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 경험기
08 Apr 2004난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의 손은 열심히 키보드를 누르고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지만 손가락은 제 짝을 누가 채가기라도 하는냥 쫓기듯 적절한 키를 찾아내어 분주히 움직였다. 간혹 한쪽 손은 키보드에서 벗어나 둔탁하게 생긴 마우스로 향했고 검지 손가락은 회색의 마우스 휠을 이리 저리 굴리기도 했다.
난 코를 막고 있었다. 탁하고 묵직한 공기를 거부하듯 코는 공기를 흡입하지 하지 않고 키보드 위에서 난무를 추듯 움직이는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뭔가 심장을 깊이 찌르며 파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운 무언가 침투하여 심장의 헐떡임을 방해하였다. 심장 속에서 마악 정화된 피는 역류하는 듯 싶더니 곧 심장을 침입해온 낯선 감촉의 물질을 휘감듯 뿜어져 나갔다. 무얼까. 나는 판단을 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러나 나의 두뇌가 그것이 무엇인지 보고 판단하기도 전에 눈 앞이 캄캄해지고 사고가 멈추고 있었다. 두뇌에 혈액 공급이 멈춘 것이다. 인체 속으로 접수되는 에너지의 25%를 홀로 소비하는 두뇌는 에너지를 싣고 오는 혈액이 갑작스레 줄어들고 마침내는 공급이 멈추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하던 일을 멈추었다.
나는 두뇌를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일까, 아니면 나라는 객체를 표현하는 정체성을 저장하고 있는 DNA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답을 못내렸기에 그것이 나의 두뇌이건 혹은 DNA이건 일단은 "나"라고 해두자. 육체의 모든 움직임은 멈추었지만 "나"는 미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생각, 사고, 판단. 그것은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죽어가는 느낌은 대단히 따뜻했다. 아니 꺼져가는 따뜻함이었다. 새까만 따뜻함이었다. 그 새까맣고 따뜻한 "죽어감"의 느낌이 강렬해질 때마다 그것은 점점 밝아졌다.
단백질과 수분. 내 몸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 두 성분은 나의 육체를 이루는데 많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내가 숨을 쉬고 살아있는 동안 그것은 따스함을 갖고 있다. 빛을 발하지는 못하여 외부의 빛을 반사하여 까맣고 어두운 존재에서 벗어나는 나약한 존재. 외부의 빛이 없으면 스스로를 보일 수 조차 없는 존재. 외부로부터 에너지원이 유입되지 않으면 서서히 식어가는 나약한 존재. 그것은 육체였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살아있음은 새까맣지 않고 어둡지 않으며 지속되는 따뜻함이지만 빛을 내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에너지를 통해 따스함을 만들어내었다. 진실한 그 자체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죽음은 새까맣고 어두우며 지속적으로 식어가지만 스스로 빛을 내고 스스로의 따뜻함을 죽여가는 너무나 원시적이고 원초적이며 순결하고 순수한 근본적인 존재였다. 그러한 다름은 형태로서의 다름일 뿐, 서로를 배척하는 다름이 아니었다. 죽음은 다른 형태의 연속이었다. 단백질과 수분, 그리고 빛이라는 외부의 존재에 의존하여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삶이라면, 외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를 인자하는 것은 죽음이다. 생명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고 표현하는 것이다. 네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살아 생전에는 이를 수 없는 먹먹한 목표이자 방향이었다. 예수, 혹은 부처는 살아 생전에 깨달음을 얻었다지만 사실은 조금은 부족한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죽음을 통해 부족한 자기 인지를 마쳤고, 그 숭고한 죽음을 통해 그들은 완전하고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살아 생전에 미처 생각도 하지 않았고 느끼지 못한 생각들을 죽음이라는 존재의 빛이 강렬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빛이 너무 강해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지기 직전에 최후의 깨달음과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 위대한 유산을 기록하여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이 "살아 생전의" 가장 아픈 후회이며 안타까움이었다. 그 후회감과 안타까움이 미처 다 피기도 전에 "나"는 죽음의 새까맣고 어두운 빛에 먹혀 사라졌다.
나는 죽었다. 심장을 꿰뚫리고 두뇌는 멈추었다. 두뇌 속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내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나는 그대로 죽은 것이다. 나의 움직임은 멈추었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고 코를 닫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나의 턱은 살짝 처진 채 침을 주룩 떨구었다. "나"가 죽음으로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의 상태가 되었다. 이제 나는 죽음의 형태로 연속해갔다.
