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애인이 없는 이유
06 Apr 2004"애인 있죠?"
간혹 듣는 말이다. 애인이 있게 생긴 사람의 외형을 갖고 있는 것일까?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매력을 느낄 그런 외모도 아니다. 물론 코가 실제로 석자이거나 눈썹이 ㅡ 자로 쫘악 하나로 붙어있다거나 눈에서 광선이 나가는 식의 특출난 개성도 없다. 말 그대로 평범하다. 대면한지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할 때 말투 일부와 외면에 평가가 좌지 우지 됨을 감안하면 내게 애인이 있을만한 특이점이 없음에도 종종 그렇게 묻는 현상은 흥미롭다.
물론 선의적으로 "당신, 애인 없죠?" 라고 물어볼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거의라는 제한적 표현을 쓴 것은 살다보니 별의 별 인간을 다 만나기 때문이고, 가끔은 그 별의별 인간이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주변에서는 초면에 상대방에게 "당신, 애인 없죠?" 라고 질문을 할 독특한 사람은 없다. 즉 "애인 있죠?" 라는 말은 별 생각 없이 물어본 말일 수도 있다.
"이상하네 있을 거 같은데. 정말 없어요?"
옳거니. 이런 재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아무 생각 없이 인사성 질문을 한 것이 아님이 판명됐다. 이로서 첫 번째 단락에 나오는 나의 평범한 외모에 대한 설명은 허사가 되지는 않았다. 만세.
나는 애인이 없다. 물론 애인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적은 없다. 3년을 사귄 애인도 있고, 며칠 혹은 몇 주동안 사귀었던 이도 있다. 공교롭게도 나의 이상 오묘 괴팍한 성격과 사고 방식 덕분에 그네들은 나를 떠나갔다. 여기서 내게 애인이 없는 이유 그 첫 번째가 나왔을까? 아니다. 난 나보다 더 이상한 성격의 사람도 잘 조화하며 사는 광경을 보았다. 또한 나도 나 나름대로 한때 조화하며 사랑이라는 것을 교감해본 적이 있었다. 즉 헤어짐의 원인인 나라는 존재 자체는 상황에 따라 조화가 되기도 하고 부조화가 되는 것이지, 애초에 애인이 없는 상황의 시발점은 못된다. 그런 관점에서 내게 애인이 없는 이유를 과거형의 문장에서 찾기 보다는 현재형, 혹은 현재 진행형에서 찾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 다른 이는 무난하지 않을지 몰라도 글을 타이핑하는 내게는 무난하다. 이 단락에 대해 더이상 할 말이 없는고로...
애인이 없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알고보면 단순하다. 내게 여자가 따르지 않는다. 인기가 없다. 밖에 나다니지 않거나 혼자 다니기를 좋아해서 새로운 인연의 여자를 만날 기회도 적지만, 어쩌다 그러한 자리가 마련되어도 그네들은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확신할 수 없다. 과거에는 그래도 몇 몇 눈 먼 아가씨가 나를 좋아라~ 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짚신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짚신도 짝이 있다잖은가? 그러나 나는 그런 므흣한(♡) 사람 관계에 대한 눈치가 지독히도 아둔하다. 나 스스로 느낄 정도라면 내 주변 사람들은 오죽할까. 나는 인기도 없고 설령 아주 미약한 인기의 씨앗이 싹터도 그것을 전혀 보지 못하고 밟고 지나가는 나의 놀라운 등잔 밑의 촛불급 눈치로 인기 없음을 진행 중이다.
