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07 Mar 2004-- 아리스토텔레스
잠수 기간 동안 지난 날들의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지냈는가 하면 지난 날들의 일상과 다를 바 있게 지내기도 했다. 주된 생활 패턴은 회사 생활이었지만, 시계 속 바퀴처럼 항상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변화를 주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 14일자로 나는 공식적으로 실패자가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 실패자가 될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이 일어나긴 했지만 더이상 어떠한 여지를 가질 수 없게 공인 판정 받은 실패로 나의 도전은 일단락 되었다. 2000년부터 매달린 일이었고 많은 경험을 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하나의 일에 매달리면서 받게 되는 생각들에는 희열, 보람, 좌절, 슬픔 등이 있지만, 일의 성패와는 무관한 것은 아마도 "지침"이 아닐까 싶다. 지침. 지치다. 성공을 해도 몸이건 마음이건 지치고, 실패를 해도 지치고. 나 역시 성패를 떠나서 20대의 열정을 전부 걸었다는 점에서 지쳐버렸다. 아무 일 없다는 듯 흔들림 없이 초연히 서있지만, 마음은 이미 무너져서 아무 소리도 못듣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 그것은 심장을 움직이고 근육을 일으켜 뼈를 움직일 기력을 3년간 소비함으로서 새하얗게 타버린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재충전을 해야 했지만 그럴 여유가 내게는 마땅치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극도로 건조한 스펀지가 되어 충전을 하고 싶었지만 내 상황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혼란, 다시 혼란. 그제사 나는 20대 청년의 인생 고민과 방황에 외로움과 고독함에 치를 떨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20대 중반에 접어들어 처음으로.
지난 한달 가까이 되는 기간은 재충전의 좋은 시간이었다. 너무나 바쁘고 할 것이 많은 상태에서 오히려 시간의 여유를 만끽하였다. 집 안에서 뒹굴거리며 등에 바닥 장판의 무늬를 새기며 물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물 한잔에서는 청량감을 느낄 수 없었다. 뛰고 또 뛰어 몸 안의 수분을 염분과 함께 땀으로 배출했을 때의 물 한 모금은 입안을 통해 들어와 식도를 거쳐 위장에서 몸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닌 피부로 수분을 흡수하여 심장에 이르는 상쾌함이다. 극도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통해 비로서 나는 열심히 뛰다가 물 한잔 찾아 마시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었다. 쉽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책의 글자를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책들을 하나 하나 거치며 비로서 나는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었다. 비록 10권 정도 밖에 못읽었지만 재밌는 책도 읽었고 무거운 책도 있었고, 삶의 방향을 잡아준 책도 있었다. 게중에는 고교 시절의 청소년 권장 도서도 있었다. 그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 이게 10대에게 권장하는 책이라고? 솔직히 나는 10대 때 이런 고민과 혼란을 겪지 않았는데? 」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그리고 책 역시 읽는 상황에 따라 전달되는 바가 다르다. 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권장 도서이지만, 나는 문학보다 영화를 더 낫게 평가한다. 나는 그동안 성공을 향해 온 열정을 다 바쳐 앞만 보고 달렸다. 내게 혼란과 외로움, 고독함을 느낄 여유의 권리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지금의 나는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책의 내용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책을 읽는다.
얼마 전에 휴가를 받았다. 거의 한달 내내 철야를 했었다. 일을 많이 해서 힘들기 보다는 주야가 뒤바뀌는데서 오는 생리적인 변화. 휴가는 달콤했다. 휴가 동안 공사장 막일을 하루 했었다. 어차피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잔심부름을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추위와 단순한 일을 하는 데서 느끼는 피곤함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무언가를 느끼었지만 깨닫지는 못했다. 다음에 휴가를 받으면 또 해봐야 겠다. 육체 노동을 통해 정신의 깨달음을 얻는다라. 오오 스코트 니어링, 헬렌 니어링 만세. 역시 당신들은 멋진 분들입니다!
애초 잠수의 목적대로 이제 내가 나아갈 길의 출입문을 찾아내었고, 계획 수립에 있어 방향을 정하고 있다. 또한 책 읽는 법을 배웠고, 표현법을 익혀하고 있으며 나의 정체성을 잡아나갈 안목을 찾게 되었다. 지난 한달 가까이 되는 시간을 나름대로 잘 보냈다는 판단이 내려지어 오랜만에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다.
이제 진정한 삶의 목표를 수립하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가 되었다.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나를 비춰보기 위한 표현을 하고, 표출하기 위함이 아닌 더 나은 놈이 되기 위한 자기 계발을 하는 것. 그곳을 향하는 발걸음을 20대 중반에 시작하며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