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오른손, 그리고 양손

나는 상당한 양손잡이다. 타고난 양손잡이는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오른손 이용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며 살아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상당한 양손잡이다.

처음 왼손을 쓰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때였다. 중학교 1학년이었는지 2학년때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건 중3이 되기 전에 왼손을 쓰기 시작했다. 아니 단련하기 시작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왼손을 쓰면 오른쪽 뇌가 발달하는데, 오른쪽 뇌는 예능쪽이 발달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림 실력이 좋으시다. 아니 그림을 포함한 관련 분야에 대해 대단한 소질이 있으시다. 음식, 그림, 문학적 감성 등 오른쪽 뇌와 관련된 예능 소질은 매우 높으시다. 만일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투자를 받으셨다면 예능 분야로 이름을 날리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나는 자연스레 예능쪽에 취미와 관심을 갖는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께서 들으시는 음악(주로 포크, 락 계열), 어머니의 그림이나 자수, 이야기에 노출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유년기에 아버지는 해외에 계셨고, 유달리 어머니를 따른 나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음악과 그림에 관심과 취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소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내게는 예능의 타고난 소질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안되는 포즈(Pause)의 사람 낙서가 한계였다. 색감도 뛰어난 편이 아니었으며 화면 구성 능력이나 표현력 등 미술과 관련된 것들 대다수가 부족했다. 게다가 딱히 노력을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집중력이 부족한 내가 집중을 하지 않음으로서 발생하는 여분의 시간동안 할 수 있는 행위가 낙서이기 때문에, 그림을(낙서를) 많이 그렸던 것 뿐이었다. 그것도 주로 공책이나 교과서, 참고서에. 그래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늘 들어왔지만 내 미술 성적은 대게 수,우,미,양,가 중 미에 그쳤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분야도 그림은 아니다. 물론 한때는 그림을 그렸으나 프로(pro)로서 활동하기엔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능력(노력)이 없음을 느끼고 재빨리 발을 뺐다. (지금 생각해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음악 역시 그러하다. 늘 음악과 함께 했기 때문에 음악이 없으면 허전한 것이지, 음악 관련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래도 못부르며, 음악을 듣는 폭도 좁고, 부족한 감성으로 인해 음악을 느끼는 것 조차 형편 없다. 많은 이들이 특정 음악을 듣고 전율을 느끼거나 감동할 때 나는 그러한 감성적 자극을 받은 적이 드물거나, 사람들과 전혀 다르게 느끼곤 한다. 작곡을 하려 해봤지만 그 역시 녹녹치 않았다. 기본이라 할 수 있른 리듬을 잡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귀에 익은 리듬과 멜로디를 내 흐응 흐응~~ 콧노래에 맞춰 손만 봤었다. 그리고 그림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인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재빨리 발을 뺐다. (지금 생각해도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를 닮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닮지 않았다. 아니 두 분을 닮았다. 외모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좋은 특성을 가져왔으며, 목소리 내는 습관은 아버지를, 하지만 목소리 톤은 어머니를 닮았다. 손재주나 이공계적 소질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고, 비이공계적 관심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튼튼을 넘어서 가죽처럼 질겨서 여러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피부는 아버지에게서, 비교적 밝은 톤의 피부색은 어머니에게서 유전되었다.

하지만 나는 두 분을 닮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집중력이 부족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혀를 내두를 천부적인 이공계 소질 역시 부족하다.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 않을 듯한 강철같은 아버지의 체력 역시 내게는 부족하며, 가끔은 정치인을 연상케하는 어떠한 면모 역시 부족한 편이다.
나는 어머니의 집중력과 감성이 부족하여 게으른 편이며 냉정하고, 자타가 인정하는 예능적 소질 역시 내게는 전무한 편이다. 가끔은 여장부를 연상케하는 이끄는 능력(Leader-ship) 역시 부족하다.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다. 나는 어머니를 닮았지만, 닮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를 닮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를 상쇄시키기 위해 어머니를 닮기 위해 애를 썼다. 예능이었다. 하지만 나의 예능 소질은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를 수식하고 있는 고마운 능력인 잔머리가 발휘되어 가끔 예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그러한 잔머리가 모든 상황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게의 나의 예능에 대한 자타의 평가는 잘 쳐줘야 보통이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왼손의 훈련이었다. 왼손을 훈련하여 오른쪽 뇌를 더 활성화시켜서 억지로라도(??) 예능의 능력을 높여서 어머니를 더 닮고자 했던 듯 싶다.

왼손 훈련의 시작은 왼손으로 학교의 영어 숙제를 하는 것이었다. 영어 교과서에 실린 단어를 공책에 1~5회씩 반복하여 옮기는 숙제였다. 한 과당 10~20여개이기 때문에 도합 300~1000회의 알파벳 그리는 작업을 해야했다. 당시는 영자를 공책의 4선지인지 5선지에 이쁘고 크게 적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숙제 성실성에 대한 체벌이 결정되었다) 왼손을 단련하는데 더 없이 좋았다. 한글은 작게 쓰는데다 초성, 중성, 종성이 옹기 종기 모이기 때문에 익숙치 않은 왼손으로 쓰려면 대단히 고통이 강요되었다.

