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 찬양

변했다. 냄새가 난다. 낯선 냄새다. 한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내 불찰이다. 하지만, 더 늦지 않게 냄새를 맡아 다행이다. 회사에서 신는 슬리퍼가 다른 이의 발이라도 받아들였는지 낯선 냄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곧 깨달았다. 슬리퍼는 나만을 받아들였다. 잘못이라면 나만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오직 내 발만을 받아들였고 그 대가는 내 발바닥의 땀을 품은 것뿐이다. 잠시 그간의 코감기 원망.

독특한 냄새라고 생각한다. 마치 오뉴월의 소나기에 적신 뒤 다시 팔월의 습하고 무더운 음지에 말린 어묵을 쌓이도록 가득 담아서 졸이고 있는 떡볶이 냄새랄까? 실제로 경험한 냄새는 아니지만 상황이 절로 연상되는 오묘한 냄새이다.

이상하다. 분명 기분 나쁜 냄새인데 계속 맡고 있으니 새삼스럽다. 잠시 눈을 감고 발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느껴본다. 땀을 가득 머금은 슬리퍼는 천연 땀의 향으로 내 코를 자극하고, 나는 보답이라도 하듯 발바닥에서 향의 원액을 내보낸다. 그 모습이 먹이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주면 대가로 단맛이 나는 배설물을 분비하고 이걸 맛깔스레 받아먹는 개미와 진딧물처럼 정겹다.

아차, 이게 아닌데! 잠시 슬리퍼의 향긋한 유혹에 이성을 잃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다. 내 이성을 장악하려 하다니, 이 사악한 슬리퍼. 나는 사태의 심각성에 몸을 떨고는 땀의 구렁텅이에 빠진 슬리퍼를 교화시키기로 한다.

빨까? 곤란하다. 슬리퍼를 빨면 며칠 간 불편하다. 냄새제거제를 뿌려본다. 어림도 없다. 아니, 냄새제거액까지 흡수한 슬리퍼는 한층 더 성숙하고 늠름한 냄새를 뿜기 시작했다. 슬리퍼의 본디 역할이 편리하게 발에 착용하여 발바닥을 보호하는 물건이 아닌 냄새 풍기는 것이 아닐까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어쩌지, 어쩔까.
시간과 냄새 제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택한 방법은 햇볕이다. 악의 구렁텅이, 아니 땀의 구렁텅이에 빠져 슬리퍼의 순수함을 잃은 악의 축을 햇볕에 몇 시간 말렸다. 햇볕을 만끽하며 기지개 쯔억하는 강아지를 품고 오듯 수줍게 슬리퍼를 안고 온다. 신으려니 긴장된다. 나는 연인의 목덜미에 입맞추듯 살며시 발을 밀어 넣는다.

따스하다. 진정 따스하다. 냄새의 근원인 땀을 원료 삼아 따스함을 발생시키는 듯하다. 슬리퍼가 순수함을 되찾았다. 예상치 못한 따스함에 발가락들이 부끄러운 듯 꼼지락거린다. 그래, 이제 괜찮아. 모든 악은 사라졌어. 이제 마음껏 꼼지락거려도 된단다.

슬리퍼의 순수함을 되찾아 준 태양에 고마움을 표시하자고 생각했다. 슬리퍼를 교화시킨 은인인데 태양이라고 부르자니 불경하다고 생각됐다. 그래, 그를 사람 부르듯 하자. 무어라 부를까. 당신? 내 능력으로 구해내지 못한 슬리퍼를 구해낸 이를 부르기엔 무례하다. 그래, 해님이 좋겠다. 하늘을 인격화, 혹은 신격화하여 부르는 하느님(하늘님) 호칭보다는 근엄함이 부족하지만, 해님의 호칭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이 있어 좋다.

그래, 노래를 부르자. 노래도 불러 해님을 찬양하자. 나는 영어로 노래를 불러 해님을 찬양한다.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You make me happy when skies are gray.
You"ll never know dear how much I love you.
Please don"t take my sunshine aw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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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my sunshine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