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곳에의 승부욕

사람이 살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알게 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게의 경우 사람들은 그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즉 자기 자신을 모른다. 아침형 인간이 돼라, 하루에 뽀뽀는 오십 번만 해라, 하루에 물을 2리터 마셔라 등등의 자기 관리(?)를 위한 명령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이 그 무엇보다 힘든 것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내가 이렇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말로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어린 투정. 내 속의 페르조나(persona),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 자아(ego), 그림자 등이 아니더라도 나의 껍데기나 외형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나는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종종 자문하는 요즈음 이전에는 몰랐던 나의 면면들을 알게 되어 흥미로움을 갖고 있다. 참 흥미로운 인간이다. (음?)

그런 면면들 중에 내가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은 사소한 곳에서 불타오르는 승부욕이다. 나는 비교적 포기도 잘 하는 편이고 유순하게 잘 따르는 성격인 줄 알았다. 어릴 적에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는 경험적 근거의 유추인데,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어디 늘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있을까. 아무리 사람이 변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한다고 해도 실은 보이지 않는 곳은 변했을 것이다. 하다못해 똥꼬의 주름이라도 하나 더 생겼을지 모르지. 나는 단순히 똥꼬의 주름이 더 생긴 정도가 아닌 모양이다. 요즘 승부를 보는 곳에서는 나도 의외라 생각하는 승부욕, 어떤 면에서는 집착이 보이곤 한다.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 중에 스타크래프트가 있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게임은 머리 아파서 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빠져있는 복잡한 게임이다. 나는 다분히 단순한 게임을 좋아하는데, 단순함이 꼭 총을 쏴서 적 죽이거나 혹은 스포츠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게는 그것도 복잡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단순한 게임은 동전 넣으면 정해진 횟수만큼 펀치를 치거나 축구공을 뻥 차서 점수를 얻는 원초적인 게임을 말한다. 이러한 "단순함에 대한 평가 기준"이 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내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라~ 하는 현상은 갓난아기에게 깨끗함이 다르다며 여성의 깨끗함과 부드러움을 권하는 손바닥 만한 날개형의 어떤 물건을 입히는 것과 가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아기에게는 생리대가 아닌 기저귀가 어울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기가 생리대를 탐하는 이 기이한 현상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 친구 J군은 나를 통해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했다. 98년이었을텐데 내게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게임이라 친구에게 해보라고 던져준 것이다. 그리고 99년도에 그 녀석의 대학교에 놀러가서 근처 pc방에서 나는 녀석과 테란 대 테란전을 하였고, scv 와 마린만 뽑다가 자원이 없어 굶어죽었다. 그냥 진것도 아닌 초반에 녀석의 벙커 러쉬에 입구를 점령당한 채 입구 밖은 구경도 못해보고 진 것이다. 그때 대단히 약이 올랐고, 그 이후로 나는 스타크래프트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녀석이 나를 컴퓨터 취급하며 갖고 놀던 시기를 거쳐 지금은 내가 녀석을 압도적인 승률로 이기고 있다. 나 때문인지 녀석은 한때 본 종족인 테란을 버리고 프로토스로 전향을 하려 했지만 결국 다시 테란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싶다.

집착 혹은 승부욕이라는 묘하게 공격적인 느낌의 단어의 사용으로 다소 이상한 분위기를 제공할 수도 있는데, 나의 집착과 승부욕에는 노력이 제외되어 있다. 별도 구매인 셈이다. 단지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2~3시간 동안 뒤척이는 정도이다. 꿈에서 졌던 게임의 내용이 생생히 재방송되고, 나는 주인공이 아닌 재방송 캐스터가 되어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이러했으니까 꼭 못 이길만한 상대가 아니다 등의 심리적 훈련도 겸해진다. 현대 스포츠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훈련 명을 붙일 만 하다.

그렇게 5년에 걸쳐 나는 띄엄 띄엄 스타크래프트를 즐겨(?) 왔다. 때로는 70분 동안 손가락이 쥐가 번식을 할 만큼 장시간 게임을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억울하게 얻은 패배 덕분에 밤에 5시간 동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는 바람에 몸무게를 희생당하기도 했다. 아마 5년간 해온 게임 횟수를 모두 합치면 1000게임 정도 될 것이다. (내 배틀넷 아이디 전적이 400전이 조금 넘으니까) 고작 1000게임 한 내가 수천 수만 게임을 해온 사람들과 비등한 실력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저런 심리적인 집착과 승부욕이 제법 효과가 크고,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과학에서 저런 훈련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의 가치가 점점 올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게임에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은 이런 나의 모습에 고작 게임인데 지면 어때라고 너무나 가벼이 말을 하곤 한다. 이들은 꽤 다수이며 나라는 개인보다는 다수의 의견이 옳다고 가정했을 때, 나의 이런 승부에 대한 집착은 사소한 곳에 대한 집착 혹은 승부욕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객관적으로 봐도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내 생활에서 취미의 일부인 지극히 사소한 부분이긴 하다. 그런 사소한 것에 지기 싫어하고, 지기 싫은데도 져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모습에 나는 요즘 흥미로움을 느낀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아니 꼭 사회적인 인간이 아닌 지극히 비사회/비연계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사소한 것에는 승부욕을 버리고 사소하지 않은 것에 한 방의 승부욕을 보이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지극히 소모적인 말싸움 같은 것은 져주고, 진정 실속이 있는 상황과 환경이 엮인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 멋져보이며 멋지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을까? 내 머그잔에 담긴 코코아에서 거품 하나가 통~ 터지며 비웃고 있다.

전투에서 백 번 이겨도 전쟁에서 이겨야 진정으로 이긴 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말 자체도 상황에 따르겠지만, 나는 그동안 너무 전투에 매달려 얽매이듯 살아온 것은 아닐까. 15시의(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각이 15시 30분쯤이었다) 나른한 오후를 단상으로 즐기며, 가볍게 쓰려 했던 다짐은 또다시 무너진 채 장문이 되어가는 글을 주체할 수 있는 지금 서둘러 마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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