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 양식
20 Dec 2003기획 업무를 해오면서 종종 듣는 말 중 하나가 "기획 양식 좀 주세요" 이다. 특히 기획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듣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제법 난처하다.
기획서란 무엇인가? 무엇이랄게 있는가! 기획을 문서로 정리한 것이다.
게임의 기획이라는 것은 형태가 매우 불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장르가 다양한 점을 떠나서 같은 장르일지라도 게임의 컨셉과 목적에 따라 기획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서 양식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모순이다. 왜냐하면 기획은 물과 같아서 어디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내용도 달라지고 기획서 구조도 달라지는 것이지, 언제나 이런 모양! 이라는 것은 "물은 삼각형 모양이다" 라고 우기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기획서를 써보지 않은 기획 입문자는 어떻게 기획서를 쓸까? 잘 쓰면 된다. 잘 쓴다는 말은 필요한 내용을 잘 담고 있으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들 하는 말이 사장(혹은 경영자)은 자신의 사업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세워져 있어서 언제 어느때라도 누군가가 물어보면 1분 분량으로 정리도 할 수 있고, 1시간 분량으로 정리도 할 수 있어야한다고 한다. 그정도 사업에 대한 계획이 없으면 그 사업은 필히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기획에 적용해보면 기획자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세워져 있어야하며, 어느 누가 불시에 프로젝트에 물어보더라도 1분짜리 분량이건 30분짜리건 1시간짜리 분량이건 말을 할 줄 알아야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머리 속에 구축된 게임에 대한 생각과 정의를 문서로 기술한 것이 기획서이다. 즉 기획자 머리 속에 자신이 만드는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다면 기획서가 나올리 만무하다. 때문에 "기획서 어떻게 써요"라는 말은 곧 "기획할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하지만 게임은 기획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 되는 기획자라면 혼자 만들 수 있겠지만, 대게의 경우 혼자 만들지 않고, 만들 수 없다. 때문에 기획자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게임을 종이에 옮긴다고 기획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은 경우에 따라서 그래픽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에게 전혀 필요성이 없는 이면지 묶음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다음 사무실 대청소때 처분될 종이 묶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하기 전에 기획자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봐야한다.
자 충분히 생각해보았다.
기획서에는 다른 팀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이 있어야한다. 예를 들어 포커 게임을 기획하는 기획자가 게임내에 포커 카드는 굴곡(Wave)을 그리며 이동한다고 기획했을 때, 이 포커 카드의 굴곡 이동을 프로그래밍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그래픽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굴곡의 크기는 어느 정도이고 이동 속도는 어느 정도인지, 이동이 발생될 때 카드의 좌표값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과 같은 프로그램팀과 그래픽팀에 필요한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3987489289387 + 384783 = 매우 많을 것이다
가 아닌
3987489289387 + 384783 = 3987489674170
이어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획서에는 함께 개발을 하는 다른 팀을 고려해야한다. 이때 다른 팀은 꼭 기획팀을 제외한 개발팀의 팀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마케팅팀과 경영팀도 이에 포함된다. 때문에 개발 일정과 프로젝트 개요, 목표 고객층과 목표 매출, 예상되는 이득과 손실 등의 내용도 첨부된다.
이 많은 내용이 기획서에 포함된다.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게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기획서가 베게만큼 쌓이기도 한다. (더 슬픈 사실은 이 두터운 기획서를 다 보는 사람은 기획자 자신 뿐이다. 그 어떤 누구도 수백장의 기획서를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늘 그들은 정리해서 달라고만 한다)
그럼 기획자는 프로젝트 시작에서 끝까지 문서만 쓰는가? 그렇다. 하지만 항상은 아니다. 항상 그렇다면 기획자 없이 회의 기록할 사람 한 명 고용하는게 더 나을 것이다!
때문에 기획자는 매우 다양하며 기획서 역시 매우 다양한 파트로 나뉘어지고, 각 파트 담당자도 다르다.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도 기획서 작성에 참여한다.
이제 정리하려 한다. 기획서는 정해진 양식이 존재할 수 없다. 단지 기획서에는 최소한 이러 이러한 내용이 들어가야한다는 상식정도만 존재한다. 그러니 기획서 양식에 얽매여 머리 속의 기획을 놓치는 일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대로 기획서 양식조차 갖추지 못한 기획자라고 업수이 여기는 비기획자 역시 사라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