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새김질과 똥의 재섭취

어렸을 적, 시골에 갔다가 소를 보게 되었다. 실제로 본 것은 그때 처음이었는데 되새김질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꾸역 꾸역 씹는 모습이었다. 되새김질을 구경하는 나에게 입안의 것을 퉤! 하고 뱉을 것만 같았다.

얼마 전에 TV를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토끼는 자신이 배설한 변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가 바로 소화되지 않아 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자신이 배출한 변을 다시 섭취하여 필요한 영양소를 얻어야해야 한단다. 오몰 오몰거리는 그 입 모양이 참 귀여웠는데, 모르는 게 약이라고 요즘은 분홍색의 토끼 입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마치 섹스 비디오로 난도질 되었던 여자 연예인을 TV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이랄까?

졸려서 정신이 몽롱할 때, 간혹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저절로. 주로 타인과 대화하던 상황을 회상하게 되는데 그때 오갔던 대화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대화 흐름은 기억에 남아있다.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꾸역 꾸역 그때의 상황이 연상이 된다. 토끼가 자신이 배설한 변을 오물 오물 먹듯이 꼬물 꼬물 그때의 상황이 연상된다.

기억을 되살려서 그때의 상황과 기분을 또다시 만끽하는 행위는 불편하고 즐겁지 않을 때가 있다. 소가 되어본 적이 없어 되새김질을 하는 소의 입장을 아는 바는 아니지만, 신선하지 못하고 눅눅한 습초죽(아무리 봐도 건초로 볼 수는 없다)을 우물거리는 기분이 좋을 거 같지는 않다. 자신의 변을 먹는 토끼의 입장을 아는 바는 아니지만, 아침에 내가 방출한 변을 내려다보며 저것을 집어 먹는 기분은 전혀 좋을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소의 되새김질과 토끼의 대변 재섭취는 엄연하다. 소나 토끼의 입장에서 그러한 행위는 생존의 필수적인 행위이다. 취향이나 기분의 관점으로 좋거나 좋지 않음을 판단하는 나에 대해 소와 토끼는 자신들이 나에게 기만당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지난 날,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 지금에 와서 그 흐름을 하나하나 꼬집어보면 내가 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놀아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을 지금에 와서 깨달았을 때의 기분은 즐겁지 않다. "아, 저 사람이 그때 나를 보며 지었던 그 미소의 의미가 그거였구나?" 혹은 "저 사람의 말에 내가 반응하고 열심히 떠든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인 것이구나. 그래서 그렇게 결론이 난 것이구나"라는 교훈을 자각하면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괜히 그들을 책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은 엄연하다. 놀아난 것은 내가 못나서이다. 만일 내가 좀 더 능숙했더라면 능숙함을 가진 이의 모습을 보이며 능숙하게 반응해주었을 것이다.

혹자는 굳이 불편한 지난날을 되새겨 자신에게 아픔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성급한 사람이라면 되새김질하느라(혹은 응가를 재섭취하느라) 미간 잔뜩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나를 보며 "변태"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되새김질은 엄연하다. 나는 원치 않게, 즉 졸린 이 상황에서 원치 않게 옛 경험들이 연상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꼬집어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이 소의 되새김질이나 토끼의 대변 재섭취와 같이 생존의 필수 요소는 아니지만, 사회 생존의 필수 요소임을 감안하면, 또 나은 놈 혹은 된 놈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감안하면 나는 이런 나를 변태라고 판단하는 이에게 기만당한 것일 것이다. (다만, 그런 나를 변태라고 평가해주는 이는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참 변태스러운 상황이다)

물론, 재섭취할 똥이 먹기 좋지 않을 수 있다. 설사 똥이거나 습기가 너무 없어 딱딱한 건똥일 수도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되새김질할 반 소화된 음식물의 상태가 심히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들을 다시 끌어올려 혀를 대는 것은 괴로울 때도 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Art of life. 쩝쩝.

엄연한 것을 엄연하게 정의하고 긍정하고 풀어쓰려니 엄연히 난감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중이고, 이 말장난의 진행형이 흐뭇하다고도 생각 중이다. 역시 심각한(척하는) 자세로 쓴 글은 말 장난으로 멋지게 마무리해야 개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