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술을 즐길 줄 모른다

난 술을 즐길 줄 모른다. 혀의 무능력함이(?) 첫째요, 두뇌의 무능력함이(?) 그 둘째 이유라 할 수 있다. 이 단백질 덩어리가 술에 대한 나름대로의 뚜렷한 지론과 기준이 있는 탓에 나는 술을 즐길 줄 모른다. 우씨 ...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의 맛을 판별한다. 술을 못마시는 사람도 맛을 판별할 줄 알까?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런 이들은 단지 맛을 감각으로 느낄 뿐이었다. 누구나 홍차의 맛이 씁쓸한 것쯤은 한모금만으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나는 술의 맛을 거의 판별 못한다. 일부 술을 제외하고는 전부 동일한 쓴 맛으로 접수된다. 물론 향(냄새)은 느끼지만 맛과는 별개 아닌가? 꼬냑만 하더라도 그 은은한 향은 좋지만 맛은 쓰다.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입에 쓰면 그냥 입에 쓴 것일 뿐이다. 그리고 난 술의 쓴 맛은 아직도 즐길 줄 모른다.

술은 두뇌의 신경계를 자극한다. 그러기에 별과 해가 함께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입술이 반딱반딱 보이는 거겠지. 두뇌의 그 부분이 약한 이는 두뇌로 입력되는 정보가 더 이상 접수되지 못하는 현상, 즉 필름이 끊기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나는 두뇌의 그 부분이 너무 강하다. 흔히들 술 기운에 빌린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 못한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심리적인 상태의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여자를 꼬옥 껴안아주거나 키스 하고 싶기는 하지만, 그 마저도 잘 억누른다. 물론 꼭 술만이 아니라 중독성 있는 모든 것에 강한 내성을 보인다. 담배와 마약류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커피를 비롯한 중독성이 있는 것들을 장기간 다량 복용해도 중독 현상은 없었다. 내가 단언하는게 아니라 주변에서 인정하는 점이다. 물론 술이 맹물로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다. 술은 술이어서 정신과는 달리 몸은 반응한다. 마시면 몸이 나른해져서 피곤해지고 많이 마시면 먹은 것을 게워내야 한다.

당연히 술을 마실 일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술 사준다는 만남에는 귀찮아서 안나가곤 하지만 스파게티 사준다면 바로 머리 감고 빤쭈도 갈아입는다.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에게 깔끔한 모습은 예의다.

술 < 오렌지 주스 <= 사탕, 초콜릿 < 키스. 설명을 하자면 키스는 혀와(???????) 두뇌 모두를 크게 자극하고, 오렌지 주스는 두뇌는 약간 자극, 혀는 크게 자극한다. 기왕이면 오렌지 선업이나 아침에 주스 오렌지가 좋다. 술은 아무 것도 자극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화 가치로 봤을 때 술은 내게 있어서 가치가 대단히 떨어진다.

재밌는 점은 술과 키스의 관계에 있다. 서로 맨 끝에 자리 잡고 앉아 힘 겨루는 구도에 있는 술과 키스가 함께 했을 때 서로에게 힘이 가미된다는 점이다. 오해 하지 말자. 술을 먹여서 여자와 키스를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인과 술 한 잔하고 키스를 하면 키스가 무척 강렬했다. 코미디의 한 장면이다. 침 질질, 후루룹. 쪽쪽쩝접, 흐으으으읍~ (숨 차서 숨 쉬는 소리). 완전히 잡아먹을 듯한 태세가 된다. 아. 너무 얘기가 상세해진다. 이정도로 하자. 요는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게 사회 생활하는데 좋겠다고. 맞다. 술 자리에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서 나는 진 적 없이 언제나 살아남은 승리자였다. 술 기운에 휘말려 어리석은 판단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보면 과연 술에 취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내 주량은 소주 반 병에서 한 병이었다. 이 정도 양이 들어오면 내가 무의식 중에 행하는 행동들이 있다. 우선 물을 줄기차게 마시기 시작한다. 한 시간동안 거의 1리터를 마신다. 안주를 많이 먹는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애교를 떨거나 말로 현혹하여 안주를 시켜낸다. 그리고 대화의 화제거리를 하나 던져준 뒤 난 그 대가로 안주를 열심히 집중해서 먹는다. 물을 많이 마시기에 당연히 화장실에 자주 간다. 주량 정도의 술을 마시면 나는 무의식 중에 술을 해독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사실은 그게 술에 취한 행동 아니냐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자기 집은 기가 막히게 찾아들어가는 사람들은 많다. 그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일까 술에 깬 것일까? (별 상관 없는 말 같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술과 관련한 교육을 받아왔다. 술을 먹지 말아야겠다는, 먹어도 취하지 말아야겠다는 살아있는 교육이었다. 이론이 아닌 현실로서의 교육. 말을 어설프게 구사하는 꼬맹이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다. 배웠으면 써먹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나는 술못즐김㈜에 입사하기 위한 술맛못느낌 자격증과 술안취함 자격증을 획득했다. 사회에서는 쓸만하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에 있어서는 좋은 건 아니다.

나는 놀이 수단 혹은 방법 하나를 즐길 권리가 없다. 술에 취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의 판단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술에 취한다는 놀이를 한 번이라도 즐길 권리 조차 누리지 못한다. 올해로(2004년 기준) 32살이 되신 애주가 둘째 형님이 말씀하신다(의형제로서 난 막내다). 술을 즐길 줄 모르는 점은 불쌍하다고. 동의했다. 나는 즐길 수단 중 술을 즐기는 것은 혀 끝조차 대보지 못하였다.

뭐, 옵존님의 낭군님, 길동신랑님 말씀대로 술 말고도 즐길 만한 건 많다. 술을 즐길 줄 몰라도 술자리를 즐기지 않은가! 내가 슬픈 것은, 내가 불쾌한 것은, 내가 기분 좋지 못한 것은 술을 즐길 기회의 박탈이다. 손을 갖다 대면 화상 입을 것을 알면서도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 뚝배기가 지금 뜨거운지 미지근한지 궁금해하는데, 「 손 닿으면 다쳐 」 라며 손도 못대게 두 팔을 꽁꽁 묶어버린 것은 심히 즐겁지 않다. 그 두 팔을 묶는 이가 나 자신이라면 더욱 더.

이 글은 옵존님의 나 하곤 안맞는 문화 코드에 대한 트랙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