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베베
17 Apr 2005요즘 바쁘다. 이번 달이 특히 바쁘다. 그래서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도 철야를 했다. 밤을 새고 회의를 마치니 19시. 잠깐씩 잠들다 깨기를 반복한 2시간을 제외하면 34시간째 깨어있었다.
손등을 내려다보니 까맣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처참하다. 백숙을 36시간 상온에 방치하면 오골계가 되지 않을까? 거울 속에서 멍청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니 그럴 것 같다.
곳곳이 아프다. 입술 옆은 갈라져서 "아" 발음을 하면 아프고 수면 부족할 때 나타나는 편두통이 끊이지 않는다. 눈을 감으니 눈주위가 차갑다. 눈을 감고 눈을 이리 저리 굴려보니 뽀드득 소리가 나는 거 같다. 술을 많이 마셔도 꼬인 적이 없는 혀는 발음이 새고 전혀 엉뚱한 발음을 끼어 넣는다.
"그러니까 이 전투 시크템은 이런 어려움이 있지요"
에베베베. 발음을 해보았다. 에베데데. 음...
이젠 몸이 예전같지 않다. 근력도 늘고 순발력도, 그러니까 운동 능력이 5년 전보다 향상되었지만, 날을 새고 난 뒤의 후유증은 훨씬 심하다. 입술이나 혀처럼 예민한 부위는 못살겠다 꿈틀대고 귀는 환청을 듣는다. 아령이나 벤치프레스, 팔굽혀펴기로 단련하고 있는 팔, 그리고 모래주머니 차고 자전거를 타고 10층을 오르는 덕에 쫄깃해지고 있는 다리를 제외한 모든 부위가 아프다. 역시 젊음이라는 힘은 대단하다.
엄마 앞에서 짝짝꿍, 곤지 곤지, 잼잼을 하느라 얼굴 벌개지고 땀 삐질 삐질 뿜어대는 아기가 된 기분이 든다. 참 쉬운 일인데 아기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이들(?)에겐 쉬운 철야인지 모르지만 이젠 쉽지 않다. 운동 열심히 한 지난 시간들이 허망하다. 젊은 힘으로 가득찼던 그 날을 내 머리는 잊지 않았지만, 내 몸은 그 힘을 잊었다. 오! 지난 나의 날들이여.
내가 제시한 연봉을 수락한 그분은(...) 말한다. 수고했노라고. 내 의지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똘똘이 마냥 입이 바보같은 미소를 짓는다. 사람들은 이런 피로 회복 느낌 때문에 커피나 박카스를 마시는걸까? 하지만 조금 부족하다. 그녀가 경쾌한 목소리로 힘 내라고 말하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기분이 아주 안좋아보인다. 포기. 어제부터 Wonderful days O.S.T 수록곡인 the prayer가 가슴을 적신다.