그때였다.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분명 죽은 나의 육체 중 손과 팔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다시 분주히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었다. 미처 눈을 덮지 못한 눈꺼풀로 인해 모니터의 출력 화면이 눈에 건조하고 흑백의 느낌으로 반사되고 있었다. 수정체로 흡수되어 시신경을 통해 두뇌로 입력되지 못하고 안구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기계적으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정체성과 존재감 없이 분주히 움직였는데 그 움직임에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다. 감정도 없었다. 혼이 없었다. 그것은 "죽은" 움직임이었다.
눈물. 차가운 눈물. 하지만 손도 댈 수 없이 뜨거운 눈물. 색깔 없는 눈물. 하지만 너무나 파란 눈물. 그것이 죽음 속에서 연속해가고 있는 "나"의 존재의 어느 곳에서 한 방울 뿜어져 나왔다. 눈물이 말을 하였다. 살려줘, 나를 살려줘. 나는 살고 싶어. 죽음 속에 이렇게 사고하며 연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나는 살고 싶어. 꼭 살고 싶어. 누가 나를 살려줘. 누군가 내 심장에 박힌 저 물질을 뽑아내줘, 그리고 내 두뇌에 질문을 던져줘. 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계속 질문을 던져줘. 내 심장에 박힌 저것을 빼고 내 두뇌를 향해 질문을 던져줘. 그렇게 나를 살려줘. 공허한 메아리 하나. 둘, 그리고 셋.
나는 죽음으로 연속을 진행해가며 삶을 꿈꾸었다. 삶 속의 몽상가가 아닌 죽음 속의 몽상가가 되어 삶을 꿈꾸었다. 계속 삶을 꿈꾸었다. 시간조차 의미를 갖지 못하는 끝없는 연속의 연속인 죽음 속에서 "나"는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 삶을 꿈꾸었다.
삶일까? 무엇을 꿈을 꾸는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꿈이 연속을 진행해주는 것인지, 연속의 진행이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바로 그때였다. 시간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그 "때"라는 말이 내게 작은 혼란을 주었지만, 그 때는 내게 너무나 중요한 순간이기에 그 "때"라는 것이 어떤 때인지 더 파고들고 싶지 않다. 그 "그때"에 무언가 나를 깊이 찔러 뚫고 지나갔다. 느낄 수 있었다. 느껴진다. 피라는 수분이 존재할 리 만무했지만 피를 흘리는 고통을 느꼈다. 눈이 매웠다. 투명하고 맑은, 하지만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여 슬픈, 그런 눈물 방울 하나가 눈에서 방출되었다. 허어어어... 깊은 숨 하나가 기도를 타고 폐를 향해 날아갔다. 바스락 바스락 건조한 스펀지에 붉은 잉크가 눈꺼풀 닫고 여는 찰나의 순간에 흡수되듯이 폐는 반갑게 공기를 맞이하며 흡입하였다. 산소가 많지 않은 탁한 공기였지만 반갑게 맞이 하였다. 코에서 죽음의 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눈물을 방출한 눈에는 그제서야 모니터가 출력하는 화면의 내용이 반사되지 않고 시신경으로 흡수되었다.
헐떡 헐떡. 심장은 자신을 꿰뚫은 그것을 스스로 밀어내고는 대동맥으로 피를 강하게 밀어내기 시작했고 대정맥으로 검붉은 피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피는 빠른 속도로 몸을 돌기 시작했다. 두뇌에, 발에, 성기에, 두뇌에. 두뇌가 깨어났다. 두뇌는 방금 전 느꼈던 죽음의 경험을 으스스 떨쳐내버렸다. 그리고 환희에 가득 찼던 자기 인지와 깨달음을 서둘러 지워버렸다. 죽음의 대가로 얻은 깨달음이기에 삶의 대가로 얻고 깨달음을 지운 것이다. 피는 잠시 후 팔을 거쳐 손을 거쳐 손가락에 전해졌다. 손가락은 마침내 움직임이 멈추었다. 죽은 육체에서 바삐 움직였던 손가락이 육체가 살아나자 움직임을 멈추어버렸다. 나는 살아났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회사에서 나는 죽음의 애무를 받았다. 지금은 잠시 살아났지만 곧 나는 다시 죽을 것이다. 눈도 뜨지 못하고 코도 열지 못한 채 손가락만이 움직이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심장이 뚫리는 슬픈 아픔을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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