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파춥스에 대한 나른한 단상

추파춥스. 츄파춥스.
어쨌건 ChupaChups.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것을 풀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격이 워낙 둔하거나 너무 착하고 순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단순한 성격일 뿐이다.

스트레스에 있어서 기호 식품은 훌륭한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애연가들이나 애주가들은 담배, 혹은 술로서 그들의 애환을 푼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나는 술에 너무 약하며 즐길 줄도 모른다.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 나는 먹는 계열의 군것질을 약간 즐기는 편이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혹은 두뇌의 가열 현상을 막기 위해 즐긴다. 군것질 식품들의 이름을 기억 못하기 때문에 즐겨 먹는 군것질거리들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지만, 어쨌건 좋아한다.

그 중 좋아하는 것을 두 개만 꼽으라고 하면 초콜릿과 추파춥스이다. 초콜릿은 아몬드나 땅콩 등이 들어있지 않은 것이 좋다. 초콜릿 덩어리가 좋다. 그러나 안에 딸기잼(?)이 들어가면 즐겁다. 추파춥스는 편해서 좋아한다.

추파춥스를 처음 먹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90년인가 1991년일 것이다. 학교 앞에서는 여러 불량스러워 보이지만 왠지 친해지고 싶은 불량 서클 식품들이 많았다. 부모님들은 그들과 어울리면 어린 우리들의 건강이 불량해지니 어울리지 말라하셨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그 식품들을 좋아했다. 주로 50원어치 오뎅 국물(가끔 오뎅이 2~3개 들어가기도 한다), 컵 떡볶이 50~100원어치, 쫀드기, 뽑기, 연탄불 쥐포 등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사탕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 당연히 있다. 그냥 먹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가게 안에는 많은 사탕들이 있었다. 먹으면 혀나 입안은 물론 입술까지도 사탕의 색으로 물드는 사탕 친구들도 있겄고, 포장 비닐 봉지에서 해방된 스카치 캔디 녀석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막대 사탕이었다. 힘들게 힘들게 영어 이름을 읽어봤다. 츄파춥스. 이상한 이름이었다. 다른 사탕들에 비해 가격도 비싼 녀석이 이름도 이상했다. 하지만 난 그 이후로 종종 그 이상한 놈을 잡아먹었다. 고등학생때도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어설픈 놈들 사이에서 난 추파춥스를 피웠다. 내게는 담배 같은 존재였다.

IMF 경제 위기라고 한참 TV 에서 국민들을 겁 줄 때 였다. 97년 겨울이었었지 아마. 그때 내게 슬픈 사건이 발생했었다. 1997년 12월부터(적어도 우리 동네에선) 츄파춥스의 가격이 100원에서 200원으로 100% 인상한 것이었다. 타격이 컸다. 1000원으로 친구와 메로나 한 개씩 입에 물고, 덤으로 추파춥스까지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추파춥스의 가격이 400원이 되면서 1000원의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손에 뭔가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고, 가방 메는 것도 싫어해서 늘 배가 부른 내 주머니에 백원짜리 동전들까지 가세했다. (참고로 겨울철에 주머니 안의 것들을 다 뺀 뒤 몸무게를 재면 1~3kg 까지 체중이 적게 나오곤 해오고 있다. (진행형))

199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던 때였다. 당연히 군것질 소비량이 늘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난 가난했다. 그런 날 불쌍히 여겼는지 당시의 여자 친구는 내게 추파춥스 150개짜리 통을 사주었다!

세상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종종 추파춥스가 떨어질 때쯤 되면 150개짜리 통이 추가 되었다. 한 때는 150개짜리 알루미늄 재질의 추파춥스 통을 모으기도 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4통 정도를 먹었던 듯 싶다. 많이 먹을 때는 하루에 4개를 먹는 것치고는 오래 먹은 셈인데 2001년 초에 풍치와 충치로 고생하였고, 결국 1달간 치과에서 아픈 교육을 받았고 한동안 추파춥스를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치료한 충치가 17개였다. (....)

오늘 2003년 12월 31일.
이 밤의 끝을 잡고~♪ 가 아닌, 이 년(年)의 끝을, 아니 이 해의 끝을 잡고~♪ 출근 하는 아침에 슬픈 소식을 접하였다. 추파 춥스를 처음으로 개발한 엔리크 베르나트 폰틀라도사가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것이다. 10년 넘게 먹어오면서 추파춥스를 개발한 사람이 궁금하긴 했지만, 저런 이름인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사탕의 대부분이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아이들의 손은 더러운 경우가 많아 위생상 안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탕에 막대를 끼우게 되었다는 베르나트씨의 생전의 말을 보니 문득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관심도 안가졌던 이인데, 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생전의 말을 보니 애도하게 되었다.

언제까지 내가 추파춥스를 피우고 다닐 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정장 입고 추파춥스 물고 있으니 당분간은 추파춥스를 끊지는 않을 거 같다. 스트레스 해소의 도움제(?)로서, 그리고 남들의 이목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인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지의 평가 기준으로서 먹고 있는 추파춥스. 내 삶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그 날이 되기 전까지는 열심히 먹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