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요 선택 중 하나, Django

2007년에 난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준 선택(결정, 판단)을 두 개 했다. 첫 번째는 Django라는 개발 도구를 선택한 것이고, 두 번째는 넥슨에서 게임을 만들다 태터앤컴퍼니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던 회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Django는 Python용 웹개발 framework이다. 공식 발음은 쟁고라는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통은 장고라고 읽는다.

내가 처음 Django를 처음 접한 때는 2006년이다. 당시엔 RoR(Ruby on Rails)라는 개발 조합이 관심을 많이 끌던 시기였는데, 5분 만에 블로그 만들기라는 스크린캐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즉, 프레임워크를 이용하여 아주 쉽고 빠르고 유연하게 웹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단순히 구현만이 아니라 아주 후다닥 만들어낸 결과물이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가령,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에 접속하면 아주 불친절하게도 흰 화면에 error, 404 뭐 이런 글자들만 덜렁 띄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RoR이나 Django 등을 보면 디자인 된 오류 화면이 프레임워크에 내장되어 있어서 5분 만에 만든 블로그인데도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외양은 내 관심사가 아니어서 저런 친절한 요소가 내겐 별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내가 당시 주목받던 여러 프레임워크 중 Django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외양 때문이었다. Django에 대해 다루는 책을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djangobook.com 이라는 서비스를 우연히 접했는데, 한창 내용이 작성되던 시기여서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웹페이지 외양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 후, 난 넥슨 동기인 김세중의 걱정과 강한 반대를 뒤로 한 채 태터앤컴퍼니라는 회사로 전직했고, 체스터(노정석)님과 김창원님에게 이리저리 깨지며 웹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웹브라우저에서 즐기는 육성 게임 프로토타이핑을 만들기로 하고는 그간 관심을 가졌던 Django를 선택했다.

당시 Django 버전은 0.96이었다. Pytho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2001년부터 깨작깨작 다루긴 했지만 뭔가를 만드는 데 제대로 써본 적은 없었고, 무엇보다 국내에 한국어로 작성된 Django 자료도 거의 없던 그 시기에 Python와 Django를 고른 건 썩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이삼 일이면 PHP로 계획한 것을 다 만들었을 프로토타이핑이었는데, Django로 처음으로 Hello world를 갓 띄워본 상태에서 공부하며 뭔가를 만들려니 1주일이 넘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아주 사소한 부분만 겨우 만들었다. 더 어이없는 건, 1주일 넘게 시간을 들여 만든 프로토타입 버전에서 Django를 활용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부족해 Django로 개발하던 부분을 싹 걷어내고 가짜(dummy) 데이터로 기능을 구현한 것이다.

그 어이없는 일 때문에 오기가 생겼고, Python과 Django를 파고 들었다. 한국어로 작성된 자료가 거의 없어서 고생했던 나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Django 강좌를 썼다. 그 강좌가 인연이 되어 한 해커를 알게 되었고, 그 해커는 얼마 후 나와 함께 창업을 하여 현 Flaskon의 C.T.O가 된다.

만약, 그때 RoR을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역시나 창업은 했을텐데, 누구와 함께 하고 있을까?

새삼 느낀다.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내 선택이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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