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를 관리하기 위한 암호
10 Mar 2004내가 관리하는 암호는 4~5개이다. 물론 원치 않게, 혹은 의도하지 않게 덩달아 외우고 있는 암호들까지 합치면 10개 정도. 이 글을 기회로 내 암호(의 일부를)를 공개해본다.
- 4********* (2003년부터 사용)</p>
- d***** (1999년부터 사용)
- 1*** (2002년부터 사용)
- a****** (2000년부터 사용)
- 1*** (2001년부터 사용)</ul>
사용 빈도 순이다.
세번째에 위치한 1로 시작하는 암호는 아이디 해킹 당해도 전혀 무방한 곳에 사용한다. 얼마 전까지는 d로 시작하는 6자리 암호를 주로 사용했지만 1년 전부터 차근 차근 4로 시작하는 맨 위의 암호로 교체하고 있다. 마지막에 위치한 1로 시작하는 암호는 내 핸드폰 잠금 번호. 내 생일이 10월 23일이라 1023 이라 생각하는 이가 있는데 내가 사용하는 암호나 아이디에는 1023 이라는 4자리 숫자가 쓰인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기억력 감퇴로 지금은 저렇게 사용하고 있지만(그나마도 맨 위의 세 개만 사용) 예전에는 30개에 가까운 암호가 존재했다. 여기서 예전이라 함은 5년 전, 그러니까 1999년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크로스 어쩌고에 의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세기말에 정체성의 혼란과 현실에 대한 먹먹함에 아이디마다 암호를 다르게 했나보다.
그 당시는 기억력이 좋았다. 그래서 30개 가량의 암호를 모두 기억 했었다. 사실은 ..
<< 특정 암호 + 숫자 >> 의 형태였지만, 어쨌건 30개 가량의 암호를 기억한다는 점에서는 참 놀랍다. 내 자신이 놀라웁고 기특했으며 또한 기뻤다. 물론 그 놀라웁고 기특했으며 기쁜 이성적 평가와 감정은 곧 깨졌다. 암호 30개는 알아도 아주 단순하고 중요한 사실은 몰랐으니, 각 암호가 어떤 아이디에 해당되는지 몰랐었던 것이다. (대체 난 어디까지 단순한거야!) 당시 사용하던 영문 아이디는 총 4개였는데 이론적으로 수 백가지(120)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인간이 어디까지 단순해지는 지 보여주는 경우라 평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hwp 문서 파일 하나를 만들어서 다음과 같이 했다.
사이트주소
아이디
비밀번호바로 기록이다. 두뇌의 저장 능력을 신임할 수 없다면 좀 더 저장 능력이 좋은 도구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 문서를 누가 보면 곤란하기 때문에(신용 카드나 심지어 통장조차 없었지만) 나는 이 문서에도 암호를 걸었다. 저 위의 암호 목록 중 d로 시작하는 6자리 암호가 그것. 암호를 관리하기 위해 암호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뭐, 지금은 전혀 기억해두지도 기록해두지도 않는다. IE Toy 라는 유용한 유틸리티 프로그램이 내 암호들을 관리해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암호를 바꿔주기도 한다. 어차피 나는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까.
암호 변경 얘기가 나와서 그쪽 이야기도 해야 겠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암호에 꽤 민감했다. (만난지 오래되서 문장이 과거형이다) 만일 주변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암호에 관심을 가진다 싶으면 바로 암호를 바꾸었다. 아마 특정 암호 몇 개를 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변경하던 듯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핸드폰을 구경하다 짖궂움이 발동하여 그의 핸드폰 암호를 알아내기를 시도했다. 총 7시간 만이었던가. 며칠에 걸쳐 수시로 그의 핸드폰을 빌려서 4자리의 숫자를 무작위로 눌러댔던 시간의 총합이. 마침내 핸드폰 액정의 자물쇠 그림이 사라지고 관리자 메뉴가 눈 앞에 나열되었다. 이를 오짜 이를 오짜. 뎅구르르르르. 오짜긴. 암호 변경이지. 암호를 바꿔주었다. 당시 내 핸드폰 비밀 번호였던 1110 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 번호를 누르던 그의 미간이 급격한 속도로 좁혀졌다. 다시 시도하는 눈치. 그의 아구가 살짝 볼록해지는 걸 보니 이를 앙~ 다무는 듯 싶다. 잠시 후 그는 신속한 자세로 내 뒤로 달려들어 목을 졸라댔다. 암호를 불라는 협박과 함께. 협박과 함께 온 입 냄새도 같이. 나는 너스레를 떨며 비밀 번호를 말해주었고, 그는 잠시 풀어주는가 싶더니 다시 목을 졸랐다. 아니랜다. 오잉? 침이 꼴깍 넘어가며 1110 을 눌러봤지만 자물쇠 그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와 나의 30cm 남짓한 공간에 묘한 기운이 흘렀다.
그때 도저히 암호가 기억 안나서 결국 온라인상에서 그의 핸드폰 모델명에 맞는 핸드폰 초기화 방법을 찾아서 사건을 마무리 했었다. 아마도 1110 을 누르다가 좁은 번호판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져 다른 번호를 눌렀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어렵게 핸드폰 암호 알아내느라 열과 성을 발휘하는 것보다 핸드폰 초기화가 더 쉽다는 걸 알았을텐데... 이런 나의 단순함이 살짝 부끄러워 이 문장 글자는 허옇게)
그 뒤로 나는 새로운 핸드폰 비밀 번호를 만들었고 (1로 시작하는 4자리 암호) 그 비밀 번호는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