왼손 훈련을 시작으로 왼손을 쓰기 시작한지 수 년을 보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의 왼손 사용은 꽤 익숙해졌다. 젓가락, 숟가락질은 왼손 오른손의 구분이 없다. 오른손 젓가락질 자체를 잘하기 때문일까? 나의 왼손 젓가락질은 나와 한 번이라도 함께 식사를 해본 여성들보다 더 잘한다. (엄청난 횟수의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와 한 번이라도 식사를 했던 여성들은 전부 젓가락질이 서툴렀다) 오른손 필체 자체가 엉망이기 때문일까? 나의 왼손 필체는 오른손 필체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별로 없다(............).

왼쪽이 더 나은 상황이 있다. 이를테면 지폐를 세는 것이다. 오른손으로는 지폐를 잘 세지 못하고 자꾸 지폐를 떨어뜨려서 주변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한다. 드럼을 치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치는 경향이 있었다. 대게 왼손으로 스네어를 치고, 오른발로 베이스 드럼을 치지만 난 반대였다. 고치느라 애를 먹었다. 기타 역시 오른손으로 코드 잡고 왼손으로 줄을 튕기는 것이 편했지만, 왼손 기타는 오른손 기타보다 비쌌고, 주변에 왼손으로 기타를 치는 사람이 없어서 고쳤다. 왼손을 오른손보다 잘 쓰는 상황들은 대게 애초 어느 손으로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서 엉겁결에 왼손으로 해본 경우이다. 컴퓨터 마우스를 조절하는 건 예외이긴 하다. 애초 오른손으로 시작한 컴퓨터 마우스 조종이지만, 왼손이 더 섬세하고 정확하며, 장시간 사용해도 오른손보다 덜 피로하다. (물론 내 앉은 자세가 몸의 우측이 좌측보다 미묘하게 더 앞으로 나와있는 삐뚫어진 자세 때문이지만)

오른쪽이 더 나은 상황도 있다. 내 오른팔의 힘은 왼팔의 3~5배 이상 강하다. 만지기 싫은 것을 만지는 것 역시 오른손이 더 편하다(동물을 만진다거나). 그리고 왼손보다 15년 이상 더 사용했기 때문에 익숙함이라는 힘을 근거로 한 빠르게 무언가를 처리하는 것 역시 오른손의 임무이다. 예를 들면 글씨를 빨리 쓴다거나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누른다거나, 면도, 양치질 같은 것이다.

재밌는 습성이 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왼손으로 턱을 괴거나 머리를 긁적이거나 손장난을 하면 비교적 집중해서 간결하게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오른손이 왼손을 대신하면 생각하는 행위 자체에는 집중을 하지만 본 주제에 대한 집중력은 부족하다. 중국 비즈니스가 주제라면 지금 떡볶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 식이다. 덕분에 생각을 마무리하는데 대단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대단히 많은 시간이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에서 몇 개월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주제는 몇 년간 마무리를 못지어 부피만 커지고 있는 것도 있다. 물론 그러한 진행 중의 생각을 들은 어떤 이들은 기발하다는 평을 내리지만.

감성적인 일을 할 때는 왼손이 나서지 못한다. 감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월등히 세기 때문에 나의 감성은 꽤 인위적으로(이성적으로) 발생되곤 한다. 그래서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도 생기게 된다. 아기나 동물의 새끼가 너무 귀엽거나 이뻐나 만지고 싶을 때는 무의식적으로 언제나 오른손이 나아간다. 왼손은 거들 뿐.
잘 이해가 안되려나? 예를 들어보자. 운전을 잘하는 사람은 어떠한 차종이건 운전을 잘 하지만, 운전이 미숙한 사람은 비상 깜박이 작동 버튼의 위치 때문에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뒤의 차를 깜짝 놀래키는 법이다. (당연히 이 이야기는 비약이다)

이상도 하지.
왼손은 감성, 오른손은 이성. 오른손은 논리적이고 계산적인 것을 왼손은 그 반대.
라고 하는데 재밌는 습성들의 사례들은 반대이니 말이다.

지금은(2003년 12월 크리스마스 보름 전 기준) 익숙함에 있어서 왼손과 오른손의 차이는 49:51 정도이다. 아주 미세하게 오른손이 더 익숙할만큼 왼손 사용이 익숙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왼손잡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비록 어리숙했고 미숙했으며 막연하고 방향도 불명확했지만 나름대로 정체성과 주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숙하고 미숙하며 막연하고 방향도 불명확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어리숙하고 미숙하며 막연하고 방향도 불명확한 정체성과 주관조차도 잃어버렸다. 수 없이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 있는지 되묻는 청년이 되었다.

예능적 소질을 후천적으로 자극하여 계발하기 위해 시작했던 왼손의 훈련. 왼손의 사용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왼손 훈련을 시작했던 날로부터 오늘에까지 지났던 시간을 한 번 더 보낸 후에 나는 어떤 손을 더 익숙하게 사용하게 될까? 왼손? 오른손? 아니면 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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