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대한 신변잡기
07 Oct 20051
며칠 전에 주문한 겨레말 용례 사전을 비롯한 책 몇 권이 도착했다. 김성동님의 책을 읽다보면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우리 겨레 말이 심심찮게 나와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겨레 말임에도 어려움을 느끼는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을 이 사전이 풀어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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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장 덕에 다른 누리집에서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에 글을 엮었다(Pingback). 지하철 1시간 연장 운행과 대중 교통 개편, 그리고 서울 시청 앞 잔디밭에 대해 비판을 했던 글들인데, 시간이 흐른 2005년 가을에 보는 이명박 시장의 사업을 뒤돌아보고 다시 판단하는 글을 준비해오던 나로서는 약간 손가락을 움츠러들게 하는 요즘이다. 좀 더 조심스레 접근을 해야할려나?
다른 사람들 덕에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을 읽었다. 나름대로 바른 말을 쓰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 맞춰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사실. 글을 고치거나 덩어리를 이리 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은/는/이/가'를 잘못 쓰기도 하고, 잘못 쓴 글자도 많다. 가끔은 문장 의도는 알겠지만 문장 자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혹시 어린 사람들이 볼까 싶어 손 보려 했지만 냅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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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역사를 좋아한다고 스스로 떠벌리고선 역사에 있어 중요한 책인 군주론을 이제 읽는 내가 부끄럽다. 그나마 다행은 15세기 역사에 대해서는 그럭 저럭 알고 있는 덕에 군주론에 나오는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덜하다. 군주론에 나오는 일부 극단성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극단이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 그의 머리 속을 채운 각종 경험들을 떠올리면 꼭 극단이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군주론을 읽으며 내용을 이해하는 걸 방해하는 건 14~15세기 유럽의 정황에 대한 이해도가 아닌 옮긴 이의 글에 있다. 분명 옮긴 이도 군주론을 읽고 내용을 이해한 뒤에 책을 썼을텐데, 문장을 읽다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쓴건지 군주론에 대한 외국 책을 번역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무리 훑어봐도 군주론 본문이 아닌 옮긴 이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쓴 단락인데 문장은 영어로 쓰여진 책의 문장보다 어렵다. 읽다 도저히 문장이 이상하다 싶어 주어 동사를 빗금으로 구분해보니 영락없는 영어 5형식이다. 옮긴 이는 아마도 영어를 쓰는 국가에 책을 수출할 때를 대비한 것 같다.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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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자 친구가 그랬다. 우리 말은 지키려 노력하면서 왜 자신의 말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냐고. 말인 즉, ~적은 우리 말을 오염시키는 표현이라며 비록 지금은 익숙한 표현이지만 차근 차근 이 표현을 줄여나가기 위해 말을 어눌하게 하면서, 정작 자신(여자 친구)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왜 말을 꼬아서 듣냐는 것이다. 그때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한발 늦은 지금에 와서 대답을 하자면. 말을 정확히 듣는 것보다 말에서 잘못된 표현을 찾고 고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비겁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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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써도 내가 뱉는 말과 글이 담고 있는 뜻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다. 입은 삐뚫어졌어도 말을 바로 하라는 속담이 새삼 손끝을 아프게 찌른다. 나는 과연 바른 말을 하고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