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소리와 홀소리, 말과 글, 두벌식과 세벌식

닿소리와 홀소리

우리말은 닿소리와 홀소리로 나뉜다. 홀소리는 그 소리를 홀로 낼 수 있다는 뜻으로, 보통 모음이라고 부른다. 닿소리는 그 자체엔 소리가 없어서 홀소리에 닿아 내야 하며, 자음이라고 부른다.

잠깐. 자음에 소리가 없다고? 이렇게 반문을 할 사람이 있을텐데 정말 그렇다. 소리가 없다. ㄱ은 기역, ㄴ은 니은, ㅂ은 비읍이라 하는 건 각 닿소리의 소리가 아니라 이름이다. 닿소리는 소리를 내기 위한 모양새나 틀이고, 이 모양새와 틀에 숨을 거쳐보내어 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해가 안된다면 ㅎㅎㅎ 나 ㅋㅋㅋ 이 어떤 소리인지 생각해보면 된다. 하하하? 히히히? 호호호? 후후후? 카카카? 크크크? 사람마다 다르다. 왜냐하면 웃는 상황을 나타내는 기호일 뿐, 소리를 나타내는 홀소리가 없기 때문에 소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는 우리말과 달라서 자음에도 소리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소리내기 어려워한다는 f, v, th 를 비롯해서 각 자음에 소리가 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자음을 연달아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script 에서 앞에 있는 sc 는 모음없이 s 와 c 라는 자음을 각각 소리내고, 뒤에 있는 pt 도 마찬가지이다.

말과 글

우리나라 사람이 종종 헷갈리는 것 중 하나가 말과 글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 책은 한글로 번역 됐을 뿐이지, 너무 번역투라서 읽기 힘들다”

글은 말을 쓰는 데 필요한 기호이자 도구이다. 우리말(한국어)를 표기하는 글자가 우리글(한글)이라서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인데, 유럽에 있는 여러 나라를 보면 글과 말 개념이 명확히 구분된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을 보면 각각 독일말(독일어), 프랑스말, 영국말(영어)를 쓰지만 글은 알파벳(alphabet)을 쓴다.

세상엔 많은 말이 있는데 그 말 개수만큼 글이 있진 않다. 즉, 말은 있는데 글이 없는 나라나 민족이 있다는 말인데, 이들은 다른 나라나 민족이 만든 글을 쓰기도 한다. 아프리카나 동남 아시아에 글이 없는 곳에 우리글을 보급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말과 글이 나뉜 개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두벌식과 세벌식

우리말이 홀소리(모음)과 닿소리(자음)으로 나뉜다면, 우리글은 첫소리(초성), 가운뎃소리(중성), 끝소리(종성)로 나뉜다. 이것 역시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부분이다. 우리글을 홀소리와 닿소리로 나누는 것이다. 우리글을 홀소리와 닿소리로 나눈다고 해서 꼭 틀렸다고만 볼 순 없다. 어쨌든 소리를 쓰는(표기하는) 방법이니까.

문제는 각각을 나눈 기준이 다른 데 있다. 홀소리와 닿소리 나눔은 소리 역할에 맞춘 것이고,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 나눔은 글자 역할에 맞춘 것이다. 그래서 소리 기준으로 나눈 홀소리와 닿소리로 글을 쓰면 각 글자를 마무리하는 시점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엔 명확하지 않을 것이 없다. 그러나 컴퓨터 자판으로 글자를 맞출 때엔 문제가 될 수 있다.

컴퓨터로 우리글을 써넣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두벌식과 세벌식이다. 두벌식은 닿소리와 홀소리로 글자를 맞추고, 세벌식은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로 글자를 맞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표준으로 인정받는 방식은 두벌식이다. 그러나 두벌식은 여러모로 우리글을 표현하는 데 문제가 많다. 손을 더 피로하게 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자판을 쓰는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오타를 더 많이 일으키는 점은 사람 관계없이 두루 일어나는 문제점이다. 이를테면, 센소리(된소리) 글자를 쓸 때 두벌식은 Shift 글쇠를 누른 상태에서 닿소리를 눌러야 하는데, 중간에 Shift 글쇠에서 손을 떼면 센소리 글자를 쓸 수 없다. 그래서 “이었다”를 “이엇다”라고 잘못 쓰는 경우와 비슷한 실수가 잦다. 또한, 첫소리와 끝소리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없어”를 “벗ㅇ어”라고 오타를 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세벌식은 공병우 박사께서 만든 입력 방식으로 두벌식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이 거의 없다. 난 두벌식을 쓸 때보다 오타가 훨씬 적게 나서 세벌식을 무척 좋아한다. 그 나랏글을 효과있게 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민족의 자긍심을 살린 세벌식 타자기까지는 내가 직접 겪어 얼른 와닿지 않더라도 우수한 우리글의 자긍심을 살린다는 생각은 늘 몸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