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에는 한계가 있다.

쇼(show)에는 한계가 있다. 청계천 복원 기념 행사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뭘 복원했다는 것인지도 아리송하다.

물 흐르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것? 그건 청계천은 본래 물이 적은 건천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한강물 출렁이는 청계천을 두고 복원이라는 말을 쓰는 건 기만이라는 의견을 프레시안(참고 : hof)에서 말하고 있다.

생태 복원? 서울 한복판에 벌레나 물고기 살 수 있게 된다면 대단히 환영할 일이지만, 그로 인해 그 주변에서 밥 벌어먹고 살던 사람들이 죽게 생겼다.

청계천 복원 사업이 아닌 청계천 공원 및 산책길 형성 사업이라 했어야 옳다. 시민의 것이 아닌 광장을 시민 광장이라 부를 수 없는 것처럼 이명박 시장은 아직 우리말 사용에 어리숙한 것 같다.

기획 의도는 좋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물이 기획 의도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껍질 속에 부실한 알맹이는 곧 잊혀진다. 그리고 청계천이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동안 사람들의 피로 흐르는 청계천의 물은 흐름을 멈출 것이다. 이것이 쇼(show)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