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조 파업을 욕하지 마라

19시경. 2호선을 타고 교대로 향하고 있었다. 3호선을 타기 위하여. 3호선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그곳에서 나는 대규모 피난민을 보았다. 저들이 퇴근을 하는, 혹은 업무(사적인, 공적인)를 보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따뜻한 남쪽 나라로 피난을 가는 내 앞길을 막는 또 다른 피난민으로 보일 뿐. 으윽.

이번 파업으로 인해 욕을 먹는 이들은 노조측이다. 더욱이 LG칼텍스 정유 노조의 파업으로 지하철 노조의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이 더욱 곱지 못하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나에게 불편을 입히는 이들은 노조니까 이번 파업의 시비 여부는 당연히 노조에 터뜨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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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욕을 할 때 하더라도 그것이 비난인지 비판인지 알고는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현재 많은 이들이 하는 아우성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하철 노조의 파업의 목적은 인력 충원이다. 37%의 인력 충원인데, 그 이유는 뭐니 뭐니해도 그간 문제가 되어오던 지하철 1시간 연장 운행과 버스 개편 등 대중 교통 체계의 개편이다. 물론 표면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주5일제 도입을 하여 일자리 창출이다만, 그것은 주5일제 도입과 인력 충원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효과이지 그것이 파업의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하철 노조의 요구를 살펴보자.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근무 환경의 개선이다. 그러한 개선은 인력 충원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현재 인력의 37%에 해당하는 3천여명을 충원해야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p>
  • 노동 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
  • 비정규칙 차별 철폐 및 정규직화
  • 시민안전 대책마련 및 중앙정부 예산지원
  • 지하철과 철도 공공성 강화
  • 이용시민 건강권 확보 및 궤도노동자 노동권/건강권 보장
  •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및 해고노동자 원직복직

라고 서울 지하철 노동 조합 홈페이지에 나와있다. 몇 가지 사안은 이번 파업의 성격이나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고 있고, 역시 쟁점은 사람 좀 더 뽑아달라는 얘기다.

그럼 잠시 사측의 입장을 보자. 사측은 이미 8조원에 이르는 적자 경영으로 인해 인력을 충원할 수 없으며, 근무 형태를 바꾸어 노조측이 요구하는 37%보다 적은 최소한의 인력 충원으로도 주5일제 실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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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위 표와 같이 이미 각 지하철 공사측은 매년 적자를 내고 있으며 현재 자본 잠식 상태로 힘에 부친 듯 허덕이고 있다. 더욱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시설 개선과 대중 교통 요금제 개편, 편의 시설(엘리베이터 등) 확충으로 더욱 경영 사정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노조측의 인력 충원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는 힘들고, 3조 3교대 형태로 하여 주5일제를 실시하여 인력 충원을 최소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적자 원인이 과도한 지하철 건설 부채 때문이며 중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을 늘려야 하는 문제이니, 인건비가 원인인 것처럼 주장하지 말라고 반박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수익과 관련한 구조적인 개편 없이 지하철 9호선 공사와 일부 호선의 연장(3호선, 5호선 등)등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상당 수의 지하철에 엘리베이터와 같은 편의 시설 공사로 한참 분주하긴 하다.

위 사실들만 보면 노조측이 나쁜 놈이다. 경제 사정이 극도로 안좋고 적자 운영인걸 뻔히 알면서 어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언론 역시 이번 지하철 파업의 나쁜 놈은 노조측이라고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앞뒤말 싹 잘라먹고 주5일제 실시에 필요한 인력을 무려 37%나 요구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진짜 나쁜 놈은 서울시와 공사측이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요구해온 위 사항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에 대해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어지지 않았고 결국 파업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파업 전에 협상은 있었지만 결렬되고 말았다.

주목할 점은 결렬될 수 밖에 없는 예정된 파업이라는 사실이다. 서울시와 공사측은 '파업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가 아닌 '파업을 해도 비상 운영 계획을 통하여 지하철 운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즉 애초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아니고, 파업을 전제로 노조측으로 하여금 파업을 포기하라고 겁을 줬다는 것이다. 물론 경영 여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운 노조측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조측은 파업 진입을 앞두고 앞서 제안했던 37%의 인력 충원을 15%대로 낮추어 협상을 제안했다. 협상의 의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결국 그러한 요구에 대한 협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채 파업을 '강행'시켰다. 누가? 서울시와 공사측. 파업한 주요 인물들 자르거나 인사 조치 취하고, 시민들과 언론의 집중 폭격으로 노조가 항복한다고 해서 노조측이 말한 문제가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인력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 수 없다. 즉 파업이 이뤄지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은 지금 당장 월급이 적으니 월급을 올려달라는 집단 이기적(?) 요구가 아닌, 지하철 운영의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지하철 노조의 파업은 LG칼텍스 정유의 파업과는 질적으로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을 함께 묶어 지하철 노조를 욕하지 말라. 특히 언론은 노조가 나쁜 놈들이라고 국민들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또 다시 같은 문제로 파업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설마 그때도 노조측을 죽일 놈 만들어서 억지로 항복 선언을 받지는 않겠지?

사측은 노조측의 요구에 대해 '진지한' 협상을 하여야 한다. 지금 당장 노조측의 요구가 무리라면 단계적으로 요구를 들어줄 것을 약속하고, 지하철 경영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여야 한다. 그정도 성의만 보이면 노조측도 지금처럼 처절한 반항은 할 수 없다. 문제를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고 제발 계획을 갖고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민들. 지금 당장 내 몸이 불편하고 괴로운 건 이해하고, 그것에 대한 노조를 비판/비난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제발 파업의 쟁점과 이유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말자.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더 크게 떠서 문제의 본질을 판단하여 건전한 이성으로 비판하고, 심판하여야 한다.

덧쓰기 : 이런 글도 있다. 물론 나는 동조하는 입장.
http://blog.naver.com/intransigent/120004351889

덧쓰기 : 이것도 읽을만한 기사.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38&article_id=0000243977&section_id=102&section_id2=251&menu_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