나는 인연주의자다.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라는 말은 좋아하지만 믿지는 않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는 인연이 있고, 아무리 도망가도 맺어지는 인연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한 믿음이 여자와의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해주는데 방해가 되는게 아닐까 싶다. 책이나 영화, 언론 매체 등을 통해 간접 경험으로 알고 있는 문화권들에서는 대게 용기 있는 (남)자가 여자를 얻는다. 그것도 미녀로. 나는 여자에 대한 용기도 부족하고 딱히 키울 생각도 없다. 용기가 없어 머뭇거려도 그녀가 나의 인연이고 내가 그녀의 인연이라면 어떡해서든 맺어질 것이고, 아무리 용기를 내어 성난 소처럼 달려들어도 인연이 아니면 커다란 바위에 머리 쳐박고 눈물 찍찍 흘리게 되어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을 나는 아직 깰 생각이 없고 깰 근거도 없다. 그래서 내가 운명이라 느낄 만한 인연이라 느낄 여자가 아닌 이상 내가 먼저 교제 제안(프로포즈)를 걸지 않는다. 물론 인연주의니 운명이니를 떠나서 그냥 좋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나 당신 좋아" 손가락으로 얼굴 콕~ 하고 끝내는 경우이거나 그럴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아직 인연이니 운명이니 떠들만한 여자를 만나지 못했고, 그러한 이유로 나는 내가 먼저 교제 제안을 하지 않아왔다. 물론 여자쪽에서 먼저 한다면 진지하게 생각은 하지만. (내 아둔한 눈치때문에 내가 인연을 못알아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랑을 사귀고 만드는 것에 어느 정도 부담감을 갖고 있어 적극성을 갖지 않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점도 애인이 생기지 않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다. 확실히 해두자. 나는 여자를 좋아한다. 분명 좋아한다. 하지만 내 여자로 만다는 것과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별개이다. 게임이 좋다고 게임과 사귀어 빠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적절하지 못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개념적으로는 같은 상황이다. 이런 나를 보며 뭘 믿고 그렇게 비싸게 구냐는 말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뭘 믿는 구석이 있다. 인연주의..는 아니고, 애인을 사귀면 사귀는 것이고 못사귀면 못사귄다는 마음가짐, 결혼을 하면 좋고(대단히 하고 싶다) 배우자가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해도 상관 없다(체념). 이런 집착하지 않는 확고한 결의(?)를 믿기에 거만 도도하게 여자와의 새로운 인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재수 없다.
많은 사랑을 해본 것은 아니다. 3번의 사랑을 했고 각 각의 사랑에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양의 교훈을 섭취했다. 짧은 세월을 살아왔지만 나름대로 진한 삶의 체험 현장을 경험했고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은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이득이라는 것이다. 마음을 열지 않음으로서 잃게 되는 것도 분명 너무 많지만 장기적으로 종합적으로 봤을 때는 적지만 분명 이익이었다.
사랑. 그것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형태 중 하나이다. 사랑은 부채이다. 이성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 것도 용서가 되는, 하지만 사랑이라는 교류 관계가 끝나면 그러한 용서들은 곧바로 형벌로 변신한다. 대출 받아서 쓸 때는 신나는데 쓸 수 있는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상환 기간이 되면 똥꼬 털이 잔뜩 긴장하는 것과 너무나 흡사해서, 너무나 익숙해서 쓰디쓴 피맛을 느끼며 침을 삼키게 된다.
대출을 받을 때 섣불리 마음을 열었다가는 협상의 주도권을 뺏기어 바보가 될 수 있다. 이런 법칙은 내가 있고 너, 그, 혹은 그녀가 함께 존재하는 한 어디에서든 통용되는 광경을 많이 봐왔고, 많이 경험했다. 물론 마음을 열어 진심이 전달되어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당첨을 바라며 살던 4년의 대가는 내 눈과 팔과 발을 절단하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 내 신체는 멀쩡하다)
변명. 맞다. 내가 다시 마음을 닫는 것에 대한 변명이다. 아니, 원인 그 자체인 나라는 존재에 대한 변명이라고 해두자. 아니다 아냐. 그냥 변명이 아니라 거짓말이라고 하자. 내 말이 변명이건 거짓말이건 나는 체험 삶의 현장의 진액을 좀 맛보았고, 그 맛을 통해 깨달은 것은 코를 막고 마시자는 것이다. 내가 마음을 닫고 사회에서 살아가며 하나 가득 미소를 짓듯이.
"애인 있죠?"
애인 없다. 눈 가리개를 한 채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비 하나가 내게 다가오기 전에는 애인 관계라는 상황은 요원할 것이다. 가끔은 내가 눈 가리개를 해주려고 아둥 바둥 설득을 시도할 지도 모른다. 아직 내 인연 안테나는 이름이 "삼"으로 끝나는 우리 나라 전(前) 대통령 수준만큼 성능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외롭지 않고 슬프지도 않으며 개의치도 않는다. 예전에는 대단히 아무러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나는 타의적으로는 인기가 없고 자의적으로는 애인이 생기기 위한 적극성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자의와 타의의 조합의 결과로 나는 애인이 없는 것이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덧붙여 .. :
그래도 내 인연의 아가씨는 날 외면하면...
대략 아무렇다.
대략 난감하다.
대략 낭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