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소는 존재한다.
29 Jul 2004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당신은 차를 몰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매우 지루하고 재미 없다. 그때 엄청난 규모의 소떼가 풀을 뜯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눈이 커지며 소떼를 경이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이내 질린다. 소는 가만히 서서 단지 풀을 뜯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거두고 다시 지루하게 운전을 하는 당신. 그러나 소떼들이 무언가에 놀라 어딘가로 지진을 일으키듯 달려간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지? 다시 소떼를 향해 쳐다본다. 그러나 이내 질린다. 이제는 저 소떼들과 관련하여 눈을 휘둥그레 뜰 일은 없을 거 같다. 하지만 만일 소떼 틈에 보랏빛 소 한 마리가 있다면? 눈이 휘둥그레져 보랏빛 소를 쳐다보느라 정신 없을 것이다.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보랏빛 소가 온다'는 제목의 마케팅 서적의 내용은 저게 전부이다. 왜 보랏빛 소여야 하고, 다른 업체들은 어떤 보랏빛 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잘잘한 이야기가 신변잡기처럼 펼쳐지기는 하지만, 어쨌건 소떼 중 보랏빛 소가 시선을 끈다는 이야기에서 뻗어나온 것에 불과하다.
책 제목만 보면 대체 얼마나 생소한 내용들이 가득할까 기대가 되지만, 사실 내용은 전혀 생소하지 않으며 특출나지도 않다. 진부하기까지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어디에서나 중요시되고 강조되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 가치를 둘 수 있는 점은 마케팅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을 개발자(제품 디자이너 등)로 둘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마케팅 측면과 방법으로 소를 보랏빛 소로 만드는 것이 아닌, 애초 보랏빛 소를 만들고 보랏빛 소를 마케팅한다는 중요한 사항을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비슷 비슷한 제품을 만든 뒤 획기적인 광고와 영업만으로 대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대는 갔으니, 더이상 전통과 정석이라 불리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마케터와 개발자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게 시사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것과 몰개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같다고 생각하는지 제품을 일반적으로 디자인하면서 동시에 개성도 소멸시킨다. 그리고 몰개성을 마케팅으로 극복하려 한다. 즉 엄청난 예산을 책정하여 누구나 다 하는 광고 등을 시도한다. 그러면서 대박을 꿈꾸는 일반적인 현실.
그러나.
(저자도 인정하듯이) 사실 리마커블한 보랏빛 소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대다수의 기업가나 주주가 원하는 것은 보랏빛 소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젖 잘 나오고 덩치가 커서 고기 많이 나오는 소이다. 즉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제품을 원한다. 시장 검증이 존재하며, 고객들의 반응이 열정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격렬한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랏빛 소를 개발하여 치고 나아간 여러 사례들을 예로 들며 안전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근데 어떻게 저자도 인정하는 리마커블한 제품 개발 설득의 어려움을 독자들에게 자신있게 제안할 수 있는 거지? 리마커블한 생각을 관찰시키고 실행할 수 있는 요령과 방법을 조언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리마커블한 생각이 어려운게 아니라 리마커블한 생각을 관찰시키고 실행하는 게 어려운데 말이다.
리마커블, 즉 마케팅에서 리마커블이 아닌 제품(그것이 제품이건 서비스이건)에서 리마커블을 시작하여야 하며, 그 제품에는 나 자신도 속한다는 사실.
저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는 듯이 책의 내용을 증명해보였다. 바로 책 자체가 리마커블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하는 그의 리마커블 마케팅, 그리고 그에 따른 성공적인 판매량. 믿을만하고 충분히 참고할만하다.
하루짜리 책으로(하루에 잠깐의 짬을 내면 다 볼 수 있다는 뜻) 적절히 가볍게, 깊지 않게 리마커블(Remarkable)에 대해 강한 주장을 하는 세스 고딘.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덧쓰기 : 그나저나 공교롭다. 최근 난 나 자신을 리마커블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여러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회사에서 안전하게(?) 경력이나 쌓는게 나은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을 리마커블하게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게 나은 걸까.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세스 고딘 아저씨가 내 현재 선택에 지지라도 해준 것처럼 책을 써주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