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성과 박성준의 승부에 대한 잡담들

도대체 누가 임요환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터져나오던 때가 어느새 2~3년 전이 되었다. 2002년 늦가을, 신인 영웅 토스 박정석의 탄생과 함께 임요환은 절대 강자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자리에 오른 이는 이윤열이었다. 임요환의 전성기를 능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이던 이윤열의 모습도 어느새 1년 전이 되어가고 있다. 몇 달전 신인 최연성에게 압도 당한 이후 이윤열은 이제 까다롭지만 해볼만한 상대가 되었다.

제 4 의 종족이라고 불리우며 더이상 적수가 없다는 현재 최강의 프로게이머 최연성. 그가 며칠 전 신인 박성준 선수에게 일격을 당했다. 아직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기에는 보여줘야할 모습이 많은 최연성이기에 이번의 일격으로 무너졌다라고 할 수도 없지만, 어쨌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최연성 선수의 이번 패배는 상당한 파급을 퍼뜨리고 있다.

지난 주 금요일 질레트배 스타리그에서 최연성 선수의 패배는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이다.
최연성 하고 싶은대로 놔두면 이윤열보다 더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초반부터 최연성을 공격하여 흔들기는 쉽지 않다. 워낙 수비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방어 능력은 전성기의 임요환이나 이윤열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임요환, 이윤열 선수는 빠른 손을 활용한 유닛 컨트롤로 환상적인 방어를 보여준다. 최연성 선수는 그들만큼 빠르지 않은 손을 가졌기에 조금 방어가 힘들겠다 싶으면 바로 많은 양의 SCV 일꾼을 방어에 동원한다. 그의 SCV 동원 타이밍은 분명 다른 프로게이머에 비해 빠른 편이다. 그런 그의 방어에 날카롭디 날카로운 공격력을 지닌 이윤열과 강민도 이렇다할 이득을 챙기지 못하곤 했다. 그러나 박성준은 해냈다. 투신(鬪神)이라고 불릴 정도로 잘 싸우는 박성준은 방어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최연성 선수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제 1 경기에서 마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파이어뱃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박성준 선수의 엄청난 저글링 컨트롤이 부담되었다는 반증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저그가 공격을 하지 않는 타이밍에 적은 수의 유닛으로 공격을 하여 최연성 선수의 전략을 눈치채거나 유닛 이득을 봄으로 인해 최연성 선수가 초반부터 자신이 생각해온대로 하지 못하게 흔들었다.
두번째 큰 요인은 박성준 선수의 뛰어난 5경기 관리 능력이다. 박성준 선수는 1~4경기까지 내내 무모하리만치 초반 공격을 해왔다. 이에 따라 5경기, 최연성은 평소 그가 보여주던 초반의 압박 견제를 하지 않고 방어를 선택한다. 결국 저그와 테란의 경기에서 저그가 이기는 시나리오, 즉 저그의 이곳 저곳에 마구 펼쳐진 해처리를 테란이 어찌 막지 못하고 지는 모습대로 일방적으로 박성준 선수가 이기고 만다.
마지막 요인은 이제 최연성 선수의 경기 성향(style)이 어느 정도 분석 당했다는 것이다. 과거 임요환이 80% 라는 사기적인 승률을 기록했던 것은 그의 드랍쉽 견제와 방송 경기에서는 처음 보여주는 환상적인 컨트롤에 상대 선수가 말렸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플레이가 일반화되고 집중 분석 당하면서 그도 이제 임요환스러운 특별함이 더이상 강력함이 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윤열 선수의 집요하고 짜증나는 견제 공격에 이은 어마 어마하게 쌓인 병력(주로 탱크)을 막지 못하여 상대로 하여금 뭐 해보지도 못하고 지게 만드는 플레이도 그랬다. 이제 이윤열 선수의 경이로운 물량 생산 능력도 이제는 상급 프로게이머의 기본이 되었다. 이제 최연성의 기가 막히는 경기 운영도 분석된 것이 아닐까? 어떤 상황이건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유도해내는 경기 운영 방식이 이제는 어느 정도 분석된 것이다.

이번 최연성 선수의 패배에 대해 최연성 선수의 팬, 혹은 SKT T1의 팬들은 최연성 선수의 평소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둥 음모가 있다는 식의 망언을 하며 최연성 선수와 박성준 선수의 승부를 가치 없게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그만큼 충격이었다 싶다. 개인적으로 그런 팬들의 모습 때문에 나는 SKT T1 팀을 대단히 싫어한다. 최연성 선수는 잘했지만 박성준 선수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마치 늘 자신감에 차있던 이윤열이 신인 최연성의 기세에 눌려 센게임배 스타리그 5차전에서 일방적으로 진 것처럼 말이다. 최연성 선수는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박성준 선수도 최선을 다했다. 프로라면 자신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도 실력이며 능력이다. 5판 3선증제 승부에서는 3경기만에 승부가 날 수 있고 5경기째에 승부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심적, 신체적 컨디션 조절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 그가 지난 센게임배 스타리그 5차전에서 이윤열 선수가 보여준 것과 같은 모습을 질레트배 스타리그 5차전에서 똑같이 보여줬다. 그는 박성준 선수의 기세와 심리전에 진 것이다.

아무튼 최연성 선수는 졌다. 남은 결승전 한 자리는 테란이 되었건 프로토스가 되었건 어쨌건 같은 종족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박정석 선수가 결승에 진출했으면 좋겠고,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말 오랜만에 저그 대 프로토스의 결승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저그 대 프로토스의 결승전은 아직 본 적이 없다) July (박성준 선수의 ID). 그래 7월은 너의 달(月)이다!

덧쓰기 : SKT T1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번 최연성 선수의 결승 좌절이 아주 시원하다. 한때는 임요환 선수 때문에 그리고 물량형 프로토스처럼 경기를 운영하는 경기 운영 방식때문에 최연성 선수에게 호감을 가졌던 내가 그와 그가 속한 팀의 팬들때문에 안티가 된 내 모습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