도 불편한 건 참을 수 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아왔으면서 이토록 수수한 협상이 맺어지지 않은 점은 실로 유감이다. 또한, 협상 불성립으로 오늘도 짝짝 박수치며 짧게나마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이 상황도 유감이다. 올해엔 지겹게 유감스러웠으니 이제 그만 활동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이젠 가을이잖어어어. 쌀쌀하잖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