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소한 그 무엇
01 Mar 2005시간이 흐른 후 지난 날을 뒤돌아보며 "아! 내가 왜 그랬지? 지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안타까워한 적이 종종 있다. 그럴 때는 타인이 후욱 하고 내뱉는 담배 연기에 기관지가 따가워 마른 기침을 하는 것처럼 들이쉬는 공기 마저도 쓰리다.
그래서인지 킴벌리 커버거가 쓴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비록 지금은 몇 구절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다른 이에게 자신있게 이 시를 좋아한다고 말을 꺼내지는 못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시를 줄줄 외며 지난 날을 뒤돌아보곤 했다.
시의 제목이 무의식 중에 입안에 맴돌 정도로 아쉬운 기억들도 있다. 무척 사소한 이유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른 일들이 그렇다. 당시에는 그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중대한 이유였는데 이제는 사소한 이유라고 생각하는 걸 보면, 사실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중대한 이유였다기 보다는 비교하기 싫을만큼 중대하다고 믿었던 이유였다고 생각된다.
글쎄, 무엇이 그리도 사소했냐고 묻는다면 신뢰감이 저절로 들만큼 또박 또박 대답할 자신은 없다. 그때는 머리가 터져버릴만큼 견디기 힘든 그 이유가 지금 다시 겪는다면 심호흡 한 번하고 맞부딪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사소하다고 판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거대한 그때의 상황을 겪으면서 단련이 되었고, 단련된 지금의 내 정신이나 몸으로 그때의 상황을 평가하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건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한발자국 물러나야 한다. 한발자국 물러나 사소한 그 무엇만을 바라보면 그 무엇은 허기진 호랑이가 아닌 발정난 암코양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발자국 물러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는 절박함이 내 등을 떠미는 경우가 사소한 그 무엇을 사소하게 만들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절벽도 작은 계단인 경우가 태반인데, 절박할 때는 한 칸의 계단도 현기증이 이는 절벽이 된다. 어쩌면 또 다른 사소한 그 무엇이 낮은 계단을 깊은 절벽으로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른다.
사소한 그 무엇을 사소하지 않은 그 무엇으로 스스로 만들기 위해 주변의 사소한 그 무엇들을 하나 하나 덧붙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보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사소한 그 무엇은 눈덩이 커지듯 자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깜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사소한 그 무엇에 깔려 허우적댄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이 무엇을 보며 참 사소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지금 당장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경험상 그럴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그럴 거 같지는 않다. 산소가 내게만 독가스처럼 해가 되는 상황. 산소 속에서 호흡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이들이라면 입을 앙 다물고 얼굴 시뻘개지며 숨을 참는 내가 미련해보이겠지만, 산소가 기도를 통해 내 폐에 이르면 나는 독가스를 마신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할 나는 절박하다. 그래도 이 무엇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도 무서운 이 무엇이 나중에는 참 사소한 그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알고 있지만 알 수 없어서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