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그녀를 보았다.

1년만이었다. 좀 변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웃는 모습은 1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살이 빠진 듯한. 아니, 뺀 듯.

혼자 온 걸까? 그녀는 정통 혼례 중인 그녀의 직장 상사 모습을 보았다. 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결혼식의 주인공들을 본다. 형님, 형수님의 입꼬리가 인체의 어디까지 이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딘가로 가는 듯 했다. 어, 어, 아직 인사도 못했는데.

잠시 후 그녀는 되돌아왔다. 회사의 동료인지 애인인지 구분이 애매한 어떤 남자에게 다가가 아는 척하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정통 혼례의 과정을 보면서. 그들은 뒤를 돌아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다. 남자가 무어라하자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뒤를 돌아 경희궁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누군가 내 목을 졸랐다. 목을 졸랐는데 가슴이 아파왔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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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이 안좋은 걸까.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정말 "그녀"인지 아니면 전혀 관련 없는 제 3 자인지 혼란스러웠다. 잠깐, 잠깐. 그녀가 어떻게 생겼더라? 음. 키는 나보다 조금 작았고. 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길.

2004년 4월 17일 오후 1시에 경희궁에서 결혼식을 올린 주인공들은 지난 2003년 4월즈음 나에게 소개팅을 해주었다. 혼자 외로이 지내는 아우의 모습을 가여이 여긴 형님은 형수님의 직장에서 인기가 좋다는 아가씨를 소개해주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단 하루. 당일날 그 하루를 만나고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다. 만나기 전부터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설레임에 평소에는 즐겨듣지 않던 노래가 입가에서 흥얼거린 것도 그때부터였다.

있잖아 오늘 네게 사실대로 말을 할께 세상 누구보다 너를 좋아해
있잖아 오늘 네게 사실대로 말을 할께 세상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왜 그런 표정이니 내 말을 못믿니 내가 지금 장난치는것 같니
빨개진 내얼굴이 안보이니 콩닥콩닥 뛰는 내가슴이 느껴지지않니

됐어 말을 했어 오예 고백했어 근데 너 지금 귀에 머썼어?
야 지금 어디가 내 얘길 들어봐 내가 했던 얘기하나 안들렸나?...
안돼 오늘은 꼭 고백해야돼 이런 용기 아무때나 안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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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래퍼의 고백할꺼야 中 ..

단 한 번의 만남이었고 그녀와 나와의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하여 나에 대해 실망하고 후회했었다. 후회는 시간이나 타인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1여년만에 그녀인지 그녀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여성을 형님과 형수님의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그리고 5일이 지난 오늘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의 미소와 얼굴은 기억나지만 다시 길에서 만나면 알아보지 못할 거 같다. 그점이 오늘의 나를 싱숭 생숭한 기분으로 만든다.

싱숭생숭

싱숭―생숭[부사][하다형 형용사] 마음이 들떠서 갈팡질팡하는 모양.

- 출처 : 네이버 국어 사전 (두산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