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놈의 개발자가 이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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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학생 때.
내 성씨는 흔한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씨라던가 씨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흔한 성씨는 아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반에서 나와 같은 성씨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주변에서 만난 적도 거의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야 한 명 만났는데, 그 급우와 나는 서로 놀랐다. 이런 적 처음이라며.

물론 지금도 사회에서 나와 같은 성씨를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여러 연예인과 일부 축구 선수, 그리고 훌륭하고 늠름한 나로 인해(후후) 내 성씨가 사람들에게 제법 익숙해졌다고 본다. 이제는 사람들도 내 이름을 들었을 때 그다지 신기해하지 않으며 낯설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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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1999년도.
누군가 내게 직업을 물으면 나는 게임 개발자라고 답해오고 있다. 그러면 보통의 경우 게임 개발을 하는 직업의 사람은 처음 본다며 호기심 가득 품은 표정으로 내게 이것 저것 묻곤 했다.

그랬다. 분명 그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은 비교적 생소했다. 그리고 그다지 인정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신기해하기는 해도.

그러나 이제는 우리 나라의 게임 개발자는 불쌍하다는 기사에 대해 여러 블로거들의 토론이 오가는 시대이며, 게임 개발사 젊은 사장인 김택진씨의 재산이 몇 천억에 달하여 경외심을 일으키는 2004년이다.

멀리갈 것도 없이 블로그들만 돌아다녀도 자신의 직업이 게임 개발자, 혹은 게임 관련 업종의 사람임을 밝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1997년부터 게임 업종에서 일을 시작한 나로써는 묘한 기분이 든다.

1999년을 시작으로 게임, 아니 온라인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묻지마 투자 붐에 대박 터뜨린 회사나 개발자, 해외 업체와의 전쟁 등 많은 우열곡절을 겪어 왔고,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건과 비례하게 게임 업계 사람도 무진장 많아졌다.

시장 개편

시장은 큰 변화를 겪은 후 커다란 부피 팽창이 있을 때마다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른바 시장 개편인데, 시장 개편을 통과한 회사나 개발자는 성숙해진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온라인 시장 중 한 곳이 바로 웹쪽이다. 웹 에이전시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던 홍익 인터넷이 저물고, 직원별 1~2억 대박으로 본격적인 묻지마 투자를 이끌어낸 야후 코리아는 인터넷 포털 Top 3에서마저 밀려나버렸다. 그러한 대란이 이렇게나 빨리 진행되고 마무리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누가 알건 모르건 개편은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많은 업체들이 단련되었다. 좀 더 프로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랄까? 아직은 개편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개편이라는 말 그대로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시장 역시 아주 커다란 개편이 있었다. 오프라인 시장을 대상으로 하던 게임 시장이 온라인으로 대폭 이동한 것이다. 오프라인을 고집하던 수 많은 업체가 문을 닫거나 인수되거나 현재 비실 비실해졌다. 우리 나라 게임의 큰 축이라 볼 수 있던 소프트 맥스와 손노리는 사실상 밀려났고, 엔씨소프트나 한게임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게임의 마케팅은 물론 각종 공정(프로세스) 역시 대폭 변화하였다.

그러나 게임 업계는 인터넷 업계와는 달리 개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망해야 할 회사는 망하고, 새롭게 치고 올라올 회사는 올라와야 했다. 그러나 어영 부영 개편이 흐지부지 되더니 망해야 할 회사 중 일부가 살아남아 게임 시장의 개편에 뒤끝을 남겨버렸다.

사실 망해야 할 회사라는 단어는 대단히 위험한 발언이다. 대체 누구는 망해야하고 누구는 성공을 해야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런 회사는 분명 존재한다. 바로 아마추어리즘으로 중무장한 경영진이나 핵심 인력이 자리 잡은 회사이다.

