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정가제, 그 놀라운 뻘짓거리

2003년.
정부는 새우깡과 신라면 정책을 도서 시장 경제에 도입하였다. 온라인 서점들이 출혈 할인을 통해 책을 팔아대자 오프라인 서점들이 피똥과 피오줌을 싼다고 압박을 가하고, 얼마 후 2003년부터는 발매 1년 미만의 책의 할인은 10% 이상 할 수 없다며 도서정가제라는 못을 박은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발표된 보고서에서 정부의 도서정가제는 사실상 아무런 효과가 없는 삽질이었다는 내용을 다뤘다.

새우깡은 비록 기호 식품이지만 범국민적이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멋대로 가격을 올리거나 낮추지 못하도록 정부가 가격을 조정한다. 그때문에 새우깡처럼 범국민적인 기호 식품은(당연히 담배는 예외다) 가격 상승폭이 다른 것들에 비해 크지 않다. 좀 더 복잡한 용어를 사용하여 꼬아 쓰자면 새우깡은 통계청에서 실물 경제 파악 자료인 물가 지수 품목으로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새우깡 가격의 인상은 곧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정부가 가격에 관여한다.

많은 온라인 서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서정가제(정찰제)를 시행한 정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삽질했다는 말을 듣자 발끈했다. 요즘 불경기라 책이 안팔리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라며 어깨 으쓱하는 모습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변명은 아니다.

새우깡과는 다른 경우이긴 하다만 정부는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시장에 뛰어들어 괜한 애들 겁주고 압박했다. 애초 도서정가제는 각본 뻔한 드라마였지만 정부는 도서정가제를 강행했다. 대체 어떤 점이 각본 뻔한 드라마였을까? 오프라인이 온라인 서점의 조폭같은 할인 마케팅 때문에 죽겠다고 울부짖을 때, 온라인 서점들 역시 제 살 깎아먹기식의 할인 경쟁으로 인한 적자 누적이라는 염증이 곪아가는 질병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와우북이 국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온라인 서점, yes24 에 인수 합병 되면서 엄청난 투자 유치를 근간으로 한 제 살 깎기식의 할인의 한계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당시로서는 근미래의 국내 시장이 꽁꽁 얼 것이라는 우려가 잔뜩 나오던 시기였다. 과연 우려대로 지금의 시장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꽁꽁 얼어있다. 정부가 도서정가제라는 각본 뻔한 삽질을 하지 않았어도 온라인 서점은 제 다리에 걸려 넘어질 차례였다. 만일 정부가 시장 원리/논리를 그대로 따랐다면 지금쯤 유명 온라인 서점 몇 개 쓰려지면서 수익 강화를 위해 자연스레 할인율을 낮추거나 무모한 금액의 적립금을 낮추어 적자의 폭을 낮추기 위해 노력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아사 직전의 온라인 서점은 당장 구매율은 떨어졌지만 수익율은 오히려 괜찮아졌고, 이를 힘으로 할인 폭 대신 적립금을 주는 등의 각종 편법을 동원하여 사실상의 10% 이상의 할인을 해주고 있다. 즉 오프라인은 나아진게 전혀 없다. 온라인 서점? 당장은 살 만 하겠지만 정부가 시장을 엉망 진창으로 만들어둔 덕분에 혼란에 빠진 채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국민 대 사기극인 국민연금제도에 이어 도서정가제라는 싹수부터 누런 나무를 심은 정부. 시장이 불경기라 그렇다는 변명도 한계가 있다. 민간 차원에서 도서 시장은 올 해 중으로 개편될 수 있었음에도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으로 도서 시장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개편과 발전적인 경쟁은 기약없는 미래로 연기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책의 질 엄청 좋다. 간혹 원서를 사보면 종이 질부터가 엄청 차이난다. 우리나라 책들은 볼 때 눈도 안아프고, 내구성도 강한 편이다. 다만 모든 책의 질이 이렇게 좋을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두고 두고 보는 책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런 경우 종이 질을 낮추어 원가를 낮춘 저가형 책을 내는 식으로 출판 업계는 여러 방편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업체들이 이런 다른 길을 찾도록 해야 했다. 이런 류로 머리를 싸매고 골똘히 고민하여 문화를(온라인) 따라가지 못하는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도서)의 체제, 즉 시장이 차츰 차츰 문화에 발 맞추어 변화시키도록 정부는 유도만 했어야 했다. 그것이 도서 시장의 예견된 불황을 타개해 나갈 길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점이 독/과점 업체인가? 온라인 서점들의 경쟁이었다. 그리고 그 출혈 경쟁의 대가로 하나 둘씩 지쳐 쓰러져 자연스럽게 시장이 개편되려 했다. 그런데 정부는 어째서 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정책을 정착시켰는가. 단지 몇 개월 연구해서 만들어낸 것이 도서정가제인가?

우리나라 정부. 아직 급변하는 문화와 기술을 이해 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정부는 정말 혀가 내둘러질만큼 무식한 정책을 용감하게 우격 다짐으로 강행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틀리다. 정부의 무식한 우격 다짐은 금방 세상에 알려지며, 또한 60~80년대의 사고 방식으로 판단할만큼 느리게 움직이는 세상도 아니다.

최근에는 지난 1999~2000년에 재미 톡톡히 봤던 벤처 붐을 다시 일으키려고 언론 플레이를 하던데, 그딴 사기극 벌이지 말고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둘 다 굶겨 죽이는 도서 정가제부터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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