지하 단칸방에 김치와 라면으로 눈물 겹게 게임을 만들어 다리품 팔아가며 찾아낸 유통 업체와 눈물 겨운 조건으로 계약을 한다. 그러다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런 업체들이 아마추어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관점에서 아마추어적인 공정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지금은 그러한 개발 공정(프로세스)이나 운영 공정은 아마추어리즘일 뿐이다.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을 갖춘 게임 회사들은 대게의 경우 게임 개발을 해오던 게임 개발사이다. 인터넷 시장의 거품 빠지는 개편 초기 당시 인터넷 업계들은 게임쪽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보통의 경우 기존의 게임 개발사를 인수하는 형태였는데, 이렇게 덩치가 커진 인터넷 업체와 아마추어처럼 개발을 하던 게임 업체의 합병으로 태어난 게임 개발사의 경우 프로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게임을 만들어오던 게임 개발사가 외부 투자를 받은 뒤 계속 기존의 공정(프로세스)를 고집해온 경우 거의 십중팔구는 여전히 아마추어처럼 개발을 하고 있다.

프로도 살아남기 힘든 요즘과 같은 세상에 아마추어가 발 딛을 틈이 있을까? 불행히도 아직 존재한다.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게임 업계의 시장 개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어떤 회사라고 언급할 수는 없지만 꽤 여러 회사가 존재한다.

왜 아마추어 회사가 망해야 할 회사일까. 그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시장 상황이 그 근거이다. 현재의 게임 시장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어마 어마하게 커졌다. 시장의 주력 분야도 바뀌었다. 과거 게임 시장 규모가 수천억이었다면 이 중 대부분은 아케이드 시장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온라인 시장이 게임 시장의 주력으로 떠올랐으며 규모 역시 수조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게임 프로젝트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인력 관리 체계나 프로젝트 관리, 개발 공정 관리, 개발과 마케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운영 등 과거에는 비중을 두지 않던 분야들이 급격히 중요하게 떠올랐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것들의 중요성은 인지되었으나 이해도나 필요성을 크게 못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프로젝트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큰 규모의 프로젝트 역시 해왔던 대로, 그러니까 작은 프로젝트 진행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이전에도(1999년 전) 게임 개발사였고 현재도 게임 개발사인 상당 수의 게임 개발사는 아직도 개발 관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여전히 구멍가게 운영하듯 회사와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런 회사들은 시장과 업계의 물을 흐리며, 열정을 품고 승부를 걸려는 순수한 개발자들을 다치게 한다. 열정을 식게 만들며 지치게 만들고 비전 역시 찾지 못하게 시력을 감퇴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회사들은 냉정하게 말해서 요즘과 같은 게임 시장에 비추어 볼 때 망해야만 한다.

뭔 놈의 게임 개발자가 이렇게 많아?

게임 개발자임을 표현하는 명함을 게임 업종에 없는 사람에게 건내줘도 신기해하거나 호기심을 갖는 사람은 이제 매우 드물어졌다. 그렇게 게임 업종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졌으며, 그만큼 게임 개발자나 관계자도 많아졌다. 심지어 게임을 하며 돈을 버는 프로게이머 시장도 커지고 있다.

시장의 부피는 개편 이후 분명 이만큼이나 커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아마추어리즘으로 대박을 꿈꾸며 사기 아닌 사기를 치고 있는 많은 업체들이 많다. 다시금 시장 개편이 이루어져 이러한 업체들이 분명하게 정리되고, 게임 시장이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하며 커졌으면 좋겠다. 양적인 팽창이 아닌 질적인 팽창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가 많은 그런 시장 말이다. 시장 개편 과정에서 비록 내가 피를 볼지라도 향후 비전 있는 시장을 볼 수 있게 ..

덧쓰기 : 게임 개발자라고 컴퓨터 잘한다는 편견은 버려달라. 게임 개발자라는 이유로 PC조립을 강요하지 말지어며, 운영체제 다시 깔아달라고도 요구하지 말자. 심지어 완전히 맛이 간 프린터를 고쳐내라고도 하는데, 게임 개발자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지 컴퓨터 전문가가 아니다! 단지,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게임 개발자가 많을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